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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마레 Dec 26. 2021

사회과학 고양이 ‘코루’?!

캣맘, 캣파파… 그들만 아는 어떤 이야기

“우리 코루는 말이야.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

학구열에 불타는 대한민국 엄빠가 할 법한 발언으로 두 살 난 고양이를 소개해 놀라움을 안겼던 코루의 파파 H선배. 그는 사회학자다.


사회과학 출판사를 운영하는 캣맘 M선배에게 코루 사진과 함께 ‘고양이 노력 안 해 썰’을 들려주었더니, 덜컥 "이 친구는 사회과학하게 생겼네. 미간에 주름 좀 봐”라며 코루는 엄빠 닮아서 주변에 관심이 많고, 진지하며, 비판적인 고양이라고 분석했다. 거기에 “고양이들은 다 천재야"라며 ‘고양이 천재썰’을 추가했다.


사실 수많은 캣맘, 캣파파들은 대부분 이 수준을 넘어선다.  고양이 자랑용 소셜미디어 이용자도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는 때때로 캣맘, 캣 파파들과 일상적 대화를 하다가, 어느 순간 고양이 이야기가 시작되면 내 표정도 긴장모드, 더 이상 대화를 하지 못할 것 같다는 공포심이 들곤 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목소리도 빨라지고 다급해지곤 한다. ‘네가 모를까 봐 말해주는 건데, 우리 냥이 얼마나 이쁘고 훌륭하다고’ 뭐 이런 마음이겠지.


언젠가 캣맘, 캣 파파들과의 소통과 공감이 어렵다고 코루맘 G언니에게 털어놓았는데, 자신조차도 코루를 키우기 전까지는 이런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아마도 그들에겐 내가 모르는 어떤 다른 세계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지난 여름 직접 코루를 만난 뒤, 코루는 H선배의 말 처럼 노력을 안해도 될 만큼의 놀라운 미모를 가진 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니 알 수밖에 없었다. 누가 반하지 않겠는가.

M선배의 표현처럼 코루가 사회과학 고양이라서 혹은 주변에 관심이 많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사교적인 성격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참 잠을 자다가도 찾아온 손님을 맞으러 나오기도 했고, 졸린 게 분명해 보이는데도 말을 못이을 애교를 선사해 주었다. 저런 다정한 아이에게… 무슨, 노력을 하라는 건가. 결국 엄빠의 욕심인 겐가.


지난번 아프리카 냥이 수푸에 이은 두 번째 냥이 유화 작품 코루. 난 사실 몇 달 전 그렸던 하얀 강아지 숑이 덕분에 흰색과 털 표현이 동시에 진행되는 그림은… 당장은 그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친구를 만나보고는, 마음이 동하여 색 진행이 어려울 것이라는 염려는 잠시 묻어두고 그려보기로 했다.


우선 기준이 될 사진을 정해야 했다. 다양한 사진을 코루 엄빠로부터 받고, 또 직접 찍기도 했지만 코루만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사진을 찾기 어려워서 아프리카 냥이 수푸를 먼저 그리게 된 이유도 있다.


다행히 아프리카에서 한국으로 백신 휴가를 왔던 수푸맘 J언니에게서 코루 특유의 표정이 잘 드려 나는 직접 찍은 사진을 전해받고서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코루 넌 진지한 이 표정이 꽤 잘 어울리는구나!”


작업 과정 내내 강아지 숑이만큼이나 흰색으로 색 선택이나 털 묘사에 커다란 어려움을 선사한 코루. 결국 부담스러운 마음에 얼굴에 붓질은 미뤄두고 몸통 컬러와 씨름하고 있으면 미술 선생님은 약간은 날카로운 말투로 “얼굴이 김태희, 정우성이에요! 얼굴부터 해주세요” 그랬다. 코루는, 누가 봐도 대한민국 톱클래스 미모의 냥이였던 것이다.

흰색의 대상을 그릴 때는 무작정 하얀색을 많이 쓰는 것도, 어두운 표현도 주의해야 한다. 확실하게 밝음와 어둠을 구별해 줄 수 있는 강조점을 살리는 것이 포인트.


그럼에도 코루를 그리는 과정 내내 중간톤이 없거나 너무 얕아서 깊이감이 부족하고 단절된 일러스트 느낌을 준다는 지적을 받곤 했다. 사실 중간톤의 부족, 단선적인 느낌은 근래 혼자 작업한 그림을 본 미술 선생님들의 공통되는 평가다. 코루 이전에도 지적을 받았던 터라 꽤나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또 중간톤에 집중하다 보면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에 빠지고 말곤 했다.


그래서일까. 최근 한두 달 동안 혼자 있는 시간 동안 그림을 전혀 그릴 수 없었다. 저녁이 있는 지방살이를 시작한 후 퇴근 후 큰 힘이 되던 나만의 회화시간이었는데 말이다. 겨우 초보티를 벗어나 약간은 그림처럼 그려내나 싶었지만 현실은 허우적거리는 단계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기초적인 공부를 하지 않은 한계일 수도.

강민아. 코루. 2021. Oil on canvas. 24.2x33.4cm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만나게 되는 소중한 존재들을 그리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 공간에서 계속 꾸려갈 것이다.


코루는 임시로 아기 고양이의 보호자가 되었던 H선배 부부에겐 특별한 존재다. 그들은 중성화 수술 과정에서 코루에게 남은 생명이 1년 남짓이라는 의사 소견을 듣고서 다른 가족을 찾기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에 이 아이의 엄빠가 되었다. 다행히도 의료진이 예상했던 시기를 지나 코루는 엄빠와 잘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오래도록 행복했으면 좋겠다.

코루는 1년 이상은 힘들 거라는 의사의 예상을 훌쩍 넘겨 3년 6개월을 더 살았다. 엄빠는 물론 많은 사람들과 사랑을 주고받다가  2023년 12월 갑자기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그렸던 코루의 그림은 코루를 기억하는 공간에 남았다. 이제와 보니, 코루의 사랑스러움을 충분히 담지 못한 거 같은 속상함도 함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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