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하나의 인생을 살고 가니까 다른 인생은 어느 정도의 재미와 기쁨, 생동감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나보단 즐겁게 살다 갈 거야'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삶이 너무 너절해서 이대로 살아가는 게 직무유기처럼 느껴지는 날들. 지겨워.
특히나 나는 뉴욕의 영상이나 사진을 보면, 그중에서도 낙엽이 가득한 가을의 뉴욕 거리나 센트럴파크를 거니는 그곳에 속한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질투가 나고 억울하다. 마치 내 삶을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화가 나고 부러워 못 견디겠다. 왜 그렇게 절절하게 뉴욕을 원하는지, 왜 저곳에서의 삶이 진짜 내 삶인 것 같다고 느끼는지는 정말 모를 일이었다.
뉴욕 최애 공간 - 브라이언트 파크
끊임없는 무기력의 반복, 아무리 긍정적이려 노력해 봐도 불만족스러운 삶이 너무 답답해서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간 적이 있다. 예약하고 6개월이나 기다려야 무당 앞에 앉아볼 수 있는 곳이었다. 나에겐 태어나서 처음 보는 신점이었고.
무당집에 대한 상상과는 다르게 이대 뒷골목에 있는 작은 가정집에 편안한 티셔츠를 입은 아저씨가 앉아있었다(한복 같은 거 입고 갓 쓰고 있을 줄 알았다).
"안녕하세요"
"생년월일"
"ㅇㅇ년 ㅇㅇ월 ㅇㅇ일이요"
"너는 왜 아직도 조선 땅에 있어?"
"네?"
"진작 여길 벗어났어야 되는 애가 왜 여기 있냐고."
".....(놀라서 암말 못함)"
"여긴 네 고향이 아니야. 대한민국이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기선 니가 받아야 할 인생의 운을 못 받고 살어. 외국으로 나가야 받을 수 있어. 조상들이내보내려고 노력 많이 했는데 왜 아직도 여기 있어"
그랬다. 모든 실마리가 풀렸다.
내가 왜 그토록 중고등학교 때부터 배낭여행가들의 책을 끼고 살았는지, 성인이 되자마자 역마살 가득하게 해외를 쏘다녔는지, 코로나로 한국에 묶였을 때 왜 우울증에 걸렸는지, 내 전남친들이 왜.. 다.. 해외로 석박사를 가게 되었었는지..(친구들이 유학원이냐고 놀릴 정도로 나랑 사귀기만 하면 그 어렵다는 해외 석박사에 척척 붙고 유럽으로 미국으로 떠났더랬다. 현 남친도 나와 만나자마자 영국 석사에 붙었다)
"그럼 저 외국 가서 뭐 해야 돼요? 저 영어도 잘 못하고 경력도 마케팅이라..(가서 할 게 없어요 라고 말하려고 했음)"
"넌 사무실에서 컴퓨터 두들길 팔자가 아니야"
"네?(2차 충격. 난 누구보다 훌륭한 회사원인데?)"
"너 전생에 서양의 남자 환쟁이였어. 그림 그리는 사람이었다고. 외국 나가서 환쟁이 운을 받아야 돼. 그게 니 운명이야"
"저 그림 되게 못 그리는데요?"
"꼭 그림 그리라는 게 아니라!!!! 글을 쓰든 사진을 찍든 영상을 찍든 예술을 하라고. 환쟁이나 글쟁이나 비슷한 거야. 사무직 할 생각 하지 말고"
언제나 날 미치게 하는 빌딩숲 야경 - 밤의 브루클린 브릿지
무당 아저씨는 말했다. 한국에 묶이지 말고 어떻게든 외국 나갈 궁리를 하며 살라고. 3년 잡고 단도리하면 갈 수 있다고. 사실 나는 당장의 한국에서의 문제 -이직, 결혼 등-의 문제도 궁금해 말을 꺼냈지만 다 컷 당했다. 아니라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너한테 지금 이직 결혼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여. 넌 어차피 남자 사주라서 결혼 출산 그런 거 별로 안 중요한 팔자야. 외국 나가서 뭘 하고 할지 지금부터 치열하게 고민해. 지금 하는 일 상관없이 새롭게 준비해서라도 어떻게든 대한민국 땅에서 나가.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그려야 해."
인생을 새롭게 그려야 한다는 그 말이 머리를 띵하게 울렸다. 사실 눈물도 핑 돌았다. 내가 가슴 깊이 원했지만 애써 부정하고 있던 말이어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에 대한 끊임없는 불만족, 무기력, 우울감이 사실은 말해줬었다. 이건 내 삶이 아니야.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야. 하지만 용기가 없어서, 내가 이뤄온 모든 걸 포기하기가 아까워서,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이곳을 떠나기가 힘들어서,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으며 나 자신을 설득해 왔었던 거다. 문득 나 자신에게 굉장히 미안해졌다. 그렇게 말했는데! 결국 점쟁이의 말을 듣고서야 수긍하다니- 고집 센 것 같으니라고!
여기서는 나도 러너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브루클린 브릿지
그리고 소름 돋는 말 하나 더.
"지금 니 남친이랑 결혼 잘 안 풀리지?"
"와.. 네.."
"결혼이 버벅대는데 또 헤어지지는 않고 뭔가 찝찝한 그런 상태잖아"
"맞아요..."
"조상들이 니 남친에 X 쳐놨어. 별로 맘에 안들어해. 근데 헤어지게는 안 한다? 이유가 뭔지 알아? 걔가 너 외국 가게 해줄 인연이라 그래."
맞았다. 현 남친은 중학교를 외국에서 나왔고, 덕분에 영어를 잘해서 국제학과를 졸업했으며 영국에서 석사도 마친, 그야말로 해외에서 직장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게 내가 이 사람과 인연을 이어가는 이유라고 했다.
모든 게 딱딱 들어맞는 느낌이라 너무 신기했다. 그리고 시원했다. 이 맛에 점을 보는구나.
신점에 의지해 인생을 살 생각은 없지만, 정말이지 인생이 한 치 앞도 안 보이고 답답해 미치겠을 땐, 영험한 힘을 믿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싶었던 경험이었다.
작년 9월 이 신점을 보고 딱 1년이 지났다. 덕분에 난 인생을 새롭게 그려가고 있다. 이직이나 현재의 커리어에 집착하지 않으며, 영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고 있고, 해외에 나가 사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자격증 등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회사 생활은 자주 현타가 오고 지긋지긋함을 떨칠 수 없는 일상이지만, 그래도 미래를 위한 무언가를 할 때마다 설렌다. 언젠가 내 삶을 찾을 거라는 생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