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ynergist Dec 15. 2018

1년 동안 함께 할 캠퍼밴 개조

Girls can do anything

중고차를 구입한 바로 다음날부터 캠퍼밴 만들기에 돌입했다. 엄청나게 많은 자료들을 검색해왔는데, 그렇게 많다는 캠퍼밴 여행족이 우리나라에만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캠퍼밴 여행을 하긴 하는데, 직접 개조해서 한 사례는 1건밖에 검색되지 않았다. 앞으로 1년간 숙소로 사용할 거라서 허접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내 손을 직접 거쳐 만들어진다는 게 의미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나는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물론 마음에 걸리는 것들은 많았다. 뒷좌석을 다 탈거해야 하다 보니 이게 불법개조인지가 가장 마음에 걸렸고, 좌석들은 어떻게 다 들어낼 거며, 프레임은 어떻게 짜서 넣을 건지에 대한 것들.. 항상 뭔가를 실행하기 전에 나 자신에게 묻는 말이 있다. Why Not? 과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는 두 가지 물음. 그렇게 나에게 묻고 나니, 답이 나왔다. 그래 일단 하자! 라고 질러버리고 고민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면서 만들기 시작. 다행히 당시 묵었던 단기 플랫의 주인아주머니 아저씨가 좋은 분들이시라 공구도 빌려주시고, 뚝딱거리는 것도 괜찮다고 해 주셔서 나는 마음 놓고 캠퍼밴 컨버전을 할 수 있었다. 
 
 

 불법개조? wof 통과? 

우리나라도 차박 캠핑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 동호회나 카페도 잘 되어있는 편인데 최고 관심사는 불법개조를 하지 않는 한에서 캠핑카를 만드는 것. 뉴질랜드도 이게 불법개조인지 알고 싶어서 여러 곳에 문의했는데 확실한 대답이 없었다. 구글에 검색해봤더니 wof 규정에 '벨트 안전상태'는 있지만 '시트 탈거 여부'나 안전 문제에 대한 점이 없다는 것 때문에 사람들도 많이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중고차를 보러 다닐 때 사람들한테 다 물어봤는데 다들 잘 모른다고 하고.. 그래서 최후의 방법을 사용했다. 온라인에서 캠퍼밴을 파는 여행자들에게 물어보는 것. 이것만큼 확실한 것이 없었다. 최근에 wof를 새로 갱신한 애들한테 문자를 보내서 뒷 좌석 없어도 wof 받는데 문제없느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캠퍼밴으로 개조된 차량은 괜찮다고, 뉴질랜드에 캠퍼밴이 얼마나 많은데 그들도 다 잘 돌아다닌다며 나를 안심시켜줬다. 후에 댓글로 추가 정보가 들어왔는데, 혹시라도 뒷좌석 탈거 때문에 wof 갱신 못 해주겠다고 하는 정비소가 있다면, vtnz 가서 2인승으로 개조했음을 허가받으면 된다고 한다. 다음날부터 바로 좌석 탈거 작업 시작!
 
 

 혼자서 힘이 부칠 땐 자본주의의 힘을 빌리자 


리버티의 2열은 레일로 움직이고, 3열은 접히는 구조라서 떼어낼 것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드라이버와 렌치 드릴로 이것저것 보이는 대로 풀어내는데, 아무래도 오래된 차라서 녹도 많이 슬어있고 만약 다 풀어낸다 해도 차 밖으로 들어내는 것까지 생각해보니 내 힘으로는 약간 부족함을 느꼈다. 물론 같이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해낼 수 있었겠지만 나는 혼자 해야 하는 거라서 뒷좌석 탈거는 정비소에 맡기기로 했다. 덕분에 귀중한 정보도 얻었다. 시트를 다 들어냈으니 벨트까지 다 제거해달라고 요청하자, 메카닉 아저씨도 갸웃갸웃.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서 wof 받는데 벨트 없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시트가 없으면 벨트도 없어도 된다고. 덕분에 벨트까지 다 들어내서 뒷좌석 공간이 깔끔해졌다. 


transfer station 이래서 처음엔 환승센터인줄 (ㅋㅋㅋㅋㅋㅋ)


근데 이 시트를 어디다 갖다 버리느냐, 이게 또 문제였다. 우리나라는 고물상 같은 데가 있어서 그냥 갖다 버리거나 고철은 돈을 받거나 하는데, 여기는 과연 그런 게 있나 싶었다. 오클랜드에서는 각 가정에서 나오는 대형 폐기물을 카운실에서 1년에 한 번씩 수거해준다는데, 지금 묵고 있는 집에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일단 내가 버릴 수 있는 곳을 검색했다. 오클랜드 내 refuse/transfer center로 검색하자 여러 곳이 나왔는데, 메일과 홈페이지로 문의해 가격비교를 해 본 결과 데본포트 센터가 기본요금 24.50 (100kg까지)로 가장 저렴했고, 그다음이 알바니 컨스탈레이션 쪽 26.50, 다음이 노스쇼어 센터 27.50이었다. 물론 어차피 저 시트들 해봐야 100kg가 안 되기 때문에 그냥 정비소와 가장 가까운 컨스탈레이션에서 처리했다. 들어가기 전에 차 무게를 재고, 나올 때 차 무게를 또 재서 가격을 책정한다. 나 시트 버릴 거야! 하니까 버릴 곳을 안내받았고, 이 무거운 시트를 어떻게 옮길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 찰나 친절한 키위가 다가와서 도와줬다. 한국에서 왔다니까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00입니다' '안녕히 가세요'를 유창하게 읊어대던 키위! 심지어 안녕히 가세요와 계세요의 차이도 알고 있었다. 신기방기.. 기분 좋게 내 시트와도 빠이빠이하고 가벼운 리버티와 함께 나무 프레임을 사러!
 
 

 침대 프레임 짜기 - DIY의 나라 


여기는 DIY의 천국이다. 노동력이 비싸니 웬만한 것들은 직접 손을 보고, 계획만 잘 세우면 뚝딱뚝딱 뭐든지 만들 수 있다. 그걸 가능케 하는 곳이 바로 Mitre10과 Burnings Warehouse다. 침대 프레임을 짜 넣을 목재가 필요했는데, 우리나라였다면 근처 목재상을 찾아 아저씨한테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고 가게마다 달라지는 나무 값을 비교하러 여기저길 다녀야 했을 것이다. 마이터와 버닝스는 홈페이지에서 가격비교도 가능하고, 웬만한 건 다 구할 수 있다. 매장 크기 자체도 어마무시하고.. 중고차를 알아보러 다니면서도 시간이 뜨면 근처 마이터나 버닝스에 가서 목재의 가격이나 사이즈를 비교해가며 어떻게 하면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다. 이번에는 버닝스와 마이터가 바로 옆에 붙어있는 노스쇼어 지역에서 바로 구매했는데, 안타깝게도 버닝스는 가격은 더 저렴한데 목재 컷팅 서비스가 없어서(이 지점만인지는 모르겠다. 여기서는 차에 들어갈 정도로만 컷팅해준다고 했음) 바로 옆에 마이터로 이동했더니, 가격은 10불 정도 더 비싼데 커팅 서비스가 된다고 해서 바로 구매.(물론 커팅 서비스도 돈이 든다. 첫 커팅은 무료지만 패널은 다음 컷부터 2달러씩, 각목은 1달러씩 붙는다고 했음) 패널을 고른 후 내가 원하는 사이즈를 말하자 기계로 스윽사악 잘라줬는데, 각목은 컷팅 기계가 말썽이라 아저씨가 힘들게 톱질로 잘라줬다. (근데 나중에 계산서 보니까 컷팅비가 안 들어감.. 개이득..!) 그렇게 비워놓은 뒷좌석에 목재와 못, 목공 본드를 채워 넣고 프레임 짤 준비!



청소부터 깨끗이. 레일 사이로 들어간 흙들과 오래된 먼지들, 사이사이 끼인 예전 주인의 흔적들을 제거하고 나니 말끔해졌다. 물론 청소기나 다른 도구들이 있었다면 더 깔끔해졌겠지만, 할 수 있는 선에서 마무리.



그리곤 도면대로 잘라온 목재들을 배치시켜봤다. 몇 개는 조금 더 잘라내야 할 필요가 있어서, 신나게 톱질. 3열이 완전 좌식이어서 뒤쪽으로 언덕이 생기는 차체라, 눈대중으로 비교하고 각목 크기를 잘라왔기에 톱질은 예상했던 바였다. 그래도 아이폰 수평계로 확인해보니 고작 1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서 바로 진행!



18mm 두께의 110cm X 190cm의 프레임을 짰는데, 뒤쪽 50cm는 일부러 잘라달라고 했다. 경첩을 달아서 베드 프레임 아래쪽의 수납공간을 좀 더 수월하게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평평한 바닥에서 경첩을 달고, 미리 표시해 둔 각목 자리에 드릴로 구멍을 뚫었다. 이번 기회로 드릴 사용하는 법도 제대로 익혔고, 목재비트/콘크리트비트 등의 차이점도 알게 됐다.


스포티파이 한국에서 vpn 우회해서 쓰다가 뉴질랜드 오니까 그럴 일 없어서 좋다. 한국 서비스는 나 같아도 안할 듯..ㅠ_ㅠ


목공 본드로 일단 각목들을 붙여놓고 30분 기다린 후



드릴로 10cm짜리 못을 후두두둑 박았다. 근데 목공 본드로 30분 붙인 건 여전히 흐물거린다. 그냥 본드 바르고 바로 박았어도 될 듯. 이렇게 기울어진 프레임 완성!



여기가 고난이었다. 내부 사이즈를 재서 110cm면 되겠구나 하고 만든 건데, 뒤쪽으로 넣으려니 라이트 위쪽 넓은 곳으로 들어 올려야만 부딪히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혼자 힘으로 무거운 mdf판을 들고 낑낑대자니 너무 버거웠고, 프레임이 닿는 차 안쪽도 조금씩 긁히고 있었다(에이 몰라 그건). 저렇게 걸쳐놓고 누군가 퇴근하길 기다렸다가 도와달라고 해서 넣을까, 싶었지만 혼자 힘으로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보자 하고 옆으로 기울여도 봤다가, 있는 힘껏 밀어도 봤다가, 아래쪽에 큰 통을 괴어서 지렛대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안과 밖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넣어보니..!


짜잔!


드디어 프레임이 쏙 들어갔다! 우려했던 것보다 딱 맞아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물론 완벽하게 맞진 않았지만.. 중간 기둥이 조금 덜 잘려서, 양쪽 기둥은 아래쪽에 두꺼운 종이들을 괴어줬다. 경첩은 훌륭하게 제 역할을 해 줬고, 뒤쪽 50cm가 수월하게 뒤로 넘어갔다. 중간에도 기둥이 하나 있어서 저 상태로도 아주 완벽하게 지탱이 된다. 경첩을 1/3 지점에 두 개 설치했는데 그러다 보니 끝쪽에서 약간 끼익 거리는 소리가 나서, 이후에 경첩을 몇 개 더 사서 달아줬다. 



하나 간과한 것이 있었다. 차체 왼쪽 뒤편으로 알 수 없는 배터리 같은 게 있는데 거기에 다리가 걸려서 움직이질 않았다. 들어 올릴 때의 동선과 장애물을 생각하지 못한 죄... 어쩔 수 없이 다시 톱을 들어 패널 끝을 삼각형으로 잘라내고, 다리 끝도 비스듬하게 잘라냈다. 그래도 지지는 확실하게 돼서 아주 뿌듯하다!



 아쉬운 솔라시스템과 채워가야 할 것들 

원래는 솔라시스템을 구축하려고 이것저것 알아본 게 훨씬 많았다. 캠핑장 non-power site가 좀 더 저렴하기도 하고, 혹시라도 노지에서 차박을 해야 할 경우가 생기면 전기는 필수적인 요소이므로 flexible 솔라 패널을 차체 위에 부착해서, 안쪽으로 연결한 후 파워뱅크를 만들어 사용하려고 했었다. 중학교 때 배웠던 전압, 전력, 전류의 차이가 뭔지부터 다시 공부했는데, 컨트롤러와 배터리, DC-AC 인버터 등 알아야 할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유튜브와 e-book, 구글링으로 꾸준히 준비를 해 둔 덕분에 준비는 되어있었으나 사실 따져보니 1년 쓸 캠퍼밴에 솔라시스템까지 구축하는 건 금액적으로 약간 낭비였다. power/non-power site 차이가 5불 정도밖에 나지 않으니 파워 사이트를 쓰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솔라시스템 구축은 포기했다. 대신 캠핑장 파워 사이트를 이용할 때 꼭 있어야 한다는 파워 선을 중고로 60불에 구매했다. (원래는 100불 정도 함) 코리아포스트를 보면 중고로 내놓는 물건들이 아주 많다. 덕분에 침구세트, 전기장판, 요가매트, 자동차 점프선 등을 저렴하게 얻었다! 플랫 아주머니도 매트 대용으로 쓰라며 두꺼운 이불들을 여러 겹 챙겨주셨고. 필요한 게 생기면 살면서 바꿔나가자 하고 이 정도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Girls can do anything! 

한동안 이 문구가 난리였다, 당연한 말인데. 캠퍼밴 컨버전은 완력이 필요한 일이기에 남자들이나 커플들이 힘을 합쳐 많이 하겠지만,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싶었기에 엄청난 기대를 가지고 이 일에 달려들었다. 물론 내가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정말 해낼 수 있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지만. 저녁이 되자 앞집 아저씨도 관심을 보이며 네가 직접 만든 거냐고 물어보며 감탄하고 돌아갔고, 저녁에 퇴근하고 돌아온 플랫 사람들에게 보여주니 원래 목수이거나 이런 걸 해봤냐는 물음이 되돌아왔다. 가족, 친구들에게도 카톡 사진을 보내 자랑하니 멋지다며 응원해줬고.
처음부터 끝까지 나 혼자 한 건 아니다. 정비소 아저씨들의 도움도 받았고, 친절한 키위의 도움도 받았고, 플랫 주인아주머니 아저씨께서 빌려주신 공구들과 장소가 아니었다면 쩔쩔매면서 돈만 낭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드릴을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고 DIY라곤 해 본 적도 없는 나도 해냈다. 생각해보면 지난 글에서부터 언급했듯 차의 ㅊ도 몰랐던 내가 중고차를 구입하고, 캠퍼밴으로 개조까지 했는지 참 스스로도 신기하다. 
 
 

 참고한 사이트 

http://offgridvan.blogspot.co.nz 캠퍼밴 변신 과정을 포스팅과 e-book으로 보여줌. e-book도 얼마 안 해서 결제하고 보는 게 편하다.
 http://www.thevanual.com 홈페이지 자체가 아주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음
 https://backpackers.com/car-camper/ 캠핑을 즐기는 백팩커들을 위한 사이트
 https://youtu.be/SczpaP-6vpM 베드 프레임 쉽게 만들기. 캠퍼밴 관련 채널이기도 하다
 https://youtu.be/obQt4WxTYV4 캠퍼밴 여행중인 커플의 채널. 얘네껀 엄청 큰 밴이라 참고할만한 건 별로 없지만 재밌다!
 
유튜브에 검색하면 van life / campervan conversion으로 수십 가지 동영상이 뜬다. 나는 주로 솔라시스템 관련해서만 동영상을 찾고, 어떻게 프레임을 짜고 공간을 구성할지는 백팩커보드에 이미 올라와있는 캠퍼밴들의 사진을 살펴보면서 공부했다. 결국에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가긴 했지만.. 혹시 기회가 있다면 다음에는 수납장이나 책장을 직접 짜 넣거나 좀 더 큰 밴을 개조하는 작업을 해 보고 싶다!

이전 05화 차알못의 중고차 사기 대장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