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ynergist Oct 09. 2018

나를 틀에 가두지 말 것

꼰대가 되지 말자

*이 글은 18년 5월 14일 블로그에 먼저 작성되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며 유일하게 좋았던 점은, 가치관과 취향이 확실해진다는 것이었다. 어릴 때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나이가 들고 경험이 생기면 많은 고민들까지 부수적으로 따라오며 어느 정도 기준이 잡힌다. 틀에 박힌  개성 없이 남들이 하는 것들을  하곤 했던 천생 한국인이라, 불과   전까지만 해도 가치관과 기준, 취향 형성이   것에 대해 불안해했기에 더욱 새로운 경험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길 원했다.

그런데 갑자기 오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렇게 점점 생각이 굳어지는  아닌가 하는 새로운 불안함? 곤조가 생기고, 꼰대가 되어가는  아닌가 하는. ‘그건 내가  봤는데 이렇더라’, ‘이건  경험에 비추어 봤을  이럴 거야라는 식의 흔한 이야기들.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미래의 일에 대해, 과거 경험만을 기준 삼아 판단하는 것이 갑자기 너무 불합리하고 비정상적이라고 느껴졌다.  경험이 100퍼센트 모든 상황을 커버하지 못할뿐더러 지극히 한정적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단적으로는 이런 예가 있다. 나는 겨울인이었다. 여름과 겨울  뭐가 낫냐고 물어보면 겨울이라고 대답하는 사람.  이유도 없다. 추우면 껴입으면 되지만, 덥다고  벗어제낄 수가 없으니까. 나는 한여름에 태어났는데도 찌는  덥고 습한 여름에 맥을  췄고 항상 가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뉴질랜드에 오고 나서 생각이 정반대로 변했다. 겨울이 되어가며 비가 많이 오는 최근의 날씨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란 하늘 아래 바다에 언제든 뛰어들  있고, 그늘에서 쉬면 산들바람이 땀을 식혀주고, 선선한 저녁에는 후드를 걸치고 벤치에 누워 별을 바라보고, 푸케누이와 아보카도 농장에서의 즐거운 추억이 있던 이곳에서의 여름 기억이 너무 아름다워서 2018 뉴질랜드의 여름을 잊지 못하는 동시에 앞으로도 여름을 좋아하게   같다는 생각이  것이다. 무더위에  흘리며 일하며 불쾌해하고, 피서라고는 에어컨 빵빵한 지하철이나 쇼핑센터가 전부였고, 식사를 하거나 준비하면서 흘리는 땀도 싫어 스킵하거나 시켜먹기 일쑤였던  생활패턴이 지금과 전혀 달랐었기 때문에,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이기 때문에 몰랐던 것이다.



심지어 최근에 빠진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 영화는 1980년대 이탈리아의 여름이 배경인데, 그 자체도 몇 번이나 봤지만 원작 소설도 셀 수 없이 읽고 그 느낌을 좀 더 구체적으로 느끼고자 원서도 사서 읽는데 이 모든 것들을 저녁에 날씨가 쌀쌀하고 빗방울이 조금 떨어진다 싶으면 내 기억을 조작해 여름을 다시 느끼기 위한 거짓 장치로 작동시키는 중이다. 박스티에 짧고 헐렁한 반바지, 언제든 바다에 갈 준비가 된 수영복, 펄럭이는 셔츠와 선글라스, 선스크린,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자전거를 타거나 드라이브를 하고 함께 저녁을 먹으며 보내는 여름. 내가 이렇게까지 여름을 좋아하게 될 줄 알았을까?



틀에 박힌 생각들이 나의 성장을 방해하진 않을까 걱정된다. 이런 건 좋지만, 이런 건 너무 싫어! 절대 안 할 거야! 계속 이렇게 싫은 건 피하기만 하고 좋은 것만 쫓아다니며 산다면, 더 넓어질 수 있는 나의 경험의 척도도 분명히 줄어들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 더 나이를 먹으면 생각을 바꾸기가 힘들 거란 걸 잘 안다. 가끔 부모님이랑 이야기하며 당신들이 반평생 혹은 그 이상 함께한 그 가치관이 나와 맞지 않아 갈등을 겪을 때, 함께 오래 하면 오래 할수록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기에.


가치관, 생각, 의견, 기준, 취향 등 그 단어가 뭐가 됐든, 확실하게 가지는 것 자체에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걸 고집하거나 100퍼센트 확신하지는 말 것. 언제나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둘 것. 나를 틀에 가두지 말 것. 항상 생각하기로 한다. 이렇게 고집부리는 것이 꼰대가 되어가는 과정인가?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남의 시선 신경 쓰지 않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