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마음에만 담겼던 파리의 찰나
이번 파리여행이 정말 좋았던 이유는 그곳이 바다 건너 선망의 여행지인 유럽이어서가 아니었다. 파리여서도 아니었다. 잠시 회사를 떠난 휴가여서도 아니었다.
'아름다움'에 대해, 이 세상의 눈물겨운 아름다움을 진심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아름다운 것'에 되게 둔감했다고 한다. 엄마 아빠와 차를 타고 가면 동생은 코스모스가 활짝 핀 창 밖 풍경을 함박 웃음을 지으며 봤는데 나는 별 감흥이 없었단다. 미술관에 가도, 박물관에 가도, 남들이 멋지다는 그 무엇을 봐도 그냥 뚱해 있었단다. 꽃이 왜 예쁜건지, 애인에게 꽃다발이 왜 받고 싶은건지 이해 된 것도 얼마 안됐다.
당연히 아름다운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감정도 이해를 못했다. 아름다우면 아름다운거지. 왜 울어? 브이 하고 사진 몇 장 찍고 뒤돌아서면 그만 아니야?
루브르 박물관의 오전 투어가 있던 날. 축복 받았다 생각할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 1년의 2/3가 비가 온다는 파리에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모든 광경은 그림이었다. 흐린 날에도 충분히 멋진 씬들에 햇살이 덮히니, 동공에 필터를 끼운 것처럼 눈길이 가는 곳마다 마음에 사진이 찍혔다.
날씨가 좋으니 에펠탑을 보러 가려고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는 가을 햇살이 가득 찼다.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날 보고 맘씨 좋은 프랑스 할머니께서 창가 자리를 양보하셨다. 그렇게 튈르리 정원을 지나 콩코르드 광장과 에펠탑으로 이어지는 창밖의 길을 감상했다. 그 찰나가 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루브르가 아무리 세계적인 박물관이라도, 나에겐 에펠탑으로 가는 버스 창 밖 풍경이 백배 더 멋진 예술 작품이었다. 그 때서야 비로소 느꼈던 것 같다. 진심으로 가슴에 전해지는 아름다움을 목격했을 때 왜 눈물이 나는지. 왜 카메라를 가만히 내려두고 넋을 놓게 되는지. 사진을 찍거나 옆 친구와 감상을 나눌 새도 없이 흘러가는 아름다움을 하염 없이 아쉬워하게 되는지.
완벽한 아름다움은 피사체 그 자체에서만 오지는 않는다. 피사체를 둘러싼 배경과 피사체를 바라보는 주체의 감정 상태 또한 중요하다. 이 날 에펠탑이 아름다움의 정점을 찍었던 이유는 파란 하늘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걸 보는 내가 오랜만에 걱정과 스트레스 없이 여행에 흠뻑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삼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진심으로 코 끝이 찡해지는 아름다움을 목격하게 되는데, 쉽지 않다.
그래서 눈물이 나는 것 같다. 이렇게 완벽하게 '아름답다' 느낄 수 있는 기회는 인생에 몇 번 오지 않을테니까.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이런 황홀한 경험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도, 죽기 전에 또 한번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에 오는 인간의 욕심.
그러고 보니 아름다움에 흘리는 감동의 눈물은 '흘러가는 것을 붙잡을 수 없는, 궁극의 미의 상태를 스스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인간의 무기력'에 대한 아쉬움이 아닐까. 내가 보고 싶다고 다시 그 날의 시공간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거니까. 이건 눈에 담고 흘려보내야 하니까.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이렇게 나는 파리 여행으로 또 한번의 인생 공부를 했다. 아름다움이 어디에서 오는지, 또 그 순간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찰나의 아름다움이 나에게 얼마나 깊은 영감을 주는지.
그 영감은 내 인생의 에너지가 되고 다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연료로 쓰인다. 흔히들 말하는 '추억팔이'를 하면서 나는 또 일상의 고단함을 버텨내겠지.
절대 잊지 못할 인생의 추억을 만들어준 파리의 모든 피사체들과 파란 하늘, 햇살, 그리고 이들을 깊이 즐길 수 있을만큼 성숙해진 나 자신에게 고맙다.
진심으로 행복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