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을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그 순간
언젠가 좋아하는 작가의 여행기에서 읽은 구절을 인용하면, 세상 사람들을 '떠돌이'와 '머물이'로 양분했을 때 나는 일백 퍼센트 후자에 속했다. 다들 혼자서도 쑥쑥 잘만 떠나던데 나에게는 너무나 막연한 모험으로 느껴졌다. 그러다 스물 네 살이 되던 해, 본격적인 취업 준비를 앞두고 두고두고 꺼내 먹을 자양분이 될 경험을 만들고 싶어 7일 간의 내일로 여행을 떠났다. 유서 깊은 머물이로서 굉장한 용기를 짜낸 결과였다.
나는 그렇게 흘러간 여행에서 별다른 욕심 없이 통영에 들렀고, 우연한 기회로 소매물도로 들어가는 배에 훌쩍 몸을 실었다. 그것이 기나긴 애정의 시작이 될 줄, 그땐 전혀 몰랐다. 남해와 섬 여행의 매력에 그야말로 퐁당 빠진 뒤로 일 년에 세 번씩 통영행 버스 표를 끊었다. 서울에서 꼬박 네 시간 삼십 분. 그럼에도 올 때마다 다른 섬을 찾는 재미에 질릴 틈도 없었다.
그리하여 2017년 10월의 어느 가을날. 웬만큼 유명한 통영의 섬들에 발자국을 찍고 난 뒤 비장하게 결정한 행선지는 바로 사량도였다. 여객선터미널이면 만사 오케이인 여타 섬과 달리 사량도는 가오치 선착장을 이용해야 했다. 하루를 묵고 나서 이틀째 되던 날 아침 7시에 번쩍 눈을 뜨고 가오치 선착장까지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사실 그 전날 통영 현지인 두 분 이상에게 선착장 가는 길을 소상히 들었음에도 신통한 길치인 나는 끝내 정류장을 헷갈렸다. 당황하던 차에 옆을 지나던 아주머니가 나더러 "어디 가시냐" 물었다. (아무래도 난 얼굴에 '어리바리 이방인' 낙인을 찍고 다니는 모양)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아주머니도 사량도에 가는 길이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자연스럽게 버스부터 아침 9시 배로 섬에 가는 길까지 서로의 다정한 말벗이 되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참 세상은 넓고 덕후는 많은 게, 인천에 살고 딱 나만한 딸이 있으시다는 아주머니는 사량도의 절경에 반해 올해만 여섯 번째 같은 섬을 찾고 있다고 했다. 주된 대화 주제는 역시 여행이었는데, 내게 정동진 당일치기와 남해 다랭이마을의 매력에 대해 설파하고 사량도 고수로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숨은 스팟까지 추천해주셨다. 아주머니의 딸도 나처럼 씩씩하면 얼마나 좋겠냐며.
평소의 나는 무심결에 '어디든 젊을 때나 쑥쑥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여행이 땡기면 언제든 훌쩍 떠나신다는 아주머니와 꽤 오래 얘기를 나누면서 속으로 깜짝깜짝 놀라느라 깨달은 사실이다. 좋아하는 섬의 풍경을 머릿속에 가득 띄운 채 내 눈을 바라보고 말을 이어가던 아주머니의 눈동자가 지금도 또렷하다. 나 역시 10년, 20년이 지나도 그처럼 시선의 끝을 빛내며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선착장에서 40분 걸려 도착한 사량도는 섬 안에 웬만한 편의점과 미용실, 식당이 즐비할 만큼 커다란 섬이었다. 버스를 한번 다시 타고 등산로 입구까지 가면서 보니 짧은 코스와 긴 코스를 선택할 수 있었다. ‘듣자하니 사량도 등산은 진짜 애들 장난 아니라던데’. 3초 정도 고뇌하다 나는 패기 있게 풀 코스를 택했다. 아아, 그것은 패기 아닌 객기였음을....
약간의 긴장을 느끼며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곧장 산행에 나섰다. 여기서 잠깐 나의 무모함을 묘사해볼까. 사량도 등반의 무시무시함을 익히 들어놓고도 납작한 캔버스 신발에 캔버스 백, 한 손에는 점퍼까지 든 상태였다. 다섯 시간 가까이 산을 오르는 동안 등산복과 등산화를 갖추지 않은 사람은 온 섬을 통틀어 나 하나였다. 마치 드레스코드를 잘못 듣고 찾아온 파티의 불청객 같았다. 내 행색이 너무 힘겨워 보였는지 먼저 "가방 들어줄까", "발 안 아프냐" 물어오신 어르신들이 여럿이었다. 와하하 제가 이렇게 바보인 걸 어쩌겠어요...
10월 말의 선선한 바람이 솔솔 불어줬음에도 초입의 오르막길부터 벌써 눈 속으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대략 멍해질 즈음 여자 한 분, 남자 두 분으로 구성된 무리가 내게 혼자 왔냐며 먼저 말을 걸어주셨다. 하하 네네, 섬 여행 왔어요, 적당히 대답하고 쭉쭉 올라가다가 다시 만난 그 분들이 괜찮으면 같이 올라가지 않겠냐고 물으셨다. 산 사람 느낌 물씬 나는 복장부터 근육(!)까지 그들은 너무나 전문가 느낌이라 "아휴, 저는 너무 느려서 답답하실 거예요" 했지만 정말 괜찮다고! 그들은 물병과 점퍼로 묵직한 내 짐도 배낭으로 덜어가 주시고, 일반인 이하 체력인 내 속도도 맞춰주시고, 카메라로 인생샷 찍어주시고, 중간중간 내가 기절하기 직전일 타이밍마다 아미노산 가루와 유쾌한 농담으로 나를 북돋워주셨다.
얘기 나눠보니 이 분들은 부산에서 트레일러닝 동호회로 만난 크루라고 했다. 트레일러닝의 다른 말은 산악 마라톤. 말 그대로 100km가 넘는 국내외 험준한 산을 몇 박 며칠씩 뛰어서 완주하는 스포츠다. 일행 중 여자 분이 마라톤 도중 발목을 다치셔서 재활 겸 산책 느낌으로(...) 사량도를 찾으셨다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직장을 다니는 틈틈이 체력을 단련해 휴가마다 해외 트레일러닝 대회에 참가하고, 한번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5일 만에 찍고 내려와서 네이버에 칼럼까지 기고하셨다고 했다. 이쯤되면 같이 산을 탄 자체가 영광일 정도였다. 몇백 킬로미터 산길은 예사로 다니는 분들이 고작 8킬로미터 코스에 온갖 앓는 소리내는 새끼 고라니 한 마리를 완전히 서포트해주셨으니.
사량도는 이전의 어떤 섬 여행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역대급 난코스였다. 정말 한 순간 발만 삐끗하면 뾰족뾰족한 돌산을 데굴데굴 구르기 십상이라 사망 사고가 일 년에 한 건 정도 꾸준히 일어난다고 했다. 그야말로 깎아지른 절벽과 90도를 이루는 철 계단을 두 손 두 발로 오르고 기어가기를 몇 시간... 중간중간 바라본 쪽빛 바다와 따가운 햇살, 새파란 하늘과 바게트 같은 구름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고개를 들 적마다 내 눈으로 본 비경을 실감하려 애써야 했다.
바로 '이 순간'이 나를 자꾸 섬으로 떠나게 한다. 섬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 360도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시야에 거스름이 없어지는 순간. 신비할 만큼 곧게 뻗은 수평선과 농도만 다른 무수한 섬의 군락이 그림 한 폭처럼 펼쳐진 순간. 치사량 이상의 황홀함이 해일처럼 몰아치느라 잠시 머리가 멍해지고 마는, 섬을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그런 순간.
아름다운 사량도를 눈에 담으랴, 크루 분들과 농담 주고받으랴, 조심조심 발을 디디며 생명 보전하랴 바쁘게 오르내리다 보니 어느덧 고행의 끝이 보였다. 이젠 뭐 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 상태이자 체력이 아닌 정신력으로 몸을 움직이는 경지였다. 마라톤 선수가 피니시 라인을 지나듯 '와~!' 소리치며 등산로를 벗어났다. 우리는 일단 배표부터 끊고 항구 근처 식당에서 해물된장찌개를 먹었다. 그러고 보니 아침밥도 배에서 물과 단팥빵으로 때운 난 흡사 진공청소기처럼 음식을 흡입했다.
통영으로 돌아오는 배에선 다같이 쪼로록 드러누워 손끝 하나, 발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그야말로 장렬히 뻗었다. 크루 분들과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버스가 들어오는 바람에 후다닥 작별해야 했다. 때때로 엄청난 인복이나 행운을 마주했을 때 누군가 신을 떠올리듯 나는 조상님을 떠올리는 편이다. 지금 돌이켜봐도 그들은 험준한 섬에 똑 떨어진 무방비 상태의 나를 조상님이 수호해주시느라 보내준 천사들이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굉장한 귀인이었다. 만약 사량도를 나홀로 올랐다면 정말로 200배쯤 더 힘들고, 생기 없고, 두렵고, 덜 즐거웠을 거다.
지금은 SNS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그 분들이 진정으로 늘 행복하면 좋겠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스쳐가는 귀인이 될지 모르는 일이니 언제든 소소한 호의를 망설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함께했음은 물론이다.
다음날, 오전 열 시쯤 숙소에서 눈을 뜨니 온몸이 두드려 맞은 듯 쑤셨다. 그렇지 이래야 제대로 섬 다녀온 기분이지! 며칠간 허벅지 근육이 기립할 때마다 사량도의 눈부신 비경과 돌산이 떠오를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방을 정리하고 나오는데 강풍 경보로 어선 출항을 금지한다는 재난 문자가 날아들었다. 점심을 먹으러 걸어가는 동안 정말로 하늘이 흐리고 바람이 미친 듯 불었다. 태풍 '란'이 일본으로 북상하고 있다나, 어제의 환상적인 사량도 날씨도 태풍 직전이라 그토록 맑은 거였다고 했다. 아, 세상에 나란 사람. 인복에 날씨 복까지... 스스로의 행운에 단단히 도취된 채로 서호시장에서 단돈 오 천원짜리 시래기국 정식을 먹었다. 어제 만난 사량도 아주머니가 추천해주신 곳이었는데, 역시 끝내주게 맛있어서 반찬 한 줌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비웠다.
자기만의 전문분야, 즉 애정을 쏟을 대상이 뚜렷한 사람의 눈에서는 반짝반짝 광채가 난다. 배에서 만난 아주머니에게서, 산에서 만난 크루 분들에게서 이 느낌을 넘치도록 건네받았다. 사량도라는 연결고리가 아니었다면 평생 마주하지 못할 인연이고 경험이었을 터. 눈으로 보고 담은 사량도의 절경 이상으로 귀한 감상을 얻어가는 여행이었다.
남해 바다에서 벅차게 담아온 아름다운 풍경과 진한 감상이 최소 한 계절 이상 나를 움직여줄 것이라 믿으며 나는 통영을 떠났다. 이 년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도 기억이 흐려지기는커녕 지난 달 일처럼 선연하고 들뜨는 걸 보면, 그날의 믿음이 역시 어긋나지는 않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