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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피디 Nov 11. 2023

나는 결국 결혼을 엎었다

혼주가 혼인의 주인이라고?

순항이 기대되는 결혼은 애초부터 아니었다. 남자친구는 석사를 하느라 취업이 늦어 이제 막 월급이라는 걸 받기 시작한 지 1년 남짓 되었을 때였고, 당연히 모아둔 돈은 없었다. 여느 딸 가진 부모라면 여기까지만 듣고도 결사반대 할 조건이었지만, 우리 부모님은 내가 결정했다면 '이유가 있겠지' 생각해 주시는 분들이라, 그리고 남자친구가 살가운 성격이라 그걸 맘에 들어하셔서 무사히 결혼 준비에 돌입할 수 있었다.


코로나가 끝나고 웨딩 시장은 거의 전쟁터였다. 서울의 유명하다는 웨딩홀들은 1년 전부터 예약이 꽉 차 있었고, 상담 예약을 잡기 위해 아침부터 수백 통씩 전화를 걸어야 하는 곳들도 허다했다(식장 예약이 아니라 상담 예약이라는 게 킬포). 스냅이며 드레스, 메이크업은 왜 또 이렇게 예약이 어려운지. '웨딩'이 붙은 모든 것에 프리미엄 가격이 붙었고, 서두르지 않으면 놓친다는 플래너의 독촉이 따랐다. 양가 어른들이 협조적으로 나와줘도 결혼을 무사히 할까 말까였다.


하지만 문제는 터졌다. 예비 시아버지의 간섭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결혼을 원했건만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낱낱이 알지는 못했지만 가부장적이고 명령적인 분이라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남자친구가 평생을 그런 아버지의 성정 때문에 상처받고 위축되어 살았으며, 이제야 아버지에게 맞서기 시작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겪어보니 그 간섭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먼저 우리의 경제적 상황을 밝혀둔다. 나는 그 당시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전세금 포함 2.5억 정도의 자산을 가지고 있었다. 둘이 살 수 있는 정도의 집이라서 당분간 내 전셋집에서 신혼살림을 꾸려갈 예정이었다. (보통 아래의 스토리를 털어놓으면 남자친구가 전문직이냐 묻던데) 우리 둘 다 평범한 회사원이고 지금은 나의 연봉  높다. 둘 다 양쪽 집안에 들어가는 부모님 생활비 같은 건 없. 위에서 말했듯이 남자친구는 모은 돈이 정말 0원이, 약 1-2천 정도의 결혼 준비 비용 정도 부모님께 지원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우리는 아버님께 1원 한 장도 미리 받지 못한 상태에서 아래의 일들을 겪어야 했다. 버님께서 주장하신 것들이다.


무조건 양가 인사, 상견례까지 마치고 식장을 알아보되

뷔페 안되고, 코스 안되고

교통이 좋지만 너무 비싸지 않은 곳이어야 하며

식장 투어 때는 양가 어머님들이 동행할 것 (엄마가 제일 화 낸 대목)

상견례 후 여자 집에서 길일을 받아오면 본인이 택1한 날짜로 결혼할 것

식장 비용은 무조건 반반할 것 (남자 하객이 100명 정도 많음)

결국 상견례까지 하고 식장을 잡는 건 도저히 무리라 양해를 구하고 양가 인사까지 마치고, 약 30개의 웨딩홀 중에 위의 조건에 맞는 홀 예약을 마치고 알려드렸더니, 자기가 말한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고 남자친구가 준비해 간 엑셀 종이를 집어던지셨다.


길일을 잡으려고 엄마가 유명한 곳에 부러 찾아가 날짜를 받아오셨는데, 예비 시아버지는 자기가 아는 사람한테 '그게 맞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며 우리 쪽 노력을 무시해 나를 크게 기분 나쁘게 만들었다(이건 엄마한테 말도 못 했다).


예비 시아버지가 이렇게 나오자 좋은 마음으로 결혼을 허락했던 우리 부모님도 화가 나셨다. 남자친구의 경제적 준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시던 엄마가 물었다.


"그래서 그 집은 아들 결혼에 뭘 준비하셨길래 이렇게 요구와 간섭이 많으신 거니? 준비된 건 하나도 이야기를 안 하시고 이렇게 요구만 하셔도 되는 거니? 우리 쪽에서 2.5억을 가져가니 그쪽은 뭘 해올건지 어디 들어보자."


시아버지의 주장은 딱 하나였다.

지금은 돈이 땅에 묶여있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필요한 결혼 준비 비용은 때마다 나에게 와서 신용카드를 받아가라

나중에 땅 팔면 서울에 아파트 알아서 해줄 건데 앞으로의 지원 계획을 묻는다니 기분이 나쁘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엄마는 가만히 있으니 가마니인 줄 아냐며, 예물 받을 거 다 받고, 내년까지 똑같이 전세금 마련해 오라고 하겠다며 길길이 뛰었다. 엄마가 말했다.


"OO아, 엄마는 ㅁㅁ이네 집이 가난하면 절대 이런 말 안 해. 그리고 이번에도 그쪽에서 '당장 우리가 해줄 현금이 없는데 양해해 주셔서 감사하다' 정도로만 나왔어도 암말 안 해. 근데 그 집 우리보다 잘 살잖아. 아버님이 교수라며. 그런데 이렇게 뻔뻔하게 나오면 안 되는 거 아니니? 엄만 진짜 속상해"


결론적으로 남자친구네 집은 돈 만 원도 내놓지 않았다. 결혼반지를 사야 해서 카드를 받으러 간 날, 나는 '한국에서 파는 다이아는 다 가짜니 사지 마라', '결혼반지 오늘 바로 사지 말고 발품 팔아라'는 아버님의 간섭을 들었고, 남자친구는 "카드를 좀 달라"는 소리를 두 차례나 한 뒤에 겨우 카드를 받아 들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날 바로 결혼을 엎었다.

10년째 그대로인 아버님의 땅이 언제 팔린진 모르겠지만, 그 땅이 팔려도 우리에게 아파트를 사주실거라는 기대는 1도 없다. 분당의 50평짜리 집에 살면서도 당장 아들 결혼에 백만 원도 마련해주지 않는 아버지가, 그러면서 예비 며느리가 가져오는 2.5억은 고맙다 말 한마디 없이 넘어가려는 분이, 목돈이 생긴다고 그 돈을 주실리 없다(구두쇠라는 걸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리고 중요한 건 우리는 서울 아파트를 원하지 않는다. 유를 원한다. 자유를 원하기 때문에 애초부터 남자친구가 목돈을 받아오길 바라지도 않았다. 애초에 자식 결혼에 부모가 억대의 돈을 줘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그래도 내 쪽에서 해가는 금액이 있으니 식장 비용과(축의금도 가져간다 하셨기에) 결혼반지, 스드메, 혼주 한복 등 결혼을 준비하는데 드는 비용 천만 원 정도는 흔쾌히 (솔직히 미안해하며) 금으로 먼저 내어주실 거라 생각했던 거였다. 완벽한 오산이었지만.


이 과정에서 나도 많이 힘들었지만 가장 힘들었던 건 남자친구였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소위 '돈으로 처자식에게 갑질을 하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자기 말대로 하지 않으면 "너 내 돈으로 살지? 내 집에서 나가"를 시전 하는. 그때마다 비참했을 거다. 자신이 모은 돈이 없어, 그럼에도 이해해 주는 여자친구와 결혼이 하고 싶어, 카드를 달라 구걸하며 괴로워하던 남자친구의 모습은 너무 비참했으니까. 나는 본가에 다녀올 때마다 괴로워하는 남자친구를 더 이상은 볼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둘은 참 잘 산다. 이전보다 사이가 더 좋아졌다. 대화도 잘 통하고, 서로가 너무 예뻐 죽고, 싸워도 현명하게 잘 풀면서 너무나 잘 지낸다. 가 만나 본 남자 중에 가장 다정하고, 심성이 착하고, 똑똑하며, 나를 제일 많이 사랑해 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사람과 헤어진다는 건 아예 내 옵션에 없다.


결혼 준비를 중단한 지 1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 그래서 더 고민이 된다. 차라리 '파혼'이면 간단한데 우리는 결혼을 해야겠으니까. 하지만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결혼을 해야겠으니까.


남자친구는 독하게 돈을 꽤 모았다. 그동안 나도 돈을 모았으니 우리 둘이 서울 20평대 아파트 전세를 얻을 정도는 된다. 남자친구는 0원도 도움 받지 않고 절대 자유를 지킬 거라 말한다. 이전의 종속된 삶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아버지가 협박을 하면 연을 끊을 각오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는 여전히 두렵다. 아버님과 또 싸워나가야 할 결혼의 여정이. 그래서 하염없이 미루고만 있다. (상담을 받아야 했을 정도로 힘들었기에, 이 글을 쓰는데도 꼬박 1년이 걸렸다)


가끔은 화가 난다. 축복받아야 할 우리의 결혼이 싸움으로 얼룩지고, 환영받아야 할 나라는 존재가 왜 이렇게 부정당해야 하는지.  한 사람 때문에 왜 나머지 다섯 사람이 불행해져야 하는지.

아버님에게 왜 이렇게 우리 결혼을 맘대로 하려고 하는지 남자친구가 여쭤본 적이 있다. 아버님 왈 "혼주는 '혼인의 주인'이라는 뜻이야. 내가 주인이니 당연히 할 수 있지"


아니다. 우리의 혼인의 주인은 우리다.

우리는 지켜나갈 거다. 우리의 결혼을.

우리의 독립적인 결합과 주체적인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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