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로 만 7년, 햇수로 8년차에 접어든 내 이직의 역사는 화려하다. 홍보대행사에서 일을 시작해 초기스타트업, 중기벤처를 거쳐 이번엔 이름만 들으면 아는 대기업의 계열사로 가게 됐다. 유망한 사업 분야를 분리해 아예 자회사로 설립해버린 경우다.
운이 좋았다. 지난 회사에서 근속기간 4년을 바라보고 있을 무렵, 너무 힘들었다. 일개미의 애환은 여러 종류의 것이 있지만 내가 가장 괴로웠던건 '이 회사의 미래가 보이지 않고(=비전이 없고)',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 회사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 도태해버린 스타트업이나 투자를 받지 않는 중소오너기업에서 많이들 볼 수 있는 모습일 것이다.
사실 나는 일이 좀 빡센건 완전OK인 사람이다. 원래 손이 엄청 빠르기도 하고(신입 몇 년을 대행사에서 보냈다^^;) 어차피 싱글이니 야근 좀 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뱃머리가 완전 엉뚱한 곳을 향해 있는 나룻배에서 의미없는 노질을 하는건 이야기가 완전 다르다. 힘만 빠지고 득이 없는 일은 그냥 에너지 낭비에 불과하니까. 그냥 비비자면 배 위에 편하게 누워 세월아네월아 두둥실 떠 있을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해일이 닥치면 바로 익사할 수도 있다. 도망쳐야했다.
그래서 작년 하반기부터 다시 사람인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연차가 있고 나름 직무전문성을 잘 쌓아온터라 헤드헌팅도 많이 왔다. 코로나로 경제가 얼어붙었다지만 흥하는 산업도 분명 있을테니 포기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번씩 경력기술서를 수정하고 업데이트하고 지원한 끝에, 정확히 크리스마스 이브날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것도 도망치듯 가려고 했던 애매한 기업들이 아닌, '설마 여기가 되겠어'라고 생각했던 베스트 옵션으로.
예!!!!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내 직무가 바꼈다는 것이다.나는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약 3년간을 언론홍보/PR 일을 했다. 그러고 나서 바로 이전 직장에서는 PR + Digital PR일을 했는데 후자의 비중이 높았다. 회사가 운영하는 2개 브랜드의 모든 소셜미디어 채널(유튜브, 인스타, 네이버블로그/포스트, 브런치+예전엔 페이스북까지)을 대행사 없이(!) owned media로 운영하고, 그 안에 들어가는 모든 콘텐츠를 대행사와 덕션 없이(!) 팀 내에서 자체제작했다. (퇴사 직후 브랜드 2개 중 하나의 유튜브는 실버버튼을 받았다.)이 팀의 팀장으로 일하면서 기자 상대로 PR도 하고 출장도 그렇게 다녔으니 나 일 많이 했구나...^^
현 회사에서는 나의 이런 다방면의 업무 경력과 실제로 팀 내에서 소셜미디어 콘텐츠를 만들고 운영해봤다는 점을 높이 샀다고 했다. 아! 새피디로 운영하는 브런치도 한 몫했다. 내가 그냥 크리에이터로서 감각이 있다는걸 어필하기 위해 면접 때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마침 면접관 분이 그 날 아침 카카오에 추천된 나의 글(아빠와 부산여행)을 봤다는 것이다. 행운이었다.
여튼 그래서 나는 PR과 콘텐츠마케팅을 함께하는 매니저로 현 회사에 합류하기로 했다가, 약간 직무가 변경돼 전사 브랜딩 업무와 소셜미디어 매니징을 하게 됐다. 입사 첫날 팀장님이 PR 인원이 우리 팀에서 분리돼 나도 언론홍보에서 빠지게 됐다고 조심스레 말씀하셨지만 상관없었다. 난 이 회사가 로켓이라고 생각하고, 로켓에는 어떤 자리든 일단 올라타야 하는 법이며, 더구나 뜨고 있는 SNS 마케팅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이 내 커리어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예감 때문이다.
+재미없는 직무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제 뇌피셜 차원의 첨언이니 가볍게 봐주세요)
내가 해왔던, 그리고 앞으로 할 분야는 소셜미디어 마케팅이라고도 하고 콘텐츠 마케팅이라고도 하고, 여기서 데이터 분석이나 성과 분석이 더 딥하게 들어가면 퍼포먼스마케팅이라고도 한다. 그냥 뭉뚱그려 온라인마케팅, 디지털마케팅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아직도 직무가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분야다. 하지만 기성 언론을 대상으로 하는 PR이 올드미디어의 쇠퇴와 함께 지고있는 느낌이라면, Digital PR은 뜨는 판이다. SNS 시장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더욱 많은 전문가를 필요로 하게 될거다. 더욱이 지금의 회사는 브랜드를 런칭하면서 Owned media로 소셜미디어를 오픈하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마케팅 업무와 함께 브랜딩을 배울 수 있어 좋고, 회사의 소셜미디어 자체가 나의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어 좋다.
자 그렇다면, 내가 여기서 집중적으로 배워야 할 것은 마케터로서 돈을 쓰는 방법이다. 정말 아쉽게도 이전 회사는 '자연 발생으로 대박날 콘텐츠를 만들어라'고 했지 단돈 몇만원도 콘텐츠마케팅에 써보질 못했다. (사실 이게 너무 지쳐서 퇴사한 것이기도 하다. 조회수 10만, 20만이 빵빵 터지는 채널을 광고비 안태우고 만들 수 있으면 내 유튜브를 열지..) 그래서 콘텐츠 메이킹의 감각은 짙게 익혔으나 마케팅의 기술이 약한 상태다. 인생은 실전이니 부딪히며 배우고 있다. 집에 와서는 부족한 내 밑천을 전문 서적으로 채우면서^^;
지옥 같이 힘들었던 2020년을 지나,
조금은 나은 2021년을 맞이했다.
혹시나 아직도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빛이 스며드는 곳까지 조금만 더 발걸음을 떼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