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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ergist Jul 24. 2020

사장'놈'과 노래'방'에 간 이야기

내가 예쁘장한 학생이었으면 그냥 끼고 놀았겠죠? 정신 차리세요.


만으로 스물둘. 열일곱부터 알바를 해서 내 힘으로 돈은 버는 나이가 됐지만 아직 사회의 찌든 때는 경험하지 못했던 대학교 4학년짜리 애송이를 위해, 도우미 나오는 노래방에 데려간 알바 사장님(사장 놈이라고 하고 싶지만 순화함)을 소개합니다!


인터넷에서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래방 간판에서 ‘ㅇ’이 하트나 마이크 모양으로 변해 있다면 그건 일반적인 노래방이 아니라 유흥업소라고. 근데 그걸 알았을 때는 이미 노래'방’에 다녀온 후였다.


@Ciaran O'Brien / Unsplash 본문 내용과는 관계없음


대학교 4학년 때 한동안 맥주집에서 서빙 알바를 했었다. 당시 자취하던 고시텔 바로 옆 건물에 위치한 곳이라 거리적 장점이 일단 최고였고, 카페나 패스트푸드점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시급은 용돈 벌이 하기에 좋았다. 돈 내고 다니는 학교보다는 돈 받고 일하는 일터에 더 책임감을 많이 느꼈기에 학업은 소홀히 해도 알바는 열심히 했었다. 열심히 하면 익숙해지게 되고, 익숙해지면 곧 잘하게 된다. 사장님은 맥주집 경험이 없는 나를 못 미더워했지만 곧 안심하고는 가게의 많은 일을 가르쳤다. 사실 다른 남자 알바생들이 곧 다 그만둬서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남자들끼리 있으면 이렇게 으르렁거리나? 싶을 정도로 사장님은 남자 알바생들이 들어오는 족족 일하는 게 마음에 안 든다며 괴롭혔고, 직장도 아니고 알바 다니면서 그들이 그런 고통을 계속 견뎌야 할 이유는 없었다. 왠지 모르게 여자 알바생으로서 받는 특별대우에 조금 민망할 때도 많았다. 어쨌든 나는 알바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가게에서 가장 경력이 많은 사람이 되었다. 


사장님은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 같은 30대 후반의 남성으로, 집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가게 cctv를 쳐다보며 가게 운영에 크게 관여하는 아버지를 의식하는 걸 보면 이 가게 상당수의 자본이 아버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매주 로또 5만 원에 당첨되는 걸 보고 돈은 돈을 따라오나 보다 생각했다. 대기업 근처에 위치한 맥주집이라 상대적으로 높은 직급의 직원들이 ‘뫼셔져서’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장님이 그들을 특별대우하는 걸 보고 또 돈은 돈을 따르나 보다 했다. 


일이 익숙해지면서 저녁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일하는 기본 근무시간을 넘어 추가 근무를 하는 날이 많아졌다. 집이 가까우니 시급만 잘 챙겨준다면 큰 불만 없이 일했는데, 점점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손님이 많을 때는 괜찮았지만 점점 사장님은 일에서 손을 놓고 ‘특별한’ 손님들께 공짜 술과 특별 음식을 제공해 가면서 술자리를 같이 했다. 하루는 그들이 또 술판을 벌여 나 혼자 마감을 다 하고도 뒷정리를 위해 2시가 넘도록 매장 한편에 앉아 기다려야 한 적도 있었다. 저는 내일 학교를 가야 하는데요.. 이 자리가 마무리되면 그만둔다고 이야기해야겠다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사장님은 술판이 마무리되자마자 시급 인상을 제시하며 불쌍한 알바생의 마음을 돈으로 붙잡았다. 특히 자주 오던 대기업 부장님은 올 때마다 알바인 나에게도 팁으로 만원에서 많게는 오만 원씩을 쥐어 주곤 했는데, 어느 날은 또 무슨 시혜를 베풀듯 거기서 놀지 말고 같이 술이나 한잔 하자며 부를 때도 있었다. 지금이었다면 웃으며 쌍욕하고 돌아설 수 있었겠지만 그때의 나는 너무 어리숙했다. 속으로는 너무나 찜찜하지만 그래도 술 취해서 진상 부리는 다른 손님들과 달리 올 때마다 잘해주시고 팁도 주시는 분들이니 뭐 괜찮겠지, 하고 잠깐 앉아있다가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돈도 돈이지만 무례에 대한 무지가 사람을 너무나 약하게 만들었다. 


그런 손님들이 오지 않는 날, 혹은 일찍 마감이 끝났는데 집에 가기는 심심한 날 사장님은 알바들을 모아놓고 회식을 하곤 했다. 주방에 오더를 넣어 평소에 군침만 흘렸던 안주들을 다리 휘어지게 내어놓아 유혹하고, 게다가 맥주 당시 한국에 수입된 지 얼마 안 된 종류였기에 알바들은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20대 초반 남자 알바들이 주르르 다 빠져나간 후, 군대를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어 갈굼에 익숙한 20대 남자와 훈훈한 얼굴로 여자 손님들을 홀리는 30대 남자가 들어오자 사장님은 알바 구성에 마음이 흡족하였는지 자주 자리를 만들곤 했다. 그때의 나는 알바가 끝나고 좁은 내 방에 들어가기 전에 편의점 캔맥주를 사서 새벽을 지새우며 과제를 하던 인간이라, 공짜 회식(맥주 파티)을 마다할 일이 없었다. 


@noodle kimm / Unsplash 본문 내용과 관계없음


어느 날은 근처에 맛있는 양꼬치 집이 있다며 모두 함께 가기로 했다. 어차피 양꼬치 집도 골목 돌면 있는 곳이라 깜깜한 밤 돌아가기 무서운 곳은 아니었다. 사장님의 여흥은 남자 알바 둘이 담당했다. 셋이 말이 잘 통하는 모양이라 다행히도 나는 주로 먹고 마시기를 담당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밤은 깊어져 갔고, 맥주만 마신 나를 빼고 거나하게 소맥이 피에 도는 남자들은 노래방에 가자고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친한 친구들과 술을 먹고 취해도 노래방에 가지 않는다. 하지만 집도 코 앞이고 다들 신이 났는데 저는 안 가겠습니다.. 라며 분위기를 깰 수 없었다. 야 잘 먹고 빠지냐! 좀 재밌게 놀자! 이런 얘기가 들릴 게 뻔했다. 그래서 잠깐 들렀다가 술 취한 자들을 뒤로하고 화장실 가는 척 도망가기로 하고 (나는 술자리에서 얼굴 비추고 도망 나오는 건 잘한다) 가게에서 1분 거리, 그러니까 내 고시텔에서도 1분 거리인 노래방에 들어갔다.


그때는 노래방에서 술 파는 게 불법이 아니었던가..? 들어가자마자 마른안주와 맥주가 테이블에 쭉 깔렸다. 신나는 2차 자리를 기대하며 맥주병 뚜껑은 뻥뻥 소리를 내며 열렸고 곧 다들 리모컨을 잡고 노래를 예약하기 시작했다. 그때.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오죠..

노래방 문이 환히 열리고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 세 명이 들어왔다. 

?????????????????????


그때의 방 모습을 묘사해보자면, 문을 등 뒤로 하고 모니터를 바라본 채 내가 간이 소파에 앉아 있었고 왼쪽 소파에는 사장님이, 오른쪽 소파에는 남자 알바 두 명이 앉아 있었다. 내 등 뒤로 문이 열리며 여자들이 들어오는 순간 나는 맥주를 마시다가 눈 앞에 나타난 물음표들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이게 뭐지?


여자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나자 (=소파에 기댄 남자들 옆에 한 명씩 앉자) 온갖 생각들이 나를 지배했다. 이게 그냥 노래방이 아니라 노래'방’이었구나. 나는 왜 이렇게 어리석은가. 여기를 왜 그냥 간다고 했을까. 차라리 내가 그냥 집에 간다고 했다면 저들은 보내줬겠구나. 그럴 거면 그냥 나한테는 집에 가라고 하고 자기들끼리 셋이 다시 모여 갔었어야지!


들어온 여자들도 나를 보며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각자 짝을 지어 앉고 나자 당연히 간이 소파에 앉아있는 나에게 눈길이 돌아왔다. 얘는 여자애구나! 어떻게 된 거지? 그때의 어색한 공기를 잊을 수가 없다. 두 알바생들이 놀라지 않은 걸 보니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사장님은 나에게 노래를 해 보라며 권했고, 심지어 노래를 정해주기까지 했다. 나는 질끈 눈을 감고, ‘그래 지금 당장 도망갈 수 없으니까 일단 이 정신적으로라도 도망치자’며 그 옛날 보보의 노래를 불렀다. 내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옆에서는 쓰다듬(..)이 시작됐다. 들어온 지 5분이나 됐을까,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대 알바생까지도 이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걸 보고 술이 다 깨 버렸다. 나는 노래를 마치고 사장님으로부터 ‘아이고 노래 잘하네~’라는 소리를 듣고는 한동안 멍하니 다른 사람들의 노래를 듣다가 담배를 피우는 척 도망치려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나갔는지 밖에서는 사장님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술기운과 충격이 다 뒤섞여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우리는 침묵 속에서 담배를 태웠던 것 같다. 영겁의 시간이 지나고, 나온 김에 나는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내일 뵙겠다는 인사를 한 후 동이 터 오는 거리를 1분도 채 걷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며칠 흘러도 그 사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고 나도 먼저 이야기하기가 꺼림칙했다. 그들과 함께 일하는 내 마음은 점점 더 불편해지기만 했고, 이런저런 불만이 계속 쌓이면서 견딜 수 없었던 나는 적당히 핑계를 대고 그만뒀다. 집이 바로 옆임에도 불구하고 그 방향으로 갈 일이 있으면 한 블록 건너 돌아갔던 걸 생각하면 내가 얼마나 그 공간과 그 사람을 끔찍해했는지, 얼마나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는지 또 한 번 소름이 돋는다. 나이를 조금 더 먹고 나서 알게 된 건, 그 동네에 깔린 오피스텔과 빌라가 성매매 장소로 이용되거나 혹은 텐프로 직업인들의 거주지였다는 것이었다. 동네 노래방이 노래'방’이라는 게 꽤나 당연한 곳이었다. 생각해 보니 알바를 하는 동안에도 직업여성들과 함께 술을 마시러 방문하는 남자들이 꽤 많았는데, 그렇게 간접적으로 보던 유흥업소의 실태를 직접 눈으로 보자니 당황스러웠을 수밖에. 


나는 당시에 남자처럼 행동하고 욕도 많이 하고 여성스러운 면이라곤 없어 보이는 톰보이였다. 가끔 사장님은 장난식으로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너는 학벌도 괜찮고, 얼굴도 그만하면 괜찮으니 나랑 결혼해야겠다’. 내가 뭐 좋자고 님 같은 (… 많은 말을 생략) 사람이랑 결혼을 하죠? 유흥업소에 가는 것까지 뻔히 아는데? 도우미가 나오는 노래방에 가는 사람이라고 해서 성매매를 한다고 단정 짓거나, 모든 남자를 성욕에 굴복하는 범죄자로 일반화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만약 내가 예쁘장한 여대생이었다면 노래방을 가는 대신 다른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다행이라고 말하기에도 수치스러운 일이다. 남자이기 앞서 어른된 입장에서 만 22살밖에 안 된 학생을 유흥업소에 데려갔다는 것에서부터 벌써 존경과 존중을 받는 사람이 되기는 글렀다.


잊을만하면 오르는 시급, 매일 쏠쏠히 들어오는 팁, 배고픈 대학생 앞에 펼쳐지는 푸짐한 안주와 술.. 조금 더 벌고 조금 더 배를 불려 보겠다고 헛된 것을 따랐던 그때의 나에게 측은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그때의 일을 계기로 나는 많은 것에 눈을 뜨게 됐으니, 그걸로 인생 수업료를 낸 셈 치기로 했다. 



사장님(놈).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사람 평가질 하지 마시고, 알바라고 하대하지 마시길. 

로또와 스포츠토토, 당신의 과시욕을 보여주는 명품들, 노래방 도우미는 돈으로 샀을지 모르겠지만, 

권위와 돈을 향한 위선적인 그 웃음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없다는 걸 아시길. 

나의 때늦은 분노가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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