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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숑알숑알 Oct 17. 2021

홀로 또 함께, 연대도-만지도 여행기

섬이란 내게 두렵지만 아름다운 고독의 땅

‘섬들을 생각할 때면 왜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일어나는 것일까? 난바다의 시원한 공기며 사방의 수평선으로 자유롭게 터진 바다를 섬 말고 어디서 만날 수 있으며 육체적 황홀을 경험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섬 말고 또 어디에 있겠는가?’


 프랑스 소설가이자 철학자 장 그르니에의 유명한 저서 『섬』 중 인상 깊었던 문장이다. 60여 년 전 드넓은 대서양 어딘가를 바라본 서양의 철학자, 그리고 우리나라 다도해를 더없이 아끼는 오늘날의 내가 같은 문장에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비하게 느껴진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섬’만이 줄 수 있는 종류의 감상이 존재한다. 그 존재감은 대단히 분명해서 나는 벌써 6년째 매해 남해의 섬을 한두 곳씩 부지런히 드나들고 있다.


 작년 가을, 심신에 곰팡이처럼 들러붙은 피로를 떨치러 통영으로 휴가를 떠났다. 도시의 권태가 극에 달할 때면 나는 언제나 섬을 떠올리곤 했다. 장 그르니에 말마따나 '난바다의 시원한 공기'며 '사방으로 수평선으로 자유롭게 터진 바다'가 못 견디게 그리워지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통영으로 도망치듯 달리는 버스에서 한 곡 반복으로 들은 노래는 이태원의 솔개(1982)였다. 불필요한 대화가 잔뜩 쌓여 입을 꾹 닫고 싶어질 때 내 맘 같은 노랫말이 콕콕 날아와 박혔다.


‘우리는 말 안하고 살 수가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 / (…) 수많은 질문과 대답 속에 지쳐버린 나의 부리여’


 전날 줄곧 날이 흐려서 걱정했는데 섬에 들어가기로 한 날은 아침부터 눈부신 구름과 새파란 윤슬이 나를 반겼다. 적당한 피로와 함께 눈을 떴지만 숙소 창문으로 맑게 내리쬐는 볕이 그 어떤 알람보다 효과적이라 벌떡 일어나서 침대를 박찼다.

 이번에 가고 싶어 점 찍어 둔 섬은 ‘연대도’, 그리고 ‘만지도’였다. 두 섬은 2015년 준공된 흔들다리로 이어져 있어 한번의 여행으로 일타이피, 아니 일타이도(島)가 가능하다. 통영 여객선터미널 대신 연명항을 이용하면 되고, 거대한 여객선 대신 비교적 작은 배로 딱 15분만 뱃길을 가르면 도착할 수 있다. 


 섬에 발을 딛고 뒤도는 순간부터 만지도는 축복 같은 비경을 보여줬다. 걷기 좋게 조성된 데크길을 지날 때면 이렇게 맑을 수가 있나 싶게 신기해서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바다가 발 밑으로 펼쳐졌다. 출렁다리에서 내려다본 물결은 잠시 넋이 나가도록 편안한 파동을 만들어냈고, 그 옆의 해변은 해외 어딘가 혹은 제주를 떠올리게 하는 에메랄드 빛이었다. 어서 산행에 접어들어야 하는데 자꾸만 풍경이 발길을 붙잡아서 난처할 지경이었다.


 이날 나의 코스는 만지도가 아닌 연대도의 ‘지겟길’이었다. 옛날 섬 주민들이 지게를 지고 오르내려 애환이 담긴 길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총 2.3km, 1시간 30분 코스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등산로에 진입했다. 하지만…


 ‘정말 지게를 지고 이 길을 걸으셨다고? 맨몸으로도 너무 가파른데. 조상님들 체력 대체…?’ 출렁다리와 해변에 제법 보였던 관광객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산길에는 오직 나 혼자였다. 언젠가 걸었던 비진도나 연화도의 등산로처럼 푸른 바다를 옆에 끼고 걷는 길을 상상했으나 눈앞엔 빽빽한 나무뿐. 지금 섬의 산길을 걷는 건지, 내륙의 어느 산을 오르는 건지 구분이 안 갈 만큼 깊은 산속이었다. 사람의 발길이 덜 닿은 만큼 날것의 원시림을 맘껏 볼 수 있었지만 혈혈단신 홀로인지라 ‘수상한 차림의 낯선 이를 마주치면 어쩌지’,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이 나타나면?’ 싶은 걱정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불안과 두려움에 둘러싸여 정상을 향해 발걸음만 옮기던 그때, 등산복 차림의 어르신들이 반대편에서 걸어오시는 모습이 보였다. 인적 드문 산길에 여자애 혼자 헉헉대며 올라와선지 먼저 “어떻게 혼자 올 생각을 했냐, 무섭진 않냐”고 물으셨다. 지겟길의 절반도 안 온 지점이었는데 너무도 따뜻한 그 말씀에 ‘맞아요 정말 무서워요!’ 답하고 이 분들을 따라 돌아갈까도 생각했다.


 그만큼 아무것도 없는 산길이 무서웠지만 나약한 유혹을 꾹 이겨내고, 잡생각을 지우려 애쓰며 도로 걸음을 재촉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게 힘든 순간마다 북바위 전망대와 오곡도 전망대에 멈춰 서서 탁 트인 섬의 군락을 바라봤다. 섬 지도가 그려진 팜플렛은 등산길 내내 부채로 쓰느라 이미 너절해졌고, 온몸에 땀이 주륵주륵 흘렀다. 


 사람들이 늦게 정착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만지도(晩地島).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만지도는 지네, 연대도는 솔개, 그 옆의 저도는 닭에 비유되어 서로 먹이사슬로 돼 있기에 세 섬이 모두 번성할 길조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하필 솔개에 빗대어진 연대도를 두 발로 돌아봤다니 기분이 더욱 묘했다. 앞서 말했듯 이태원의 노래 ‘솔개’를 여행 내내 배경음악 삼아 듣고 또 들었으니.


 솔개에 관한 이야기 중, 부리가 다 닳으면 스스로 바위에 부리를 깨서 새로운 부리를 자라게 한다는 설이 있다. 되돌아가고픈 유혹을 이기고 지겟길을 쭉 돌아본 뒤 나는 꼭 새로운 부리가 돋아난 기분이었다. 도로 재생될 일상을 꼿꼿하게 날아다닐 씩씩한 솔개가 된 것처럼. 빠듯하게 걸으면 이날 만지도 길까지 모두 걷고 나올 수 있었지만 가지 않은 길을 남겨두기로 했다. 그래야 이 아름다운 섬에 빠른 시일 내로 돌아오게 될 테니까.


 가끔 압도적으로 거대한 바다를 마주했을 때 나는 두려움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아름다움과 두려움은 마인드맵에서 아주 가까이 이웃한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장대하게 철썩이는 바다와 섬의 깊숙한 산길은 단순히 아름답지만은 않다. 바다의 잔물결은 자칫 홀려서 몸을 던졌다간 먼지만큼 작은 나 하나쯤 단숨에 집어삼키리라는 두려움이 있고, 인적 드문 섬의 산길에는 한치 앞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몰라 긴장을 놓을 수 없게 한다.


 두려운 감각은 아름다움과 나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둔다. 아름답다고 해서 쉽게 다가가거나 가볍게 대하지 못하게끔 팽팽한 긴장을 준다. 아름다운 풍경을 멀리서 지켜보면 아쉬워지고, 아쉬움은 그 다음을 기약하게 한다. 나는 그래서 다시, 다시, 또다시 섬을 찾게 되는 것 같다.

 거대한 산과 바다 앞에 내가 풀 한 포기보다 작은 존재로 실감되는 순간은 기쁘고도 서글프다. 각질처럼 돋아난 자의식을 도닥도닥 잠재우고 겸허한 마음을 품은 채 떠나면 두 계절의 일상쯤은 그 기운으로 살아가곤 했다. 나는 이날 연대도 지겟길 위에서 느낀 두려움을 금세 잊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날로부터 정확히 7개월 후, 나는 이 아름다운 섬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이번에는 내게 무한한 의미와 신뢰를 주는 남자친구와 함께였다.


 홀로 연대도를 걸었던 9월 못지않게 올해 4월의 섬도 날씨가 참 좋았다. 여행을 떠나는 모든 사람이 꿈꾸는 날씨였다고 해야 할까? 걷다 보면 기분 좋게 땀이 맺혀 외투를 벗게 되는 난공기가 우리를 감쌌고, 이따금 먼 곳의 바닷바람이 땀을 식히고 잔잔하게 뒤척이는 파도를 만들어냈다. 따끈한 봄볕 때문일까, 바닷물은 저번보다 더 투명하게만 보였다.


 항구 근처에서 만지도의 명물 '전복 해물라면'을 주문해 밥까지 말아 든든하게 먹은 뒤 2시간 코스의 만지도 산행을 시작했다. 깊은 산길이 이어지던 연대도 지겟길과 달리 등산 초입부터 오색빛깔 남해를 옆에 끼고 걷는 데크 길이 펼쳐졌다. 초봄의 날씨답게 야생 두릅부터 이름 모를 들꽃까지 구석구석 피어 있어 자주 멈춰 서야 했다. 만지도는 과연 사람이 늦게 정착한 섬이라서 그런지 도시의 섭생과는 풀잎의 채도부터 다른 느낌이었다.


 걷다 보니 어느 순간 뻥 뚫린 풍경 안으로 바다와 섬들이 들어왔다. 우리는 바위에 걸터앉아 몇 분쯤 조용히 그 풍경을 바라봤다. 세찬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고요히 훑어내는 바위, 나무 껍질 하나까지 후련하고 즐거운 상태처럼 보였다. 아마 섬에 있던 내 마음과 같았기에 그렇게 보였나 보다.


"우리가 지금 앉은 이 바위에서 다른 여행자들도, 다람쥐와 갈매기도, 바람도, 전부 이 풍경을 보며 쉬다 갔을 것 같아!"


 시야를 주렴처럼 둘러싼 섬의 군락이 아름다웠다. 자주 걸음을 늦추며 잔잔한 바다에 근심 걱정을 휘휘 풀어놓았다. 일상에서 경주마처럼 가까운 앞만 보고 달리던 눈의 고삐를 될 대로 나태하게 풀어두었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풍경 속에 머물며 소중한 사람과 추억을 쌓는 시간이라니. 흘러가는 매 순간이 넘치게 행복하고 아쉬웠다.




 장 그르니에는 그의 저서 『섬』에서, 섬에 대해 이렇게 덧붙인다. 섬(île)의 어원 자체가 그렇듯 우리는 섬에 가면 '격리된다(isolé)'고. 너른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마치 '혼자씩일 뿐인' 인간들 같다고 말이다.

 타인과 너무 자주 만나고 충분히 떨어져 있지 않다고 느낄 때 홀로 찾은 섬은 우리에게 분명하고 확실한 고독을 선사한다. 그러나 출렁다리와 수면 아래서 손을 맞잡고 있는 연대도와 만지도처럼, ‘혼자씩일 뿐인’ 섬들을 나란히 둘러보는 순간만의 아름다움이 있다. 혼자 고요히 섬을 걷는 시간만큼 소중한 이와 섬으로 떠났을 때의 충만한 기분도 이와 비슷하게 아름다우리라.


 시선의 거스름 없이 자유롭게 펼쳐진 바다에서 육체적 황홀을 경험할 수 있는 곳. 섬에 발을 디딘 순간 당신도 이 묘사를 실감할 수 있다. 홀로, 또 함께 아름다운 섬을 가슴에 채우고 돌아온 나를 믿고 누구든 섬으로 떠나보기를 권한다. 혼자면 혼자인 대로, 누군가와 함께면 함께인 대로 황홀할 것이다. 돌아간 일상에서도 아마 다시 섬을 생각하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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