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마레 Oct 20. 2022

내 그림으로 청첩장 만들기

첫 수채화로 청첩장을 만든 패기

벌써 5년이 되었다. 내 글씨와 그림으로 청첩장을 만든 지. 지금 와서 보니 손발이 오글오글… 아이들이 직접 만든 어린이집 재롱잔치 초대장만 같다. 어쩔.


업무상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온 나는 청첩장 사이트에서 이미지와 사이즈와 같은 몇 가지 옵션을 선택해 청첩장을 만드는 것이 왠지 식상했다.


그것은 청첩장 이어서만은 아니고, 그저 처음 마주한 새로운 콘텐츠였기 때문일 것이다. 더군다나 그 무렵 나는 캘리그래피와 색연필로 그리는 수채화에 한창 몰두해있었다.

강민아. color on paper. 2017

고민 끝에 셀프로 디자인한 청첩장을 제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이트를 찾았다. 먼저 화선지에 먹물로 글씨를 쓰고, 수채화 용지에 그림을 그렸다.


직접 쓴 글씨와 그린 그림을 스캔해서 일러스트 프로그램에서 위치를 잡아 청첩장 셀프 사이트에 업로드하면 오류가 없는지 확인하고 인쇄를 해준다.


셀프 청첩장 만들기는 어차피 처음 하는 일이었고, 우리에게만 의미 있을 뿐이니까. 그저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당시에는 계절과도 맞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벚꽃을 한가득, 제주올레 표식인 리본을 그려 넣고, 신랑 신부 두 사람의 모습까지… 그저 내가 쓰고 그리고 뚝딱뚝딱 만들어서 신나고 즐거웠던 결혼식 청첩장.


지금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패기 넘치는 일이었다. 청첩장에 사용된 꽃과 신랑 신부를 그린 수채화는 웨딩 테이블을 장식하는 소품으로도 활용하기도 했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요즘 나는 아이패드로 다양한 디지털 드로잉을 그려오고 있다. 각종 음식들부터, 정물, 풍경까지 못 그리는 게 없는 데다(기능적으로 말이다.) 수정도 손쉬운 디지털 드로잉이 흥미롭다.

강민아. 디지털드로잉. 2022.

그러던 중에 오는 11월 중순 결혼하는 직장 후배가 청첩장 선택을 놓고 고민하는 것으로 보고 신랑 신부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결혼의 계절, 어디선가 본 듯한 청첩장보다는 개성 넘치는 청첩장을 만들고 싶지만, 손재주가 없다며 후배는 아쉬워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그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결혼선물이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으니까.


한편으론, 다른 사람의 청첩장에 그림을 그린다는 건 좀 부담스러웠지만, 그저 “한번 해보면 어때” 하는 또 다른 의미의 패기가 발동했다. 후배로부터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억지로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도 했다.

강민아. 신랑과 신부. 디지털 드로잉. 2022

앞서 신호등을 부른 가수 이무진의 디지털 드로잉을 해본 경험으로는 실제 인물과 유사한 느낌(!!)이 중요한 만큼, 두 사람의 일상 사진을 받아 얼굴과 체형 등을 반영했다. 몇 차례 조율을 거쳐 신부의 어머니조차 딸과 똑 닮았다고 하셨으니 성공적이다.


5년 전과는 다르게 디지털 드로잉으로 그려진 만큼, 스캔을 하는 등의 작업은 불필요했다. 이 그림을 그리면서 디지털 드로잉의 레이어에 대한 이해도 조금은 더 깊어졌다.


그리고 오늘, 디자인을 끝내고 인쇄를 마친 작고 귀엽고 따뜻한 청첩장을 받았다. 청첩장을 받아 쥔 분들이 신랑 신부와 닮았는지 자세히 본다는 후기도 전해 들었다.


오는 11월 중순, 디지털 드로잉으로 그린 청첩장이 안내하는 이 결혼식에 가야겠다. 왠지 설레는 걸. 두근두근. 가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와 나의 스타, 벨스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