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에 온지 9개월이 지난 지금.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아일랜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특히 아이리쉬들은 항상 내가 왜 여기 왔는지를 묻곤 한다.
그럴때마다 나는 대답했다. 외국에 살아본 적이 없었다고. 그래서 일을 그만두고 일년동안 그냥. 여기에 온 거라고.
그러면 그들은 항상 나에게 묻곤 한다. 아일랜드가 좋으냐고. 그러면 나는 항상 대답한다. 좋아. 가끔씩 날씨빼고.
그러면 우리는 또다시 날씨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또 나에게는 항상 듣는 질문이 온다.
아일랜드는 어떻게 알았어? 왜 여기로 온 거야? 그러면 나는 대답한다.
그냥. 여기로 와야 했어. 내가 알고 있던 건 영화 원스,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그리고 기네스. 딱 세가지였는데.
그냥 아일랜드로 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면 그들은 항상 말했다. 너 정말 용감하구나!라고.
그러면 나는 항상 대답했다. 생각없이 온 거라고.
그리고 그들은 항상 나에게 물었다. Yu-Ming is ainm dom(Yu-Ming is My Name)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냐고.
슈퍼마켓에서 일하던 중국인 남자가, 도서관에서 지구본을 휘릭 돌리고 손가락으로 찍은 나라가 아일랜드.
그래서 6개월간 아일랜드어를 공부하고 아일랜드로 왔지만, 어느 누구도 아일랜드어를 말하지 않아 슬퍼하는 영화라고.
그러면 나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중국인이 아니야. 게일릭도 못해.
그러면 그들은 말했다. 하지만 너는 여기 왔잖아. 그냥, 유밍이 그랬던 것 처럼. 아무도 모르는 이 곳에.
그리고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한 날, 마침내 유튜브에서 그 영화를 봤다. 13분짜리 짧은 단편영화.
칙칙하고, 소소하고, 말오줌 지린내가 날 것 같은, 회색과 녹색의 더블린같은 영화였다.
나는 외국에서 1년 사는걸로 내 시야가 넓어지고, 꿈이 생기고, 글로벌한 역량이 키워진다고 생각하는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스무살 초반의 꿈쟁이 감성소년이 아니다.
하지만 남들이 말하는 것들이 어느정도는 사실이더라. 이십대의 끝자락에 도착해 서른을 맞이한 이 곳에서,
내 안에서 뭔가가 변하긴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말로 하고 싶은 일들이 생겼다.
그리고 그 일들 중 하나는, 내 이야기를 들어줄, 나와는 너무 다를 착한 사람들이 들어주길 바라며,
궁상맞고 곰팡내나는 이 곳에서의 내 이야기를 궁시렁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