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05의 기억 - Fight the power
뱅크 홀리데이 일요일이라는 4월 5일. 부활절이기도했다. 하지만 몇 년이나 성당을 안 간 냉담자에게 부활절이란, 부활절달걀이 아닌 마음의 찝찝함이 더 가깝게 다가오는 날이다.
알렉스의 아파트에 안 입는 여름옷을 갖다 놓기로 한 날이라, 일요일엔 버스가 별로 없다는 말에 일부러 일찍 시티 센터로 나섰다. 열 시쯤 오라던 알렉스는 왓츠앱으로 연락을해도 답장이 없고, 시티 센터로 가니 오코넬 스트리트는 주변에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다. 부활절 퍼레이드라도 하나? 싶어 빙 돌아 바리케이드 입구로 갔더니경찰들이 있고, 검색대도 있었다. 당최 이게 뭔지. 궁금함에 가까이 다가가자 형광주황색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가 인사를 하며 브로셔를 건내줬다. 아. 이스터 봉기를 기념하기 위한 정부 행사였다. 백화점 디스플레이는 이스터 봉기 당시의 복식으로 꾸며져 있기도 했다.
알렉스의연락이 올 때까지 시간이나 죽이자, 싶어 검색대로 다가가며 경찰에게 말했다. [좋은 아침. 이거 들어가려면 뭐 검사라도 받아야 되는 거야?] [응. 중요한 행사라서. 너가방 되게 커 보이는데, 안에 뭐 들어있어?] [음… 좀 웃긴데. 내가 들어갈 아파트에 미리 짐 옮겨둔다고. 가지고 나왔는데 룸메이트가 연락을 안받아. 그래서 여기서 시간 좀때우려고. 가방 안에 그냥 옷인데, 열어봐야 해?] [아니야. 아직 본 행사도 아니고. 어차피 중앙구역은 초대장 있어야 입장되니깐, 그냥 들어가.] [고마워. 좋은 하루.] [응. 너도.] 집채만한 가방을 메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는데, 울리는 핸드폰. 타이밍도 완벽한 알렉스였다. 30분쯤 후에 도착한다고 문자를 보낸 후, 다시 검색대를 통과해 빙 둘러 아파트로 향했다.
아파트앞에 도착해 알렉스에게 문자를 했더니, 또 답장이 없다. 5분쯤 지났을까. 전화가 와서는 어디냐고 묻는다. 집 앞이라고 했더니, 3분쯤 지나 머리가 부스스한 알렉스가 나타났다. 옷을 플랫 안 창고안에 넣어두고 인사를 한 뒤 다시 오코넬 광장으로 향했다.
군악대 행진이 들렸다. 아. 행사가 끝났구나. 싶어허탈한 마음에 제복을 맞춰 입고 행진하는 군인들을 보고 있는데, 군악대 행진방향이 내 쪽으로 오는 것같았다. 어차피 정부 인사 연설은 내가 봐도 의미도 없을 테고, 그나마하이라이트인 군악대 행진을 본 걸로 만족하고, 점심이나 먹자 하고 슈퍼맥으로 들어가 수프와 샌드위치를먹고, 테스코에서 몇 가지 물건을 산 후 다시 버스를 타러 오코넬 광장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행사가 한 시간 전에 끝났는데도 아직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다.
행사가 끝났는데도, 검색대 주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경찰들은 아침보다 더 살벌하게 가방을 하나하나 열어보며 검색하고 있었고, 경찰들 앞에는 사람들이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시위가 진행중이었다.
아일랜드에서 계속해서 시끄러웠다는 수도세 반대 팻말과, No Emigration 이라는 팻말들이 보였다. 아일랜드도 닷컴 버블, 엔론 스캔들 등이 터진 후, 경제가 극도로 나빠져 정부에서 세금을 계속 올리고 있었는데, 무료였던 수도세가 유료로 바뀌자, 사람들이 우리가 망치지도 않은 기업 경제를 왜 우리가 세금을 더 내서 살려야하냐며 시위를 하고 있다는 건 인터넷에서 본 사실이기에 그러려니 했는데, 이민 반대라니. 거기다 한 할아버지는 그 팻말을 들고 경찰들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저것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우리나라를 더럽히고, 아이들을 강간하고 있어!] 와. 제노포비아다. 할아버지는 또 경찰들 앞에 다가가더니, 중지로 그들을 가르키며 [씹할놈의 나치 새끼들!] 이라고 소리쳤다.
Immigration과 emigration은 반대의 의미이기에, 아일랜드 젊은이들이 해외로 나가는 걸 반대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게일어에서는저 단어 뜻이 다른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아무튼, 그 할아버지는 구경거리가 되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동성폭행범들, 나치새끼들! 이라고 계속 소리쳤다. [당신이 나치야. 더러운 제노포비아같으니!] 라고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그냥 꾹 참고 검색대로 향하는데, 갑자기 욕쟁이 할아버지가 내 팔을 붙잡으며 소리쳤다. [저 나치 아동강간범 새끼들이 널 검색하게 하지마! 너는 우리 손님이라고! 우리는 외국인들이 들어와서 일하는걸 반대하는게 아니야! 우리 젊은이들을, 아일랜드 공화국의 젊은이들을 외국으로 내모는 정부와 저 썩어빠진 나치 경찰 놈들이 잘못된 거라고! 저 썩은 놈들은 누구도 검색할 자격이 없어! 여기는 우리 나라고, 저 나치 잡종 놈들의 나라가 아니야!] 놀라서 팔을 빼고 난 나는, 허름한 차림의 성난 노인에게,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한국의 기성세대들이, 젊은이들의 취업난에 저렇게 목소리를 냈던가. 세계적인 취업난에 중동으로 젊은이들을 취업시키겠다는 대통령에게 정신 좀 차리라고 항의를 했던가.
우리 세대는 자라면서 너희는 고생을 못해봤다고, 우리 젊었을 땐 안 그랬다고. 우리는 굶으면서 컸다고. 우리는 매일 밤새며 일했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다.
에너지 드링크광고에서 젊은이는 밤을 새서 일해야 된다고 세뇌당하며 자랐고, 아파야 청춘이라는 되도 않는 헛소리를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자랐다. 꿈을 가지라고 끝없이 듣고 자랐다. 그리고 커서는 꿈없이 공무원에 도전한다며, 젊은이들이 문제라는 소리를 듣는다.
모르겠다. 꿈이 없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공무원에 도전하고, 옆 방의 소리가 다 들리는 고시원에서,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고 새벽녘에 일어나 학원으로 향하는 젊은이들이 고생없이, 아프지 않은 젊은이들인지.
세계 GDP 11위 국가의 젊은이들이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업무 전화에 시달리고, 추가 수당도 없이 야근을 매일같이 하고, 회식에 시달리는 게 정상인 나라에서, 저녁이 있고, 주말이 있는 삶을 꿈꾸면서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어하는 게, 꿈이 없다는 건지.
취업난이나, 무의미한 다문화정책을 가지고 한국 정부가 무능하다고 욕할 생각은 없다. 취업난과 이민자 범죄로 인한 제노포비아와 포퓰리즘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문제다. 한국보다 1인당 GDP가 훨씬 높은 이 나라의 젊은이들조차, 일자리가 없어 호주로, 미국으로,캐나다로 일자리를 찾아 나가는 마당이고,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에서 증오범죄가 계속 터져나가는 마당이니까.
다만, 놀랍고 부러웠다. 나이를 들먹이며 가르치려 들지 않는 그 노인의 호소가. 젊은이들을 위해 소리치는 기성세대가.
또 다른 놀라운 점은 시위의 분위기였다. 경찰들은 방패도, 바톤도 들고 있지않았고, 시위자들도 깃발과 플랜카드를 든 채, 경찰들에게 들여보내 달라고, 우리는 (수도세를) 내지 않겠다고, 소리만 지르고 있었다. 욕설을 하는 사람은 예의 그 할아버지 뿐이었다. 이스터 봉기는 한국으로 치면 3.1절과 같은 역사적인 날이다. 그런 날에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가 일어났다면, 분명히 경찰들은 무장한 채 방패를 들고 길을 막았을 테고, 몇몇 극단주의자들은 경찰들에게 돌을 던지고, 저항하는 경찰들에게 폭력경찰이라고 욕을 했을 것이다. 경찰들과 시위대의 충돌이 일어났다고, 항상 그렇듯이 기사가 났을것이다. 인터넷 댓글 창에는 자칭 보수와 진보 세력들이 키보드 뒤에 숨어 언어폭력에 가까운 논쟁을 펼쳤을거다.
혹여 오해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나는 한국이 후진국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유럽의 모든 국가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 시위의 분위기가,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라는 노인의 외침이, 한국에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복잡해진 마음으로 검색대를 통과해, 행사 때문에 우회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도중, 길 건너편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인가 하고 길을 건너 가보니, 군복을 입은 노인들이 모여있었다. 독립유공자들인 듯 했다. 이들은 자랑스럽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그들을 찍어댔고, 노병들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노래를 계속해 갔다. 노래를 마친 노병들은, 서로 포옹하고, 눈시울이 붉어진채로 구경하던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감사를 표했다. 그들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돌려 버스정류장으로 간 나는, 홈스테이에 도착해 테스코에서 사온 부활절 초콜릿과 감자칩을 먹어치우며 남은 부활절을 책을 읽으며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