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돈 많이 벌면- 하다가는 영영 늦어버리고 말 지도 모른다
지난해 뉴질랜드에서 스카이다이빙을 마치고 내려와 여기저기 인증샷 카톡을 보냈다. 그중에서도 엄마의 반응이 제일이었다. 나를 한없이 부러워하는 마음이 꾹꾹 눌린 카톡을 읽고는, 롤러코스터도 번지점프도 패러글라이딩도 스릴을 만끽하는 것이라면 기회가 없어서 못하는 사람인데 내가 너무 철 없이 떠들어 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쯤 어렴풋이 결정했던 것 같다. 엄마랑 함께 스카이다이빙 여행을 가야지.
뉴질랜드 워홀 비자가 1월에 끝나니, 한국에 돌아왔다가 엄마를 모시고 다시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웠다. 사실 액티비티의 천국 뉴질랜드에 있는 동안 엄마를 초대했다면 수월했을 일이지만, 해외여행도 처음이고 영어도 익숙지 않은 엄마에게 혼자 비행기를 타라고 하는 건 무모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더 넓은 땅 호주에서는 더 많은 기회가 있겠지 싶어 혼자 여행지를 정하고 10월경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사실 물어보고도 걱정이 많았다. 평생 내가 보아온 엄마는 속으로는 가고 싶으면서도 안 간다고 할 게 뻔했다. 설득할 수 있을만한 이유를 줄줄이 생각해 두고 던진 수였는데 예상치도 못하게 덥석 그래 가자!라는 답장이 오길래 내 쪽에서 더 당황했다. 서른의 첫 버킷리스트가 엄마와 함께 여행가기다, 라고 한 게 먹힌 모양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람. 엄마는 다음 날 사진을 찍고 구청에 가서 여권을 신청했고, 나는 골드코스트 3박 > 케언즈 3박 여행 코스를 짜며 결제를 하기 시작했다.
떠나기 전에 공항에서 한 가지 약속받은 것이 있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보다는 먼저 시도해 볼 것. 엄마는 종종 그런다. 치즈는 냄새나서 싫고, 와인은 떫어서 싫고, 여기는 이렇고 저기는 저렇고.. 작년까지 ‘아무거나’를 입에 달고 살며 내가 하고픈 것보다는 남들에게 맞추는 것이 미덕인 줄 알았던 나에 비해, 엄마는 확고한 취향을 갖고 있다. 몇십 년 인생에서 쌓아온 경험의 빅데이터라고 포장하고 싶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가격이 비싸서 고민된다’는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 일단 ‘싫다’는 말을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를 듣는 내 입장에서는 일단 첫째로 뭘 하고자 하는 의욕이 팍 죽어버리고, 둘째로는 모르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감이 쌓이다 보면 이 넓은 호주땅에서 경험할 수 있는 폭이 너무나 줄어들 것 같았다. 그래서 적어도 시도는 해보고 좋든 싫든 판단을 하자는 약속을 안고 갔다.
나는 지난 몇 년 간 엄마가 이제껏 돈 아끼려고 혹은 본인의 여가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고 싶었다. 뻐근하다는 몸을 단 한 시간만이라도 전문가에게 맡기는 전신 마사지, 엄마가 좋아하는 케이윌 콘서트 같이 가기 등. 요즘에는 동생도 엄마가 좋아하는 엄기준 뮤지컬 티켓을 구해 준다거나, 음악과 영상에 관심이 많은 엄마를 위해 멜론/넷플릭스 서비스를 결제해주는 등으로 동참하는 중이다. 물론 약간의 거짓말은 필요하다. 생신 즈음에 터트리는 게 그나마 선물 대용으로 제일 잘 먹히고, 쿠폰이 생겨서 혹은 아는 사람이 일하는데 티켓을 좀 싸게 해 줘서 등등의 이유를 댄다. 아직도 본인에게 돈 쓰는 것이 어색한 엄마다.
이번 여행에서도 그런 경험 쌓기에 중점을 두고 싶었고, 스릴이 주제인 만큼 71층 스카이 포인트 전망대 > 놀이공원 롤러코스터 > 스쿠버다이빙과 헬기투어 > 스카이다이빙 순으로 점진적으로 강도를 높여가는 것으로 코스를 잡았다. 골드코스트에서는 렌터카도 빌렸다. 나는 뉴질랜드에서 1년간 운전을 해서 이 반대 운전이 더 익숙한 동시에, 이 시스템을 신기해하는 엄마에게 경험을 선물하려고 했다.
그렇게 하니 덕분에 나도 조금 여유롭게 여행을 했다. 이제껏 혼자 여행을 다닐 때는 ‘나는 젊고 어차피 숙소에 있는 시간도 별로 없으니 숙소비는 아껴야지’ 해서 북적거리고 불편한 호스텔에 많이 묵었었다. 나이가 들어 휴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고 엄마의 첫 여행에 좋은 기억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평점도 좋고 너무 비싸지 않은 (비싸지 않아 보이는 것이 중요함) 호텔을 예약했다. 혼자 여행할 때는 귀찮아서 식사를 자주 거르곤 했지만, 엄마와 함께 하다 보니 식사를 꼬박꼬박 챙기게 되었고 너무 싼 음식만을 고집하지도 않게 됐다. 빨리빨리 걸어 다니면서 더 많은 볼거리를 눈에 담는 것보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우리의 6박 8일은 너무 느슨해서 돈 아깝지도, 너무 빡빡해서 몸이 힘들지도 않은 적당한 스케줄이었던 것 같다.
사실은 전공이 아까워서 짧게나마 다큐를 만들 생각에 기획한 것들이 많았는데 어쩌다 보니 빠그라져서 사진도 영상도 뭐 하나 제대로 남긴 게 없다. 그래서 글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초안만 잡아 놓고 한참 고민을 하다가 다녀온 지 한 달이 다 된 지금에서야 쓰기 시작한다. 프롤로그라도 올려 두면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쓰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이렇게라도 소중한 기억을 붙잡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