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기적을 만든 영웅을 기억하는 방법
최동원을 기억하고 싶었다. 전설 같은 영웅 서사를 후대에 듣거나 영화나 책을 통해 접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내 어린 시절 아버지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열광했던 스타였으며, 그 놀라운 승리를 나 역시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 중에 3S 정책을 언급하며 프로야구를 폄훼하는 사람들도 많다. 단언컨대 전두환의 유일한 성과는 프로야구 도입이며, 굳이 하나만 더 들자면 죽음을 앞두고 광주에 가식적일 수밖에 없을 사과를 하지 않음으로써 피해자가 평생의 고통을 딛고서도 용서해야 할지에 대해 조금의 고민도 할 필요가 없도록 학살자로, 독재자로 영원히 남은 것이리라.
어른이나 아이에게나 놀이 문화가 부족하던 80년대 그 시절에 야구장은 커다란 놀이터였다. 취학 전 아동이던 나는 부모의 손을 잡고 야구장에 자주 갔다. 이른 아침부터 엄마는 김밥을 쌌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나들이를 갔다. 야구장이 있는 사직동은 벌써 들썩이고 있었다.
야구장에 들어서면 말아쥔 신문을 다른 손바닥에 두드리며 응원하던 많은 아저씨들이 있었다. 물론 그 뒤로 응원도구는 엄청난 진화를 했다. 그 과정을 오롯이 겪으며 나는 수없이 야구장에 갔다. 중고등학생 시절 중간고사가 끝난 날 교복을 입고도, 소개팅을 한 오후에도, 서울에서 직장을 다닐 땐 회사 체육대회로도 야구장에 가곤 했다.
매년 전국의 야구장을 모두 찾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친구들과 원정경기를 관람하기도 했다.
이토록 응원을 해도 프로야구 40년 역사에 단 두 번 밖에 우승하지 못한 롯데 자이언츠. 그야말로 난감한데, 최초의 우승은 84년이다. 투수 최동원은 당시 7전 4선승제의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따내며 약체 롯데 자이언츠를 창단 첫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의 불같은 강속구, 커브의 곡선도 매력적이었다. 불세출의 투수였던 그를 사람들은 무쇠팔이라고 불렸다. 그는 강철 같은 사람이었다.
자신은 스타 선수였지만 어려움을 겪는 선수를 위한 최소한의 복지를 가능케 할 선수협 창단을 주도했던 최동원은 재벌 중심의 야구 구단으로부터 배척받았다. 그 뒤 롯데 자이언츠를 떠나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되었고, 지고 있던 경기의 마무리 투수를 했던 어느 날, 경기를 지켜보던 나조차 모욕감에 시달리게 했던 그날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YS 3당 합당에 반대했던 노무현을 비롯한 소장파들이 탈당해 만든 꼬마민주당 후보로 부산 서구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민주주의, 새정치를 향한 강속구’ 그의 슬로건은 정말이지 최동원다웠다고 생각한다. 이후 방송 패널로 활동도 하고, 야구 코치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그는 1984년 마운드에서 만큼 반짝이지 않았다.
그의 생전 인터뷰에서 본 ‘별’에 대한 생각은 인상적이다. 별은 그 자체로 떠있어서 반짝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뒤따라 올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는 자신이 별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고, 길잡이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반짝였던 그 시절, 이제 나보다도 훨씬 어린 시절 최동원의 휘어지는 커브, 강속구를 기억하며 그림을 그리는 내내 즐거웠다. 문제는 속도를 표현하는 일이었다. 최동원은 155km/h 빠르고 낙차가 큰 커브를 주로 던졌는데, 공을 던진 직후의 상황이라 공을 그려 넣고 싶었다.
하지만 기준이 된 사진에는 공이 없었다. 아마 이미 공은 지나간 뒤였을 것이다. 자료를 좀 찾아봤지만 당시 카메라로써는 그의 공을 제대로 잡아낸 영상조차 없고, 최동원의 공으로 안타를 가장 많이 친 해태 타이거즈 김성한 선수조차 공이 잘 보이지 않았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으니 공은 결국 상상해봐야 했다.
결국은 던져진 공이 바라보는 투수 최동원을 그렸다고 생각한다. 또 이 그림의 기준이 된 사진은 배경이 무척이나 어두웠다.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처럼 관객들의 컬러풀한 배경을 곁들여, 그를 지켜보고 응원해온 나를 포함한 관객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본 누군가는 이제까지 내가 그린 그림들 중에 가장 역동성과 긴장감이 돋보인다고 했지만 정작 내가 표현하고 싶은 건 그의 고독감과 그를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 그림을 스케치하고 있을 무렵 다큐멘터리 영화 <1984 최동원>이 개봉했다. 영화는 1984년 가을야구를 시작하기 전부터 시작해… 한국시리즈 우승의 순간까지를 다룬다. 영화 마지막에는 최백호의 바다 끝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스케치를 끝내고 주인공의 유니폼과 얼굴색을 한번 입힌 상태의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일이 있다. <1984 최동원>의 조은성 감독이 좋아요를 눌러주었다. 아마도 #최동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영화를 보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데 위로받은 것처럼 감독님도 조금은 그런 마음이 들었다면 좋겠다.
이 그림을 그리면서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인간 본연의 외로움 같은 거였다. 그 역시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늘 자신만만했던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관객들이, 폭죽처럼, 또는 추파츕처럼 그를 응원하고 또 그 시절 살아갈 힘을 얻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또 그가 떠나고 난 뒤에도 그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