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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영 Jul 09. 2024

추억의 수박장수


'수박이 5천 원 맛있는 수박이 5천 원~’

트럭에 달린 스피커에서 방송이 나오고 있다.


오전 살림을 마무리하고

커피 한잔을 타서 식탁에 앉았다.

커피를 마시며 오랜만에 들어보는 참 정겨운 소리였다.

베란다로 나가 창밖을 보았다.

이 아파트에 5년을 살면서 과일이나 채소 트럭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나름 아쉬웠는데..

특히나 수박은 무거워서 배달을 시켜야 하는데

하나만 사기가 그럴 때는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 카트를 가득 채워서 배달시키곤 했다.


가끔 아파트 단지 안으로

과일이며 채소 트럭이 와주면 정말 반가울 것 같다.


십만 원 정도는 비상용으로 집에 두는데 그날 따라

지갑을 열어 보니 오천 원 지폐와 4개의 천 원이 전부였다.

수박차가 반가운 마음에 지갑을 들고 나가본다.


“작은 수박 얼마예요?”

“큰 거 만 원에 줄게요. 큰 거로 가져가세요.”

“아니에요. 지금 현금이 9천 원밖에 없어요 “

“그럼 9천 원만 내세요.”


사실 작은 걸로 사고 싶었다.

세 식구 두세 번 먹으면 순환이 빨라서 작은 걸 선호하는 편이다.


한편으로는 팔아 주고 싶은 마음에 큰 걸 9천 원 내고 받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주방세제로 수박을 깨끗이 닦아서 냉장고에 넣어뒀다.


“수박이 오천 원,  한 통에 오천 원. ”


확성기를 통해 수박 장수의 소리가 들려온다.

아저씨와 아줌마들의 웅성웅성 떠드는 소리에

베란다로 나가서 대화를 들어 보았다.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아주머니가 얘기한다.


“아저씨, 수박이 5천 원이라면서 왜 만원 받아요?”

“오천 원짜리도 있어요 “

“오천 원짜리는 조그하잖아요?

큰 수박이 5천 원인 줄 알고 뛰어나왔다고요."


아줌마는 낚였다는 듯이 불만을 토로한다.


“5천 원이라고 해야 사람이 나오지 안 그러면 나오나요? “


맞다 뭔가 삐끼 상품이 있어야 사람이 모이지 하하하 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5천 원이라고 해서 큰 수박을 기대한 건 사실이었다.


‘아싸, 나는 천 원 싸게 샀 ‘


승리감에 미소 지으며 안으로 들어와 커피를 홀짝인다.


저녁을 먹고 나서 낮에 산 수박꺼내 반으로 잘랐다.

빨갛게 잘 익어서 맛있어 보였다.

보기와 다르게 수박은 아무 맛도 나지 않고 밍밍했다.


아~ 깊은 한숨이 났다.

“이 큰 걸 어쩐 담” 수박 장수가 얄미웠다.

그 순간 머리속으로 어떤 감정이 스쳐갔다.


‘수박이 5천 원.맛있는 수박이 5천 원~’

수박장수의 그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몽글몽글 정겨운 감정이 피어올랐다는 것을.

어린 시절에 흔하게 들렸던 소리들이 떠올랐다.


"계란이 왔어요. 싱싱한 계란이 왔어요."
"찹쌀떡~ 찹쌀떡~"
"개 팔아요오."


이런 소리를 기억한다면 당신은 옛날사람입니다.^^


맛없는 수박을 9천 원에 샀지만

추억소환을 하게 해 준 값어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어떤 일이 있을 때 찌푸리고 화내면 나 자신도 힘들어 지고

안 좋은 일이 내게 오는 길을 열어주는 셈이다.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좋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왕 사는거 좋은게 좋은거지!



사진 https://www.pexels.com/k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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