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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ergist Jul 05. 2020

쿠키 수집에 동의하시겠습니까?

연애 쿠키? 일 쿠키?


웹 서핑을 하다가 등장하는 팝업창에 홀려 쿠키 설정에 어물어물 동의하고 나면, 그 사이트는 나를 기억하기로 결정한다. 나의 인터넷 사용정보를 저장하고 손쉽게 다시 접속할 수 있게 해 주며, 내가 관심 가지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광고나 제품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아마존에서 주문했던 프로틴 파우더를 바탕으로 유튜브에서는 운동이나 건강식 관련 영상을 띄워주고, 구글 광고로는 각종 운동 소품들을 보여주는 식으로 사용자가 자연스럽게 관심 가질 것들을 예측한다. 내 인생도 쿠키를 수집하는 과정과 같다. 이제까지 경험한 것들, 지나온 곳들의 발자취가 나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앞으로의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할지를 예측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가끔은 조금 머리가 무겁다. 쌓인 쿠키를 제거하기 위해 삭제 버튼을 누르고 새로운 인터넷 창을 켜 본다. 소름 돋게 나를 너무 잘 아는 것 같은 광고가 없어서 깔끔하지만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따른다. 그래도 나는 인생에서 쿠키를 없애고 새로 시작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쿠키를 갉아먹으며 두려움이 자랐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시작’하는 것이 ‘처음 시작’하는 것보다 더 두렵다. 첫 시작, 새로운 도전은 누구에게나 떨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건 정상을 향해 천천히 올라가는 롤러코스터의 초반 20초 같은 떨림이지, 깊이 숨겨진 무의식을 자극하는 두려움과는 아주 다르다. 롤러코스터 정상에는 좀비가 기다리지도 않을뿐더러 그 끝에는 궁극의 스릴이 펼쳐지니까. 하지만 ‘첫 시작’이 성공적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놀이기구에 이상이 생겨 몇 시간을 갇혀 있었다든지, 불의의 사고로 탑승자가 큰 부상을 입었다면, 그런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은 다시 롤러코스터를 탑승할 수 있을까? 


자의든 타의든 첫 시작을 멈췄을 때는 이유라는 게 있다. 씁쓸한 기억은 상처를 남기고, 그저 버티는 수밖에 없는 시간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는 데다 엄청난 고통을 준다. 시간이 흘러 조금이나마 회복한 이후라도 다시 그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또 그런 일이 발생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 결과를 모르는 순간에도 다시 회복해야 할 그 시간의 고통이 두려움을 준다. 



아 나 혼자 어떡하라고



서로의 눈만 바라봐도 바보 같은 웃음을 지었던 초반의 설렘 쿠키는 사라지고, 안 좋았던 쿠키만 간직한다. 사소한 일로 싸웠던 일, 연락이 안 된다며 의심했던 순간, 울고불고 싸우며 헤어졌던 마지막 등. 가슴 아픈 이별의 순간은 며칠,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 가슴을 쿡쿡 찌른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를 셀 수 없이 중얼거린다. 매일이 반복되고 무덤덤해질 때쯤, 눈앞에 새로운 대상이 나타나면 덜컥 두렵기부터 한다. 이 사람과는 과연 가슴 아픈 이별을 하지 않을 것인가? 나는 또 잘 이겨낼 수 있을까? 혹여 지나간 사랑이 다시 돌아와 새롭게 시작한다 한들, 처음의 이유는 변하지 않는다.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경우도 많다.


나의 지난 연애는 사실 이 이야기와는 사뭇 다르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고 나쁘지 않게 헤어졌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저릿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기분 나쁘게 쿡쿡 쑤시는 그 느낌이 싫어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도 끝을 먼저 예상해본다. 그 끝에는 꼭 ‘아니야, 혼자가 편하지’ 라며 합리화시키는 내가 있다.


이 쿠키론은 인생 어떤 지점에 대입해도 말이 된다. 사실 내 쿠키 상자에는 고작 그런 걸로 힘들어하냐며 연애 쿠키를 비웃는 더 악마 같은 쿠키들이 있다. 조금 저릿했다고? 그럼 찢어지는 고통을 주마!




나의 첫 사회생활은 순조롭게 시작되는 듯했다. 운이 좋게 졸업식 다음날부터 출근할 수 있었고, 전공도 살렸으며, 이제껏 향해 달려왔던 꿈같은 직업에 신이 났다. 롤러코스터 초반 20초의 두근거림으로 매일 아침 출근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돈 주고 공부하던 학교와 돈 받고 일하는 회사는 천지차이다. 프로의 세계는 너무도 달랐고 나는 다시 새내기가 된 것 같았지만 그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스무 살 대학생 새내기에게는 도움의 손길들이 주변에 넘쳐나는 데 비해, 스물 다섯 사회생활 새내기는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대충 일을 찾아서 하기라도 할 경력직이 아닌, 학교 졸업한 지 이틀 된 신입을 뽑아 놓고는 다들 너무 바빠서 나는 눈치껏 일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실수가 잦아지고, 욕을 먹고, 또 좌절의 늪에서 구르고,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인가 하며 자기혐오에 빠져 또 실수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예산은 정해져 있고, 팀원은 적고, 내 몸은 하난데 ‘막내가’ 할 일은 머릿속에서 끝없이 돌아가고 있고.. 이 빌어먹을 관료제와 제도식 시스템은 얼마나 나를 괴롭게 하는지.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상태에서 겨우 정신력으로 버티면서 몇 개월이 지나고, 일이 조금 익숙해질 때쯤 이 프로젝트는 끝이 났다. 다음 프로젝트가 시작되니 다시 정신 차리고 힘 내보자!라고 나를 다잡았고, 이번에는 반대의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존의 성공으로 평판도 좋고, 예산도 넉넉하며, 일을 가르쳐 줄 능력 있는 선배도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의 역할이 불분명했다. 지난 팀원들을 가끔 만나 이야기를 하다 ‘그 좋은 팀에서 요즘 뭐 해?’라는 질문을 들으면 할 말이 없었다. ‘아무것도요. 제가 하는 일이 별로 없어요.’ 차라리 지난 프로젝트같이 몸과 마음이 함께 힘든 게 낫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나는 대놓고 농땡이치는 것처럼 보일만큼 일이 없었기에, 더욱 눈앞에 보이는 잡일을 떠맡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나 대신 다른 누구를 데려다 놓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들을 하면서 프로젝트에 기여하는 바가 전혀 없다고 느꼈다. 게다가 내부 결정권이나 최종 마감에 관여하는 팀에 속해있던 나는 다른 팀원들의 문의와 불만을 자주 들어주는 상황에 처했지만, 막내인 내가 아는 것은 발톱의 때만큼도 없어서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스트레스와 피로가 같이 쌓였고, 선배를 붙잡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정신줄을 붙잡다가도 순간 놓쳐버리면 괴물로 변해 악을 지르는 나를 본 것을 계기로, 나는 1년을 가득 채우고 회사를 나왔다. 거기서 얻은 각종 질병들과 함께 방황하며 그 직업을 선택한 것이 과연 옳았는지를 곱씹었다. 이게 이제껏 내가 꿈꿔왔던 삶인가? 이게 내가 그토록 하고 싶어 하던 일이었나? 고작 1년밖에 안 해보고 실패했다고 말하면 나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것 같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내 첫 사회생활은 아무것도 남긴 게 없으니 실패 아닐까.






요즘 지난 몇 년 간의 방황을 되돌아보니, 나이를 먹은 만큼 당연히 성장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근본적으로는 변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에 대해 접근하는 것도, 새로운 연애를 하는 것도 아직 두렵기만 하다. 나아진 점도 달라진 점도 없이, 오히려 서른이 되고도 나를 직업인으로 정의할 그 무언가가 없어 줄어들기만 한 자존감을 보자면 그때보다 더 망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치유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내 안의 한국인이 ‘너만 그런 거 아니니까 빨리빨리’ 씻어버리고 다음 발걸음을 내딛으라고 독촉한다. 나를 기계처럼 분해할 수만 있다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곳을 새 부품으로 갈아주고, 빼곡히 쌓인 먼지를 닦아주고, 탈탈 털어 새것처럼 만들어 시작할 수 있다면 내 안의 한국인이 만족할 것 같다. 그렇게 새로 시작해서 두려움도 같이 사라지기를.



쿠키를 삭제하시겠습니까?
네. 제발요.
..사실 안 되는데 그냥 물어봤어요.
그럼 두려움이라도 삭제해 주시면 안 될까요?
안 돼. 지워줄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

그럼 어쩔 수 없죠. 두렵지만.. 극복하는 수밖에.



퇴사 직후에는 관련된 건 보지도 않았고 근처에도 발을 디디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저 멀리 둥둥 떠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비슷한 업계에서 끌리는 구인공고를 보고 몇 날 며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회사로 돌아가는 게 두려웠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었다.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술을 진탕 마신 후 자기소개서를 써 보내고 어찌어찌 합격한 후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직무가 잘 맞아서 자존감은 점점 올라갔고 우울증도 날아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관료제와의 한판 승부였다. 할 말은 해야 하는 나는 무능력한 팀장과 계속 부딪혔고 결국 대판 싸운 후 떠나버렸다. 다시 시작한 회사생활에서 또다시 일어난 퇴사 통보.


'이 정도면 사회 부적응자 아니냐?이게 내 길이 맞긴 한가?' 돌아오는 길에 후회는 없었지만, 대체 이 업계에 왜 이렇게 목을 매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기나긴 고민 끝에, 뉴질랜드 체리농장에서 평생 일자리가 보장된다고 해도 여기로 눈길이 가는 걸 막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직업으로 발전시킬만한 다른 관심사도 없었고, 나이와 함께 융통성이 생겨 이제는 막내 때처럼 어리바리하다 욕을 먹을 일은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도전해보기로 하고 영국에 왔다. 몇 번이나 관료제 조직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를 보고 그럼 해외시장으로 눈길을 돌려보기로 한 것이다. 물론 여기서 일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보다 더 많은 조건들이 필요하다. 능숙한 영어 사용과 경력에 관련된 위기 대처능력은 필수적이다. 나에게 주어지는 2년간 딱 한번, 일회성 프로젝트라도 관련 업계에서 일해보는 게 나의 목표이자 마지막 도전이다. 이번에 안 되면 깔끔히 포기하고 눈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어 힘들 거라는 걸 뻔히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목표와 용기가 함께 시너지 역할을 해주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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