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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ergist Oct 09. 2018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

몰랐던 것이라고 합리화 하지만

* 이 글은 18년 7월 1일 블로그에 먼저 작성되었습니다.


채식주의자 친구가 줬던 렌틸콩으로 수프를 만들었다. 감자, 양파, 버섯, 당근을 썰어 넣고 우유와 치즈, 콘을 넣어서 걸죽하게 끓여 먹으니 엄청 든든! (헐 근데 닭가슴살 넣었다)


여행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많은 것을 공유함으로써 내가 하지 못했던 경험을 간접적으로 하게 해 주는 것과 동시에, 몰랐던 것들에 대해 눈을 뜨게 해 주는 밑거름이 된다.




채식주의자 친구가 있다. 너는 왜 베지테리언이 되기로 결심했어?라고 모르는 척 물어봤다. 물론 채식주의를 하는 사람들은 동물보호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예상한 대로, 채식주의가 더 건강하게 먹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생명이 있었던 것들을 죽여서 먹는 것 자체가 끔찍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가족들이 다 채식주의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아예 채식주의자가 아니고 누나는 가끔 고기를 먹으며, 엄마랑 본인만 철저한 채식주의자라고 했다. 가족끼리 함께 식사를 하기가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은 모태 채식주의자이긴 한데, 본인의 신념도 결합된 형태인 것 같다. 



예전에 나도 채식주의에 대해 잠시 고민한 적이 있었다. 물론 동물보호에 관련한 생각은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이기적이게도 내 건강만을 생각하며 채식주의를 시작하려 했으니까. 학교/일 등으로 불규칙한 식습관이 생기고 그 결과 만성위염이 생기면서 좀 더 건강한 식단을 추구하려 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완전한 비건 식단을 찾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하다 못해 매일 한 끼는 먹는 국에도 멸치나 소고기로 육수를 내고, 김치에도 온갖 액젓 류가 들어가는데 어떻게 비건이 될 수 있을까. 



이 채식주의자 친구와 며칠간 여행을 함께 하고 식단을 공유했었다. 내가 찾을 수 있었던 유일한 채식주의 한식 레시피였던 비빔밥과 파전을 해 줬는데 엄청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이 친구는 내가 싫어하는 콩이 잔뜩 들어간 파스타와 신선한 샌드위치를 만들어 줬는데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랐기도 했다. 채식주의라는 게 말이 거창하지 엄청 어려운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생각보다 맛있는 채소가 엄청나게 많고 조리방법 또한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로도 ‘웬만하면’ 채소 위주의 식단을 먹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도미노에서도 베지테리언 피자로, 슈퍼마켓에서도 내 손으로 소/돼지/양고기나 소세지류를 사지도 않고 대부분 채소나 과일코너에서 다 해결하는 식으로. 반려동물을 키우지도 않고, 동물실험에 대한 이슈들을 찾아본 적도 없어서 사실 그런 신념이나 철학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내 건강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생각일지라도 실천하는 방법이 생긴 것이다. 




팩 하우스에서 페트롤 쉐어링 하며 태우고 다녔던 친구 A가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식료품이 부족하다길래 같이 슈퍼마켓에 가서 장을 보다가 팩 하우스에서 일하는 다른 친구 B를 만났다. 토마토를 잔뜩 바구니에 넣은 A를 보고 B는 저 옆에 비닐봉지가 있다고 사용하라고 알려줬다. 나는 순간 A가 무슨 말을 할지 정확하게 파악했다. 너 플라스틱이 지구에서 썩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알아? A는 독일어가 마더텅이지만 영어도 원어민 수준으로 유창한 아이였고 B는 스패니시가 마더텅이고 영어가 어눌했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A의 환경보호 강의에 B는 어물어물하기만 해서, 슈퍼마켓 한가운데에서 계속 이러고 있을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내가 그럼 너는 쓰지 말고 너만 써, 하고 일단 웃으며 돌려보냈다. 그런데 그 환경보호 강의가, 옆에서 곤란해하던 나에게도 영향을 미친 듯했다. 그러네. 토마토를 사면 어차피 씻어서 먹을 건데 플라스틱 봉지가 왜 필요해. 그리고 어차피 체크아웃할 때 봉지에 담아서 주는데 따로따로 담을 이유도 없고.라는 생각이 스쳤고 나는 그 이후로 슈퍼마켓을 이용할 때 웬만하면 한 봉지에 다 담거나 안 담으려고 노력하게 됐다.




물론 아직까진 직접적으로 동물보호/환경보호 이슈를 찾아보거나, 관심 있게 나서서 무브먼트에 참가하거나 할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금씩 내가 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하는 게 나 자신에게도 그리고 전체적인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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