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요 Jun 22. 2022

미국에서 정신과 의원을 열었습니다.

내가 사업을 하게 될 줄이야. 

4월 영주권이 제 손에 똑떨어지자마자 이제 더는 지체할 수 없어 개원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의사의 꿈과 개원 의사의 꿈은 아주 별개입니다. 

개원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무래도 시간의 역할이 큰 것 같습니다. 


시간. 

나이가 먹어가니 조금 더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배우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감독이 되고 제작자가 되어 자신만의 영화를 만드는 일, 아이돌 그룹 가수가 시간이 지나면서 솔로 데뷔를 하고 작곡과 작사를 하고 음반 제작자가 되고 프로듀서가 되는 일과 마찬가지라고나 할까요. 그 업계가 돌아가는 바를 알만큼 알고,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의 크기도 알만큼 알게 되니 이제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가는 기쁨, 나의 이 작은 세상만이라도 온전히 통제한 삶을 살고 싶어 집니다. 


시간.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게 남은 시간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더욱 절감합니다. 언젠가는 해보고야 말 일, 하루라도 더 빨리 시작하고, 실수하고 망하더라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가 낫고, 안정되고 번창하더라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가 낫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41살에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50살까지 기다릴 이유는 없는 것이지요. 개원을 준비하는 일이 다소 불안정하고 외로운 여정이기에 일찍 일을 벌이는 편이 낫습니다. 


시간. 

더 적은 시간을 일에 쓰면서 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친구들에 쓰고 싶습니다. 나의 시간뿐만 아니라 내 가족의 시간, 내 친구들의 시간도 헉헉 줄어들고 있지요. 그들이 건강할 때 좀 더 많은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싶습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말입니다. 시간당 임금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개원이 가장 그 효율이 큽니다. 젊은 시절에는 내 시간과 돈을 맞바꾸었지만, 이제는 시간이 돈보다 귀해졌습니다. 여전히 시간을 써야 한다면 그 가치라도 높여야겠습니다. 


자 이제 개원을 피할 이유는 없어졌습니다. 

굳이 꼽으라면 망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과 걱정,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두려움, 1인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다른 의사들과 교류가 적어지는데서 오는 고립감.. 그 정도인 것 같은데 모두 별 힘이 없는 고스트 감정입니다. 마음을 다 잡으면 사라져 버리는 내 마음속에서만 존재감을 발휘하는 감정들이지요. 불안과 두려움은 매일, 매 순간 우리의 삶 속에 있고 매일 우리를 흔듭니다. 그 뭐 새삼스러운 일일까요. 거기 있던 것이 여전히 있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뭐 언제는 안 외로웠나요. 삶의 여정은 늘 나만의 길을 만드는 과정의 연속이었고, 그런 나를 온전히 이해하는 이는 여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여전히 살던 대로 사는 것입니다. 삶이 원래 외롭고 불안하고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통째로 안아버립시다 그냥. 두렵고 외로워도 할 건 해야죠.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작은 의원을 개설하는 과정을 한번 설명드리겠습니다. 

의원 개설은 작은 스타트업 회사를 설립하는 과정과 거의 동일합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기업 변호사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세제 혜택을 최대한으로 누리기 위해서 회계사와 상담 후 개설합니다. 미국의 많은 회계사가 회사 설립을 직접 돕기도 하는데, 기업 전문 변호사들에 의하면 이는 불법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변호사든 회계사든 최소 $1000 이상의 비용을 요구합니다. 회사 설립을 대행해주는 인터넷 업체들도 많습니다. 변호사나 회계사보다는 적은 비용을 요구하지만 어쨌든 꽤 많은 수수료를 떼어갑니다. 


성격상 누구에게 믿고 맡기는 일을 잘하지는 못합니다. 맡길 때 맡기더라도 내가 한 번쯤은 제대로 알아보고 맡겨야 합니다. 대행업체도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더블 체킹이 필요하죠. 미국에서 살다 보면 관공사나, 기업, 또는 변호사의 사소한 실수도 자주 경험합니다. 피해보상은 차치하고, 누군가의 실수로 일단 일이 한번 꼬이게 되면 제대로 큰일이 나기도 합니다. 알아서 잘했으려니 생각하지 말고 다시 한번 꼼꼼히 체크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화를 면하려면 그래야만 합니다. 


요즘은 인터넷에 대부분의 정보가 공개되어있습니다. 내가 모르는 것은 또 누군가가 알고 있고 그중 또 누군가는 그것을 블로그에 포스팅하거나 유튜브를 통해 알려줍니다. 검증된 여러 경로를 통해 제대로 알아보기만 하면 대행업체의 도움이 없어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회사 설립입니다. 특히나 1인 기업이라면 더더욱 어렵지 않습니다. 어쨌든 시간을 들여 정보를 수집하고 혼자 회사 설립을 준비하고, 병원의 시스템도 만들어나가는 일에 두 달여간의 시간을 썼습니다. 


그리고 제가 터득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미주 한인 의사들이 모여있는 페이스북 그룹에 다음과 같은 글을 게시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캘리포니아에서 정신과 솔로 프랙티스 개원(Professional Corporation, S-corp)을 하게 되어 선생님들께 인사드립니다. 


더불어 지난 두 달간 개원을 준비하면서 배운 것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체계적으로 정리된 실제적 정보가 부족해서 기업 전문 변호사나 회계사의 도움을 받을까도 생각했는데 어차피 알고 있어야 할 내용일 것 같아서 제가 직접 했습니다. 제가 알아본 회계사는 $1000 정도를 청구하고 변호사는 그보다 더 높은 금액을 받는 것 같습니다. legalzoom 같은 대행업체들도 여럿 있습니다. 본인의 comfort level에 따라 결정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는 정보나 더 추가되어야 하는 정보가 있으면 댓글로 피드백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Submit the articles of incorporation(AOI).


https://bizfileonline.sos.ca.gov/ 웹사이트가 꽤 잘되어있습니다. 회원가입을 하시고 아래 정보들을 기입하시고 마지막에 $100 결제하시면 됩니다. 급행이 아닌 경우 4-6주 걸릴 수 있다고 들었는데 1주일도 안되어서 어프루브가 되었습니다. 더 천천히 개원 준비를 하려 했는데 웬일로 게으를 틈을 안주는 캘리포니아 정부의 일처리 속도에 깜짝 놀랐습니다. 정신과 의사가 부족해서 그런 걸까요.. 여하튼 AOI를 작성하려면 아래의 정보를 준비하시면 됩니다. 



* 먼저 의사는 Professional Corporation으로 선택하셔야 합니다. 세제혜택 때문에 꽤 많은 의사들이 General Corporation으로 하는데 원칙적으로 그러면 안 된다고 CPA 가 조언해주었습니다.  



* The name of the professional corporation.


: Yujin Lee, M.D., A Professional Corporation


(본인 라스트 네임과 MD 가 꼭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fictitious name을 쓰겠다는 허가를 따로 받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happy psychiatric clinic'. 허가받는 과정이 아주 귀찮을 것 같아서 그냥 제 이름으로 했습니다. A Professional Corporation 대신에 medical corp, Inc., 또는 약자로 APC를 비즈니스 이름으로 쓰기도 합니다. 위의 웹사이트를 보시면 나와 동명이인 의사가 비즈니스 이름을 사용 중인지 검색 가능하고, 돈을 내면 이름을 미리 예약해 둘 수도 있습니다.)



*The professional corporation’s clear statement of purpose.


: Medicine (Psychiatry라고 처음에 기입하고 제출했다가 Medicine으로 수정해서 다시 제출하라는 친절한 이메일을 이튿날 받았습니다. 작성에 유의하시면 되겠습니다.)  




*The total number of shares that the company is able to issue.


: 1




*The exact street and mailing addresses of the company.


: Virtual office  


처음부터 오피스를 리스하기는 부담이 커서 프라이빗 오피스 공간을 저렴하게 렌트해주는 공유 오피스 회사의 버츄얼 오피스 서비스(공유 오피스 주소를 내 비즈니스 주소로 사용할 수 있게 해 주고, 우편물을 받아 보관해 줌.)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UPS mailbox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비용 차이가 크지 않고 구글맵에 UPS로 뜨는 것이 신뢰를 주지 못할 것 같아서 버츄얼 오피스를 제공하는 공유 오피스 회사 몇 곳을 방문해보고 결정했습니다.




* Registered Agent : 법적인 서류를 대신 받아주는 에이전트를 등록해야 합니다. 집주소와 본인 이름으로 하는 분들도 많은데 주소가 퍼블릭 레코드여서 스팸 메일이 엄청나게 온다고 합니다. 집주소를 굳이 공개할 이유가 없어서 저는 아래의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California Registered Agent Services 비용 $50/yr https://www.cacorporateagents.com/




AOI 등록 후 승인이 났다면 다음 아래의 절차를 밟으시면 됩니다. 




# File a Statement of Information(SOI) within 90 days and pay the corresponding filing fees


https://bizfileonline.sos.ca.gov/


같은 사이트에서 파일 하시면 되고 $25 청구됩니다. 비교적 간단합니다. 




# Apply for EIN 


내 비즈니스의 소셜 넘버입니다. 인터넷으로 신청 시 무료로 즉시 발급됩니다. EIN으로 곧장 비즈니스 뱅크 어카운트나 크레딧 카드 신청 가능합니다.




# File form 2553 with EIN 


: AOI 승인 후 75일 이내에 해야 함. S-corp를 선택하셨다면 반드시 파일 하셔야 합니다. 아니면 디폴트로 C-corp 가 되고 double taxation을 피할 수 없습니다. 


 "



의대를 갔고, 의사가 되었고, 미국을 왔고, 전문의가 되었습니다. 

그 과정 하나하나 쉽지 않았고 외롭고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어쩌면 제 삶에 마지막 큰 도전일지도 모를 개원을 합니다. 

하고싶은 진료 마음껏 해보다가 이도저도 아닌듯 하면 뒤통수 긁적이면서 다시 고용 의사의 삶으로 돌아가면 되지 생각합니다. 


아니다 싶으면 해봤다는데 의의를 두고 훌훌 접는 것도 괜찮다 싶습니다. 실패한다면 뭐 얼마나 크게 할까요. 


잘 모른다고, 어려울 것 같아서, 잘 안될 것 같아서 시작조차 하지 않는 삶이 저는 더 두렵습니다. 


이 글에 제 두려움과 불안을 꽉꽉 눌러담아 남겨두고, 아무렇지 않은 척 담담한 척 개원 의사의 삶을 살아보겠습니다.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도 지금 도전을 준비하는 분, 또 계시죠? 

저도 동참합니다. 같이 가봅시다. 


작가의 이전글 미국에 사는 미혼들을 위한 네트워크, 미미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