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29일의 기억.1
더블린에서 맞는 첫 일요일. 섬머타임도 적용된 날, 느지막히 일어나 샤워를 하고, 감자칩을 먹으며 책도 읽다가, 미드를 틀어놓고 깜빡 잠이 들었는데 1시쯤 됐을까? 갑자기 노크소리가 들렸다. 홈 대디인 패트릭이었다.
[안녕. 윤송. 너 어디 안 나가니?] [응, 나 이번 주말은 그냥 방에서 쉬기로 했어. 디한테도 이야기했는데. 지난주는 시티센터에서 볼일보고 하면서 돌아다니느라 힘들기도 하고, 감기기운도 있어서.] [잠깐만, 발 좀 치워줄래?] [무슨 발?] [니 발. 니 발이 지금 방문을 다 못 열게 막고 있잖아.] [아, 그랬구나. 미안.] [여기는 우리 집이고, 이건 내 방이야. 내가 이 방안을 보지 못할 이유는 없어.] [아, 알았어. 의도했던 건 아니야. 근데 내가 방에 있는 게 불편하기라도 하니?] [아니, 그건 아니야. 그냥, 보통 학생들은 방에 있지 않거든.] [뭐, 난 여기 1년 동안 있을 꺼고, 관광할 기회는 많아. 시티 센터에 집을 구해놔서 더블린 센터에 있는 다른 관광지는 그때 구경하면 되고, 너네 홈스테이 끝나면 집 들어가기 전에 골웨이에 2주정도 머물 꺼야. 굳이 나중에도 볼 수 있는 관광지를 지금 서둘러서 볼 필요도 없고, 내가 홈스테이를 신청한 것도 호스텔처럼 체크인, 아웃 시간이 없기 때문이었어. 불편하다면 말해.] [그냥, 니가 방안에 앉아있으려고 아일랜드로 온건 아니잖아? 방안에만 있는 게 조금 이상해서 그래.] [뭐,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이따 봐.]
불쑥 쳐들어와서 여기는 내 집이니, 방 안에만 있는게 이상하니 뭐니 하는 게 기분은 나빴지만, 어렴풋이 이해는 갔다. 다른 나라 사람이 자기집에 들어와 있으면 집에 있는 물건이나 귀한 것들이 걱정은 되겠지. 도둑 때문인지, 아니면 나 때문인지 집에 사람이 없을 때도 1층 거실의 TV를 소리가 크게 틀어 놓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내가 밖에 나갔다가, 열쇠가 없어 들어오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가족들이 한 명쯤 집에 있어야 하는 것도 신경이 쓰이겠지. 하지만 그런 게 신경이 쓰인다면 홈스테이를 하면 안 되는 거다. 어이가 없어 새라에게 왓츠앱으로 분노의 문자를 보냈더니, 한 달동안 묵으면서 마지막 3주는 거의 계속 방 안에 있던 자기에겐 그런 말이 없었단다. 인종차별인지, 아니면 새라와 영어로 이야기하기가 답답했던 건지. 어느 쪽이건 간에 기분이 좋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남은 기간 동안의 금액을 돌려받고, 호스텔로 옮길 생각으로 저녁을 먹으며 말하기로 다짐했다.
[있잖아, 디. 나는 내가 집을 이렇게 빨리 구할 줄 몰랐어. 나는 첫날에도 말했지만, 더블린에 딱히 돈을 많이 벌러 온 것도 아니야. 그저 살면서 한 번쯤은 1년 정도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었고, 집에서 반대해서 한 번도 못 해본 아르바이트도 해 보고, 여행비용도 충당할 겸 워킹홀리데이를 알아보다가, 아이리쉬 악센트가 마음에 들어서 영화에서 몇 번 본 것 빼곤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일랜드에 온 거야. 집 구하는 게 힘들다기에 홈스테이를 15일 신청했는데, 집을 오자마자 4일만에 구했어. 내가 20일정도 후에 시티센터에 살게 될 시점에 너네 눈치 본다고 하릴없이 더블린을 돌아다니면서 괜히 점심값, 커피값 쓰기도 싫고, 너네 홈스테이에서 나가면 2주동안 골웨이에서 머물 건데, 굳이 너네 눈치 본다고 주말에 다른 도시를 관광할 필요도 없어. 내가 너한테 쓰레기통을 비워달라거나, 청소를 해달라거나 하는 식으로 요구를 한적도 없어. 나는 방에서 냄새 나는 게 싫어서 쓰레기는 모아서 나갈 때마다 바깥 쓰레기통에 버렸고, 방바닥도 심지어 내가 청소했어. 내가 방값을 지불했어도, 여기는 너희 집이 맞아. 그래서 나는 손님으로써 너희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 했어. 첫날 사건에도 너는 에이전시 탓만 하면서 사과도 하지 않았고, 나도 니가 더 비싼 방을 줬기에 굳이 묻지 않았어. 그 문제가 다른 게스트들에겐 없었고, 나한테만 생긴 건 에이전시 탓이 맞으니깐. 그래도 너네도 확인은 했어야 했어. 너희한테도 책임이 있는 거야. 그래도 나는 그냥 지나갔어. 그냥 너희랑 잘 지내고 싶었거든. 그런데 내가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도 내가 여기에 머무는 게 혹시라도 불안하고, 불편하다면, 괜찮으니깐 확실하게 말해주면 좋겠어. 남은 기간 동안 내가 지불한 숙박비와 아직 먹지 않은 저녁값, 그리고 니가 아직 나한테 주지 않았던 거스름돈을 주면, 내일 아침 내가 다른 곳으로 옮겨갈께. 시티센터에 호스텔은 많아. 알아보니깐 체크 인, 아웃 시간 제한 없이 하루 종일 열어두는 곳들도 많았어. 거기서라면 이런 문제는 없겠지. 너희 가족한테 악감정은 없어. 너희 아이들은 친절했고, 너희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줬으니까. 그저 서로간의 사소한 불편함이 불만으로, 불화로 이어지는 게 싫은 것뿐이야. (사실 나가면 정말 자세하게 안 좋은 리뷰를 남길 꺼야. 에이전시에도 전화해서 항의할 거고.) 자, 어떻게 생각해?]
아일랜드 도착 후 처음으로 화가 난 나는, 독이 잔뜩 올라 이렇게 내가 볼 땐 구구절절 맞는 멘트를 준비해 두고, 홈스테이 에이전시에 쓸 메일까지 작성하고, 첫날 머문 호스텔 숙박 영수증도 찍어서 주소가 잘못 표기되어 있던 화면 캡쳐와 함께 노트북으로 옮겨 둔 후, 그들과 대면할 저녁시간이 되기 전, 호스텔을 알아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