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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sang is ainm dom Mar 29. 2016

Fáilte Ireland

2015.03.28의 기억.


지금 내가 묵고 있는 홈스테이는 더블린 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진 샌트리라는 더블린 외곽 동네에 위치한 집이다. 집에 애들이 4명이라 사실 좀 많이 더럽고, 샤워기도 물이 찔금찔금 나오지만(이건 사실 좀 심하다.), 주변 풍경이 이쁘고 근처에 큰 공원도 있고, 버스정류장도 바로 앞이고 쇼핑센터도 가까워 그저 그런 숙소이다.

사실 홈스테이를 선택한 이유는, 가격적인 부분도 있었고, 짐 관리가 호스텔에 비해 조금은 용이하다는 점, 그리고 내가 이 때 아니면 언제 아일랜드 가정에서 지내 보겠냐.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전 직장에서 한 업무 중 학생들 어학연수 담당도 있었기에, 홈스테이에 대한 환상이 막연히 있기도 했었나 보다. 하지만 15일을 예약해버린 지금 와서 후회하는데, 홈스테이는 결코, 5일을 넘게 지낼 숙소는 아닌 것 같다. 애초에 전문적인 숙박시설이 아니기에, 호스텔과 달리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지도 않고, 남의 집에 들어와 지낸다는 스트레스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의도치 않게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경우도 있고, 그리고 더러 돈을 심하게 밝히는 호스트들도 있다.  

더블린에 온지 6일째 되는 날, 처음으로 맞는 주말. 이것저것 일을 처리하느라고 더블린 시내를 너무 돌아다니기도 했고, 감기기운도 있어 방에서 쉴 꺼라고 말을 하니 아줌마 표정이 좋지가 않다.

[보통 학생들은 주말엔 방에 없는데 …] 그러던 말던 방바닥 좀 밀게 청소기를 달라고 하고, 방 카펫을 신나게 청소한 후 침대에서 얇은 이불을 돌돌 두르고 미드를 보고 있는데,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새라였다. [어, 나 너 말도 없이 간줄 알았어!] [아니야. 나 두 시 사십분에 나갈 꺼야.] [아, 그래? 갈 때 말해. 짐 들어 줄께.] [진짜? 고마워. 다른 게 아니라, 너 다이어트 펩시 좋아해?] [응?(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코카콜라 좋아하는데, 이거 두개 1.5유로길래 샀었거든. 너 마셔.][오. 고마워. 얼마나 주면 돼?] [아니야. 너 그냥 마셔.][고마워. 이것도 받았으니 꼭 짐 옮겨줘야겠네.]

그리고 낮잠을 자고 있는데 방문 밖에서 가족들이 새라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갈 때가 됐구나. 싶어 잠시 후 새라 방문을 노크했는데, 새라가 걱정하며 말했다. [여기, 식구들 있는지 확인해 봤어?] [아니. 아직. 아. 재네 없으면 나 다시 못 들어오는구나.] [응. 너 밖에 있어야 돼 재네 없으면.] TV소리가 들리는 1층으로 내려갔는데, 아무도 없고 TV만 켜져 있었다. 무슨 의도인지 대충 알 것도 같았지만, 일단은 새라 짐이 먼저였기에 1층까지라도 짐을 내려주려고 했다.

무거웠다. 정말 무거웠다. 가족들이 집에 없어서 다행일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드는 찰나, 큰딸이 들어왔다. [안녕.] [어, 안녕. 나 새라 가방 좀 들어주러 나가야 되는데, 너 금방 나가?] [아니야. 두 시간 정도 여기 있을 꺼야.] [다행이네. 이따 봐.] [응. 이따 봐.] 내 골반까지 오는 캐리어와 그것보다 더 무거운 옷가방을 양손에 들고, 나는 새라와 함께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가방 두 개를 들고 낑낑대면서도 옷가방은 자기에게 달라는 새라에게 [안돼. 옆에 남자 놔두고 숙녀가 이런 거 드는 거 아니야.] 라며 어울리지도 않는 젠틀맨 멘트를 하며 반쯤 갔을까, 옷가방을 든 손목이 너무 시큰거려 손을 바꿔 짐을 옮기려는데, 갑자기 캐리어가 앞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어, 어, 어. 캐리어와 함께 앞으로 넘어졌다.

동양에서 온 젠틀맨인 척 하려다가, 비에 개똥이 갓 씻겨갔을 수도 있는 더블린 교외의 질척한 골목길에, 철푸덕 소리가 나게 대자로 엎어졌다. 그래도 벌떡 일어나 태연한 척, 속으로는 이 바닥에 뭐가 있었을지 모른다며 비명을 지르면서 짐을 집었다. [놀래라! 괜찮아?] [응! 응!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니 짐 괜찮아?] [너 턱에...] [턱에?] [턱에 검은거 묻었어.] [흐익! 아. 괜찮아. 닦으면 돼.]
다행히 입고 있던 조끼 속주머니에 물티슈가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개똥이 아니라 흙이라 더 다행이었다. 정말로 개똥이 아니었다. 확실하다. 내 정신 건강을 위해 어느 집 정원에서 나온 흙이라고 95% 확신한다.

일련의 소동 끝에 버스가 왔고, 버스에 짐을 실어주고 [조심해서 가!] 라고 외치고는, 나온 김에 테스코에서 내 사랑, 6개들이 1유로밖에 안하고 영국에서 팔던 거랑 맛도 똑 같은 워커스 감자칩과, 6개들이 1.6유로짜리 탄산수를 사서 홈스테이로 향했다.

그리고 감자칩을 파삭파삭 먹으며 미드를 보다가, 저녁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녁시간이 조금 넘어, 갑자기 벨이 울렸다. 이탈리안 학생 둘이었다. [안녕. 혹시 여기 저녁 준비 안 됐어?] [응, 모르겠어. 집에 아무도 없는것 같은데?] [어… 알겠어. 일단 우리 방에 있을께.] [응, 조금 있으면 오겠지 뭐. 너희 혹시 배고파? 내방에 과자랑 과일 좀 있는데, 그거라도 갖다줄까?] [아니야. 우리도 먹을거리 있어.] [응. 이따봐.] [응. 이따봐.] 일곱시 십 분쯤 되었을까, 기다리다 지친 이탈리아 학생들은 다시 벨을 울리고는 학원 행사에 참여해야 한다며 밖으로 나갔고, 대충 요거트와 과일, 워커스 칩으로 끼니를 때운 나도 욕실이 한산한 차에 이른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나오자, 음식냄새가 났다. 아. 이제 왔구나. [안녕!] [안녕. 디, 그 이탈리아 애들 저녁 먹으러 왔다가, 지금 학원 행사 때문에 나간다고 전해달랬어.] [그래? 개네 언제 왔는데?] [여섯시…삼십분 쯤?] [아. 알겠어. 저녁 1분이면 돼.] [아, 사실은 나 기다리다 그냥 스낵 먹었어. 벌써 만든 거야? 근데 나 이도 닦아서 못 먹어.] [알았어. 문제 없어.] 표정은 문제가 있어 보였지만, 애초에 그쪽에서 정한 저녁시간을 지키지 않은건 내가 아니니, 그냥 그러려니 하며 감기기운을 잠재우려, 테라플루 짝퉁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전통있는 약이었던, 비챔스 파우더를 물에 타서 마시고 약기운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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