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막히고 입이 막힌 조연출은 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대학 졸업식을 마치자마자 방송국으로 출근했다. 언론고시라고 불리는 공채 PD 시험을 준비할 정도로 머리가 좋진 않았고,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꾸준함도 없을 것 같아서 쉬운 방법을 선택했다. 계약직 조연출로 방송국 문턱을 밟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아 보였다. 졸업을 앞두고 영화냐 방송이냐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이제 막 영화 표준계약서 도입이 시작되고 있었고 사회 경험도 부족한 애송이가 그런 영화판에 프리랜서로 뛰어드는 건 약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따끈한 졸업장이 스펙이 될 때 자본력이 갖춰진 방송국에서 따박따박 나오는 형태의 월급으로 안정과 경험 두 마리 토끼를 같이 얻어보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며 그렇게 조연출 생활을 시작했다.
그럼 이건 싫다고 말을 하시지 그랬어요
첫 프로그램은 당시 인기를 끌던 작가가 주특기를 살려 써낸 코미디 드라마 형식이었다. 이 작품이 본인의 세 글자 이름을 딴 첫 작품이 될 메인 PD도 열정을 불태웠다. 사실 나는 처음 몇 부의 대본을 읽으며 계속 반신반의했는데.. 인터넷 밈이나 황당한 판타지 요소들이 꽉꽉 들어찬 이 작품을 시청자들로 하여금 보게 할 그 무엇인가가 있는지 궁금했다. 인기 작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피식피식 웃게 되는 소재?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뭔가가 있겠지.. 캐스팅이 진행되고 촬영스탭이 꾸려지고 티저 예고편을 찍으면서 점점 촬영 날짜가 다가왔다. 나는 프로페셔널들이 진행하는 촬영 현장을 아주 기대했는데, 다들 꿈에 그리는 그런 모습은 아닐 거라며 경고했고 나도 녹록지 않은 현장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첫날부터 처참했다. 인력 부족, 연잇는 로케이션 이동으로 촬영 시간 부족, 스케줄 딜레이, 식사시간 부족, 그리고 밤샘 등등.. 브런치의 성실한 일러스트 작가 윤직원님께서 올리셨듯 '일을 이렇게 주먹구구로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시간도 없었다.
방송국에는 콘티가 없다는 걸 알게 된 이후 턱 하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영화처럼 스토리보드를 손으로 그릴 수 있는 시간도 없거니와 씬 리스트나 세부 컷 리스트가 없었다. 모든 건 메인 PD 머릿속에. Continuity(연속성)를 뜻하는 콘티가 없다는 건 중간에 실수로 빼먹는 컷이 생긴다는 것, 편집 때 붙여보면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지 않아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 그래서 심지어 다시 찍은 씬도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영화과 학생들도 안 하는 실수를 방송국에서 한다고?
이렇게 소규모 예산의 팀에 데이터를 관리하는 팀이 있을 리가 있나. 나의 촬영 현장 업무 마무리는 영상과 사운드를 백업하고 편집실에 갖다 놓는 것까지였다. 본편, 예고편 편집은 어차피 선배들이 했기 때문에 편집기 타임라인에서 바로 잘라 붙일 수 있도록 싱크 업무를 맡은 친구와 관리만 하면 됐다. (물론 여기도 자잘한 사고와 고성과 비난이 오갔다) 그렇게 촬영과 준비로 정신없던 어느 날 편집실에서 메인 PD 호출이 왔다. 또 무슨 사고가 일어났나, 잘못된 게 없을 텐데, 속으로 온갖 욕을 주워섬기며 뛰어내려가 보니 나에게 떨어진 건 과자 심부름이었다. 골방에 처박혀 편집 프로그램만 쳐다보고 있다 보면 식사도 거르게 되고 수분과 당이 부족해진다. 편집의 끔찍함을 잘 알기에 납득할 수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온갖 업무를 다 하는 것이 막내의 역할이기도 했고.
- 뭘로 사다 드릴까요? 좋아하는 과자 있으세요?
- 음.. 뭐.. 그냥.. 아무거나 잘 사와 봐.
쎄했다. 음, 이 심부름엔 표면적 목표 이상의 것이 있구나. 촉이 날아와 꽂혔다. 1회 편집을 앞둔 상황이었으니 서로 안 지 한 두 달 정도 됐던 때였던 것 같다. 콘티가 없는 현장에서 뭘 어떻게 찍을지 모르니 나는 어리버리해졌고 > 혼나고 > 기죽고 > 다른 것들에 실수하기를 반복하던 시기쯤이었다. 이제 이런 걸로도 평가를 하려고 하는 건가?라는 생각에 편의점에서 법인카드를 들고 고민했다. 단짠을 조합하고, 음료에, 혹시 모르니까 이것도, 얼마간 편집실에 들어박혀 있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니 저것도.. 이 정도면 됐겠지 불안한 마음으로 봉지를 움켜쥔 채 회사로 돌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봉지를 열어본 선배는 별로 탐탁잖은 표정을 지었다.
- 아....
선배의 입에서 나오는 말줄임표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음 그래 수고했어 가봐. 맛있겠다며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을 바란 것은 아니었고 뭐 이런 같잖은 걸로 혼이나 나지 않았으면 됐다 싶었다. 세 시간이 됐든 다섯 시간이 됐든 저 봉지로 버텨야 할 텐데 싫으면 어쩔 거야. 그래도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니 영 기분은 별로였다. '규격 편지봉투 10매를 사와라 > 네 여기 사 왔습니다 > 그래 수고했다'라는 흐름이 아니었으니까. 사무실로 올라가는 길에 이 상황을 전부 지켜본 다른 선배가 쓱 말을 던졌다.
- 저 선배 XX제과 과자 안 먹어.
아.... 이번엔 내 말줄임표가 보이는 듯했다. 말줄임표 뒤에 가려진 쌍욕도 보이는 듯했다. 내가 산 과자 중에 XX제과 과자가 몇 개나 섞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브랜드가 중요하다고? 듣자 하니 해당 기업 계열사 고위직 부모 덕분에 너무 질리게 먹었다는 것이다. 내가 사전에 묻지나 않았다면 억울하지나 않겠지. 제 질문이 잘못됐나요? 뭘 싫어하는지를 물어봤어야 합니까?
역시나 시청률은 곤두박질쳤다. 작가와 메인 PD는 멘탈이 탈탈 털리고 서로 연출이라고 우기듯 현장을 이끌었다. 그 히스테리에 스탭들도 혀를 내둘렀다. 본인의 깊은 고민에서 나온 방향성이 없으니 국장님 의견, 지나가던 선배 의견 다 듣고 와서 갖다 붙였다. 회가 거듭될수록 시청률도 좋지 않고 의욕이 떨어지니 메인 PD는 촬영 중에 계속 잠을 잤다. 콘티북이 잠자고 있으면 다른 선배들이 카메라 감독님과 세팅하고 첫 앵글을 잡았다. 모든 게 준비가 되면 그제야 내가 차에서 자고 있는 선배를 깨우러 갔다. 선배님 촬영 준비 다 됐어요. 나오면 모니터 앞에 앉아서 하이 큐, 끝이었다. 왜 이 컷은 클로즈업인지, 여기서 동선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연출에 대한 고민은 들어간 바가 없었다. 1,2회 방영 이후로는 시간이 없어서 편집도 본인의 손을 떠나 전문 감독님께 돌아갔는데 뭐가 그리 피곤했는지 알 수 없을 일이다.
이 안하무인의 PD는.. 결국 리더의 역할도 하지 못하고 연출의 역할도 하지 못하고 사람도 모두 잃었다. 이건 내가 연출하는 내 프로그램이고, 스탭들은 그냥 날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촬영 조명 미술을 비롯한 각 팀들의 의견을 듣고 조합해서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리에서 귀를 막고 있었다. 결과물이 본인의 신념이나 생각 끝에 나온 연출 의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잘 모르거나 이젠 귀찮아져서 스탭들이 내놓는 의견을 따르는 경우가 많으니 신뢰가 철저히 무너졌다. 대부분의 스탭들은 예전 프로그램 꼭지를 할 때부터 같이 하던 사람들이었는데, 메인이 되고 나서 사람이 바뀌었다며 말을 흐리다가 촬영회차가 마지막을 다해가자 막내인 내가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험담을 했다. 그렇게 나는 첫 프로그램을 마치면서 '나쁜 예'를 제대로 배웠다.
안 꼴리니까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일주일 쉬고 다음 프로그램으로 넘어갔다. 이미 시즌을 거듭하며 성공가도를 달렸고 시청자들의 기대도 한껏 받고 있는 드라마였다. 여긴 예산도 크고 배울 게 많을 거야, 나를 보내주던 선배들은 잘 배워오라며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며칠 잠자코 지켜보니 생각보다 삐걱이는 것 같았다. 아직 촬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내부 조연출들과 FD 간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일단 어느 현장이나 제작부와 연출부의 역할이 나뉘는데, 여기는 반대로 일을 하고 있었다. '연출부'라는 이름으로 FD들이 대본 분석 및 정리/스케줄표 작성 등을 하고 있었고, '조연출'이라는 이름으로 내부 AD들이 예산 및 세트장 관리, 보험 등등 제작부 역할을 하고 있었다. 프리랜서보다는 회사 차원에서 움직여 PD 직함 달고 처리할 수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이해가 갔지만, 여기서 서로 감정의 골이 보인다는 것이 중요했다. 연출부는 메인 PD가 첫 시즌부터 함께한 크루들이고, 내부 조연출들은 시즌마다 바뀌었기 때문에 서로를 파악하기 위해 복싱 링 위에서 거리를 재듯 견제하며 가벼운 잽을 날리고 있었다. 선배들은 FD를 무시했고 그러니 당연히 FD들도 우리를 존중하지 않았다. 그때까지의 나는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사람이었어서, 허허 하며 양쪽에 싫은 소리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근데 또 영 탐탁잖았다. 내가 조연출이라고? 저 멀리에서 인파나 차량을 통제하기 위해 경광봉을 흔들거나, 출출한 스탭들을 위해 간식과 음료를 사다 나르거나, 이동식 화장실에서 똥물이 넘치면 허공을 향해 짧은 악을 지르고는 정화조 차를 부르는 사이에 코를 막은 채 청소를 하고, 회사와 현장을 왔다 갔다 하며 필요한 것을 조달하거나 하는 제작부 업무이다 보니 '조연출'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촬영 현장에 붙어있긴 하나 모니터와 카메라 옆에서 일하며 소품을 챙기고 앵글을 보고 메인 선배가 연출을 어떻게 하는지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심지어 대본을 볼 필요도 없다는 걸 아주 늦게서야 알아차렸다. 내 손에 대본이 들어오긴 하지만 바로 책장으로 직행시킨다 해도 내가 하는 일에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을. 심지어 제작부 선배들은 현장에 나갈 필요도 거의 없어서 한 명은 사무실에 한 명은 편집실에 있고, 막내뻘인 나와 다른 언니만이 남았다. 나는 사무실에서 지루하게 영수증 작업이나 하고 있기 싫었고, 언니는 더운 날 에어컨도 없는 밖에서 고생하는 것이 힘들어 합의 하에 나만 계속 현장엘 나갔다. 죽상을 하고.
일단 촬영을 나가면 5일분 짐을 쌌다. 한 번은 3일째 쯤인가, 사무실과 종편실을 오가며 해야 할 일이 생겼다. 마침 일손이 부족해져 현장에 있던 내가 불려 들어갔고, 그 덕분에 편집실에 있던 선배가 귀찮다는 핑계로 나에게 뭔가 기회를 주려 예고편 편집을 맡겨주었다. 나는 편집을 (아주 매우 심하게) 좋아하지 않지만, 오랜만에 대본도 다시 읽고 촬영본을 들춰보고 예고를 만들면서 허상뿐이었던 조연출 직함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뭔가 일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이야기를, 이 작품 제작을 내가 그저 돕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없던 소속감이 갑자기 뿅 하고 생겨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편집을 마치고 다음 날 아침 세트장으로 갔다. 막내에게는 선배 간식뿐만 아니라 식사도 챙겨 드려야 하는 일이 하달되어, 허허벌판 새벽에 그나마 연 맥도날드를 찾아 맥모닝 세트를 줄줄이 사들고 현장으로 나갔다.
- 안녕하세요 선배님. 아침 사 왔습니다. 촬영감독님도 드세요~ 안녕하세요 조명감독님 이것 좀 드세요~
- 응.. 근데 너넨.. 꼴리면 나오냐?
네?
점잖은 양반이었다. 사실 말도 별로 한 적 없었다, 달리 할 말도 없었고. 나는 제작부 역할을 하고 있으니 프로듀서 역할을 하는 둘째 선배와만 얘기하면 될 일이었다. 왔다 갔다 인사하고 간식이나 김밥 조달이 다였고 그때마다 고맙다고 하던 양반이었다. 근데 아침 여섯 시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저 질문을 하는 걸 보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피로하면 사람이 저렇게 되는구나. 근데 (심한 욕) 내가 놀다 온 것도 아닌데 짜증은 난다.. 는 생각들. 순간 '꼴려서 나온 건 아닌데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가 목 끝까지 차올랐다. 메인 PD로 모든 책임감을 어깨에 진 당신도 힘들었겠지만 나도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 때였다. 밤샘 촬영을 하면서 차라리 노동의 강도가 높아서 힘든 거면 작품의 퀄리티를 위해 막내의 열정을 불태운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었다. 밤샘 촬영을 해도 나는 카메라가 돌지 않을 때 에어컨 바람을 안에 넣어주기 위해 문 밖에서 대기하고, 추울 땐 핫팩을 흔들어다 스탭들에게 공수하고, 야식을 사다 나르고, 밤에는 소음 차단할 일이 적어서 촬영 현장 안에 있을 수 있어도 좁은 공간 안에 빽빽이 들어찬 스탭들 사이를 뚫고 모니터 옆에서 지켜볼 수 없었다. 물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아니라 누가 와도 대체 가능한 일들이었다. 연출부 최고참은 (돈은 받고) 현장에 안 나온 지 오래됐고, 바로 밑 FD는 스케줄 정리를 이유로 연출부 컨테이너에만 있곤 했다. 가끔 내가 없는 날에는 그들이 했다고 했다. 그럼 진짜 내가 필요 없구나.
당연히 어느 곳이나 그렇겠지만 초반엔 허드렛일 하는 경우가 많다. 조연출이라는 이름이 또 한 번 거슬렸다. 내부 조연출이고 이름 끝마다 PD님~ 하니까 스탭들이 만만한 막내에게 모든 걸 물어보는데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여기서 난 대체 무얼 하는가? 영국에 와서 Runner라는 직책이 있는 걸 알게 됐다. 현장에서든 종편실이든 자질구레한 일들을 하면서 경험을 쌓고 내가 이 일에 적합하다는 판단이 들면 조금씩 영역을 넓혀나가 3rd, 2nd, 1st 조연출 일을 찾게 된다. 내가 하던 업무를 여기서 설명하려면 Runner의 대부분 업무와 아주 약간의 DIT 업무, 또 조금의 편집 보조 업무 등이 되겠다. 근데 직함은 Assistant Director! 회사 입장에서 보면 어쨌든 아주 적은 비용으로 (포괄임금제라는 개 같은 법이 있다) 열정 오지게! 고효율로! 다양한 일을 해주는 계약직 조연출은 어느 팀에 꽂아놔도 불평 없이 일을 해주겠지 라는 생각이었겠구나 짐작해본다. 이런 다양한 일을 하며 바득바득 이를 갈아 저 높은 곳에 올라가리라 마음을 먹고.. 그곳에 올라가면 FD를 무시하고.. 악순환의 연속이다.
첫 프로그램에서 장비팀을 이끌던 나이 지긋한 팀장님께서 어느 날 나를 보고는 불러 세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셨다. 좀만 더 있으면 늦어. 방송을 계속할 거면 공부해서 공채를 하고, 영화를 하고 싶으면 좀 더 깊게 고민해봐. 여긴 지상파도 아니고 학원도 아니라서 연출을 할 거면 배우기가 쉽지 않아. 그만둘 거면 빨리 그만두는 게 낫단다. 그날 짧은 10분간의 대화에서 나는 딱 일 년만 하고 그만둬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공채든 영화든 상관없다. 나는 메인 PD가 되려고 이 의미 없는 일을 계속하지는 않겠다고. 막내의 뒤치다꺼리는 익숙했지만 이렇게 그냥 마구잡이로 일해도 되나 싶었다. 내가 얻는 것은? 연차? 그렇다고 다른 방송국에서 조연출 일을 한다고 달라질까? 계속 이렇게 소모되기만 하면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지만 그걸 얻기도 전에 모래알처럼 부서질 것 같았다.
두 번째 프로그램 거의 마지막 촬영쯤일까, 인기가 높아지자 로케이션 촬영에 사람들이 몰리고 하루 종일 지쳐있던 때였다. 지나가는 시민의 휴대폰 촬영을 제지했다가 시비가 붙었다. 나보고 성격 고치라는 말에 속에서 또 천불이 올라와 개싸움을 시작하려다가 번뜩 정신이 들었다. 온라인에 좋지 않은 이야기가 올라가면 막상 책임을 져야 하는 건 내가 아니었다. 그리고 정말 성격을 고쳐야만 할 정도로 내가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시민을 보냈다. 그때 나는 내가 1년 동안 서서히 괴물로 변해갔구나, 하고 느꼈다. 몸도 마음도 말라갔고 모르는 사람도 나를 보면 이 사람에게 뭔가 문제가 있구나 싶을 정도로 영혼이 빠져나갔다. 그때쯤 계약 연장과 다음에 넘어갈 프로그램 때문에 회사에서 프로듀서 선배와 국장님을 번갈아 만났다. 아 저는 아닌 것 같아요.. 왜 아닌지 확실히 말하지도 못하고.
3~5일씩 촬영을 마치고 새벽에 여의도나 상암동에 도착해 집에 오는 택시를 탄다. 집 앞이 아니라 멀찌감치 역 근처에 내려 편의점에 들른다. 스트링치즈 하나, 가끔은 라이언 스티커가 든 치즈케이크도 하나씩 집는다. 15분 동안 집을 향해 걸어가며 치즈를 씹고 빵을 쪼갠다. 어슴푸레한 새벽에는 해가 떠오고 아직 거리엔 사람도 없이 조용하다. 고요하다. 평화롭다. 이제 좀 자겠구나. 쉬는구나. 나는 퇴사해야겠구나.
들어가는 것이 쉬웠던 만큼 나오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계약이 종료되는 날 조용히 짐을 정리하고 주변 감사한 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선배들과 간단하게 저녁을 먹은 후 집으로 돌아오며 사원증을 구겨버렸다. 아마 수백수천 명이 이 업계를 들락날락했을 것이다. 반짝반짝한 조명 밑에서 일하는 건 스탭이 아니라 연기자들인데, 방송/영화 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우와~ 한다. 누가 뭐 하는 사람이냐고, 뭐 했던 사람이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않고 싶다. 내 이력을 지우고 싶다. 그렇게 퇴사했고 지금도 생각만 하면 가슴이 턱 막혀온다. 그거 아니면 얘기할 수 있는 게 없어서 힘들었던 시절도 있지만 찬찬히 새로운 경험들을 쌓는 중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멍청하게 듣고만 있거나 속으로 쌍욕만을 내뱉어 내 마음을 병들게 하는 일은 없겠지. 아무리 괴로운 일들이라도 다 지나서 회상하면 배울 점이 있고 배운 점이 있다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영 현명한 사람은 아니었는지 악에 받쳤고 대가리만 커졌다. 가장 최근에 일했던 회사에서는 그때 아무 말 못 하고 있던 내게 당당히 보여주고 싶었는지 논리적으로 말을 다 뱉어냈고, 감정적으로 우는 팀장과 바득바득 싸우다 결국 또 한 번의 퇴사를 결정했다. 너무 극단적이어도 좋진 않지만, 이번 조직에서는 할 말이 많아도 말이 통하지 않으니 하지 않는 게 낫겠다 싶었다. 이제는 그저 할 말은 하고 살고 싶다. 내가 들은 무자비한 말들처럼 상대방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 말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위계나 현실에 눌려 속으로 썩어 문드러지는 것보다는 거리로 나앉더라도 마음이 편할 그런 말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