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선물로 꼭 자식들과 여행을 하고 싶다고, 아빠는 올해 두번이나 이야기했다. 각자 떨어져 사는 우리-아빠와 나와 남동생-가 한 두달에 한번 만나 저녁을 먹으며 반주를 곁들일 때마다, 지나가는 듯 넌지시였지만 분명히 말했다. "자식들이랑 여행 한번 가보는게 소원이지"
나는 살가운 딸이 아니어서 애교도 없고 아빠 앞에서 잘 웃지도 않지만 또 모질지는 못하다. 둘 중 한 노선을 탔어야심신이 편했을텐데 (아예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남동생처럼)천성이 그러질 못하니애써 모른척하다 못내 마음이 불편해 매번 일을 벌이고 만다.
남들은 쉽게 갈 수 있는 부녀 여행이라 할지 몰라도 나에겐 큰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다. 부모님이 웃으며 대화하는 장면은 초등학생 때나 존재했고, 아빠와는 10년 가까이 떨어져 살았다.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잠재우지 못한 청년기를 지냈고 참 많이도 싸웠다. 이 모든 사실이 학창시절엔 참 부끄러웠고, 20대에는 화가 났었고, 30대인 지금도 여전히 불편하다.
하나 괜찮아진 것이라면 늙은 아빠와 서른이 넘은 내가 더 이상 미친듯이 싸우지는 않는다는 것. 여전히 나는 할 말은 해야겠고 아빠는 가부장의 사상을 숨기지 못해 간간히 서먹해질 일이 생기지만 예전처럼은 아니다. 내가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순응하거나 멀리하거나. 그러니 이번 여행은 나의 방어기제에 상당히 반하는 선택이었다. 적당히 거리를 둬야 서로 상처주지 않을 수 있는 사람과의 여행이라니. 되도록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어색하고 두렵고. 괜히 상처를 후벼파는 일이 생기게 될까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여행을 원했다는건 의외였다. 여행 직전에 어떠한 다른 핑계로 취소할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빠는 잔뜩 들뜬 모습으로 공항에 나타났다.
먹으라는건지 들고 있으라는 건지. 나중에야 아빠가 그걸 날 위해 사왔음을 이해했지만 모스부호라도 주고 받듯 커피를 사이에 두고 짧고 어색한 인사를 주고 받은 우리는 결국 아무도 그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체크인 해야 돼"
"와 신기하네"
키오스크에서 예약번호를 누르고 탑승권을 뽑는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던 아빠가 세상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생년월일을 다시 확인하는데 불쑥 한 마디.
"내 주민번호 생년월일 양력이야"
"아빠 맨날 생일은 음력으로 하지 않아?"
"응 근데 주민번호는 양력이야"
탑승을 기다리는 내내 아빠는 아주 옛날 공항에 갔던 이야기를 했다. 잠깐 여행 일을 했던 아빠가 북유럽에 보험사 아주머니들을 데리고 갔던 이야기, 동남아 투어를 돌았던 이야기를 한참 듣다 비행기에 올라탔다.
"진짜 오랜만에 타 본다 비행기. 10년 넘은거 같은데.."
그렇게 해외를 다녔다는 이야기를 신나서 하다, 십수년만에 여행길에 오른다며 하염없이 창 밖을 바라보는 아빠 옆 모습을 슬쩍 훔쳐보다 이내 고개를 돌렸다. 맘이 그랬다. 다시 고개를 돌려 훔치듯 사진 한 장을 남겼다.
호텔은 공항에서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처음이었던 것 같다. 아빠와 대중교통에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목적지를 향해 달렸던 것이.
"부산은 아직도 옛날 건물이 많아. 정감이 가"
"일제시대 건물인가? 되게 낡았네"
"우리 옛날에 대구에 잠깐 살 때, 그 때는 주말마다 차 끌고 니네 데리고 엄마랑 여기저기 많이 다녔어. 경주도 가고 안동도 가고. 안동 거기도 멋있거든. 어떤 식당에 가면 상다리가 부러지게 한정식이 나와. 근데 얼마 안해. 가봐라 나중에"
호텔은 영도다리 근처였다. 뷰가 좋기로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핫한 곳이었는데 아빠는 뷰에는 별 감흥이 없어보였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듯 짐을 푸는데 세상에.
"아빠, 이거 물티슈 150매짜리 통째로 가져온거야...?
아빠, 이거 믹스커피 열개도 넘는거 같은데...? 종이컵도 열개가 넘...는데...?
아빠, 가습기는 왜 가져왔어?????"
그렇다. 생각보다 무지하게 컸던 아빠의 배낭에는 이 잡다한 것들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너 집에 가습기 틀어놓냐? 가습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어? 너 나 닮아서 편도염 달고 살지? 이거 팔천원 밖에 안하는데 엄청 좋아. 옆에 두고 자면 최고야. 하나 사줘?"
그렇게 아빠는 세상 멋진 뷰를 앞에 두고 가습기에 대한 열변을 늘어놓다 어디 험한 일이라도 하다 온 사람마냥 온 몸을 빡빡 샤워하고 이빨을 닦았다.
"아이고 이제 살겠네. 나가자. 간짜장 먹을래?"
우리의 부산 첫 식사는 계란 후라이를 올린 간짜장이었다. 짜장을 식사로 정하고 나는 잽싸게 지도와 앱을 켜서 맛집을 찾는데 아빠는 다짜고짜 길 가는 사람을 잡았다.
"이 주변에 괜찮게 하는 중국집이 어디있을까요?"
세상에. 맛집을 길 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다니. 한국이 아닌 이역만리 유럽과 미국에서도 스마트폰이 알려주는 세상에 익숙해져버린 나에게 오랜만에 생소한 광경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찾아간 중국집은 성공이었다. 나는 원래 많이 먹는 사람이 아닌데다 근래 이유 모를 식욕 감퇴로 뭔가를 맛있게 먹은지가 꽤 됐었는데 이 간짜장은 한그릇을 다 비웠다.
그러고 나서 아빠는 나를 서면으로 데려갔다. '서면 명동 같은데지 볼거 별로 없는데'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잠자코 따라갔다.
"여기가 되게 번화가거든. 어디보자 이쪽 길이 번화가였던가"
굳이 나에게 왜 번화가를 보여주려는거야. 나는 서울 역세권 한복판 오피스텔에 살고 회사는 성수동이며 주말이면 연남동과 한남동을 방앗간처럼 드나드는데. 아직 성수동이 공장지대인줄 아는 아빠에게 서면이 굉장한 번화가인건가.
"이거 살래? 이런거 예쁘지 않냐"
명동 길거리에서 파는 옷과 정말 똑같은, 하지만 절대 내 스타일은 네버에버 아닌 2만원짜리 레이스 가디건을 가리키며 아빠가 말했다.
"아니 내 스타일 아니야"
"그래? 생일선물... 다른거 봐 그럼"
여행 며칠 전이 나의 생일이었고, 아빠는 매번 기억을 못하기에 아침부터 카톡으로 '오늘 내 생일. 까먹은건 아니겠지 설마'라고 으름장을 놨었다. 깜빡해서 미안하다며 필요한게 없냐 물었던 아빠는 미안했는지 다음날에도 부러 연락해 어제는 재밌게 지냈냐고 물었었다.
어쩌면 서면에 온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번화가에 가면 예쁜 것이 있을테고, 그 예쁜 것을 사주고 싶었을지도. 올해도 어김없이 까먹은 딸의 생일선물을.
그 날 저녁엔 자갈치 시장에 갔다. 산낙지와 생선구이와 선지국이 서비스로 나오는 집에서 꼼장어구이를 먹었다. 아빠는 아주 맛있게 먹었고 술도 많이 마셨다. 그리고 예전에 사업하던 이야기-수십번도 더 들은-를 했다. 택시를 타고 호텔 근처로 돌아왔다. 당연히 호텔로 들어가려는데,
"벌써 들어가? 9시도 안됐는데"
하. 시작이군. 술꾼이 2차 없이 끝날리가. 2박3일 워크샵이구만. 어쩔 수 없이 치킨집으로 가 소주 일병 맥주 일병을 더 하고서야 아빠는 귀가에 동의했다.
"올라가 씻고 있어. 담배 좀 피고 갈게"
다 큰 딸과 함께 쓰는 디럭스룸이 편했을리 없다. 밖이 추웠고 바닷바람이 심했지만 아빠는 이틀 내내 나의 샤워시간을 밖에서 기다려줬다. 소주 두병을 끝낸 취한 몸을 비틀거리며.
다음날 우리는 약속이나 한듯 아침 일찍 일어나 해운대-용궁사-대변항-부산역 앞 차이나타운을 돌았다. 아빠는 용궁사에 특히 감탄했다. 이렇게나 멋있는 절이 있냐며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영상도 찍는 것 같았다. 여기 서봐라 저기 서봐라 나를 모델로 세우기도 했다. 드라마에서 봤던 아빠와 딸 사이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하루종일 꼬박 관광을 하면서 같이 길거리 어묵도 사먹고 커피도 마시고 아빠가 짐도 들어주고 버스도 기다렸다. 그러면서 많은 잡다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아빠가 하는 대부분의 무용담은 다 들었던거고 레퍼토리가 뻔하지만 처음인 듯 그냥 들었다. 술을 마시지 않은 아빠와 그렇게 오래 대화하는건 거의 처음이었으니까. 술에 취한 아빠의 무용담은 일방적이지만, 맨정신의 아빠는 내 이야기도 잘 들어줬다. 기분이 좋았다.
물론, 그 날 저녁에 또 쐬주 2병 했다- (하아..)
생각보다 예뻤던 대변항
다음날 우리는 '여자애들이 좋아할 곳'이라며 아빠가 고른 감천문화마을에 갔다 남포동에서 돼지국밥을 먹고 비행기 시간이 남아 우리가 묵었던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셨다. 울아빠는 그런데 돈 안 쓰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가 아침에 1층에서 담배피고 엘베를 잘못타서 거기 꼭대기에 갔었는데 근사하더라. 커피 한잔 하고 가자"
그리고 나는 이 조용한 스카이라운지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아빠와 했던 차분한 대화가 참 좋았다. 내가 많이 이야기를 했고 아빠가 많이 들어줬고 많이 웃었다.
"유럽에서 어디가 제일 멋있냐. 체코 거기 좋냐?"
"프라하? 엄청 좋지. (사진 보여주며) 여기는 체스키크룸로프라고 근교 도시인데 그림이지"
"와... 너무 멋있네... 내가 체코는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어"
김포행 비행기를 타고 우리는 현실로 돌아왔다. 헤어지는 공항철도에서 아빠는 나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수고했다"
헤어지는 순간까지 나의 캐리어를 밀어주면서도 살가운 한마디는 낯뜨거워 못하는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60대 아저씨. 삼일 내내 같이 있었으면서도 '아빠 환갑 축하해, 건강히 오래 살자' 한마디 못 뱉은 나도 할말은 없다.
서울에 온지 이틀이 지나서야 아빠는 자기가 찍은 사진과 영상들을 보내왔다. 대체 구도는 뭔지 이건 왜 찍은건지 모르겠는 촬영물들 사이에 눈에 띄는 영상 두개가 있었다. 아빠가 연신 멋있다며 셔터를 눌러대던 용궁사와 대변항. 아빠는 나를 찍고 있었다. 서툴게 휴대폰 카메라를 움직이며, 나를 더 크게 확대하면서.
바다를 보는 나, 파도를 찍는 나, 불상에서 기도를 하는 나, 배 앞으로 뛰어가는 나.그리고 아빠에게 걸어오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