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파리, 황홀했던 추억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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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에서 이어집니다-
긴긴 황금 연휴에 왜 파리에만 있냐는 질문을 많이도 들었다. 사실 나도 고민을 하긴 했다. 이게 얼마만의 황금 연휴인가. 최소 열흘은 시간이 나야 올 수 있는게 유럽인데 어디라도 더 들렀다 와야하나, 헬싱키 스탑오버라도 할까 싶었다. 하지만 결국엔 파리 오직 한 곳.
첫째는, 빡세게 보내고 싶지 않아서. 비행을 빼고 8박 9일이라는 시간이 있으니 2~3개국 정도는 가야 '뽕을 뽑는다'는 마인드를 이번에는 멀리하고 싶었다. 이직 후 정말 열심히 일했고 번아웃이 되기 전 힐링을 하는 것이 목적이라, 나만한 캐리어를 끌고 울퉁불퉁한 유럽 거리를 덜덜덜 끌려다닐 자신이 없었다. 대학생들처럼 그걸 할만할 체력도 물론 안되고.
둘째는, 그리웠던 파리와 깊게 인사하고 싶어서. 사실 2년 전 크리스마스에 나는 파리를 한 차례 방문했었다. 다들 3박 4일이면 충분히 본다길래 그 정도 지내다 왔는데, 다녀와서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진짜 파리는 관광객이 드글대는 노틀담 성당 앞이나 에펠탑에 있는게 아니라 골목길 사이사이에 배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흠뻑 파리에 젖고 싶은 맘에 오직 파리 한 군데를 선택했다.
이런 생각으로 떠난 파리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건 숙소였다. 흠뻑 파리지앵이 되기 위해서는 진짜 그들처럼 '살아볼 곳'이 필요했다. 유스호스텔처럼 불편하지도 않고, 한인민박처럼 한국스럽지도 않은 곳. 호텔은 취사가 불가능하고 맘에 드는 위치는 말도 안되게 비싸니 패스.
그래서 나는 파리행 비행기표를 살 때부터 에어비앤비를 생각하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2년 전 런던에서 이용한 에어비앤비의 좋았던 기억이 한 몫 했다. 당시 런던 여행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만들어준 팔할이 에어비앤비였다.
하지만 좋은 에어비앤비를 고르는건 쉽지 않았다. 치안이 좋고, 교통이 편하고, 인테리어가 예쁘며, 가격대도 합리적인 에어비앤비를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 설상가상으로 뉴스에서는 연일 에어비앤비의 인종차별이나 성추행 소식들이 들려왔다.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해선 후기가 많은 슈퍼호스트의 집이어야 했다.
수십개의 집들을 조사하고 캡쳐하고 친구와 토론을 거친 뒤 결정된 집은 생미셸 광장의 Caroline의 집. 여기 말고도 여러 곳에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있는 슈퍼호스트다.
https://abnb.me/EVmg/V0EjYCWjjH
나와 내 친구는 여기서 8박을 묵었다. 최대 4인까지 수용 가능한 집이다. 4개월 전에 예약했지만 많은 날짜가 이미 예약되어 있던 인기 많은 집이었다.
파리 에어비앤비 가격은 생각보다 비싸다. 이 집으로 선택한 큰 이유 중 하나는 '주 단위 가격 할인'. 일주일 이상을 예약하면 무려 26%를 할인해주기 때문이다. 원래는 1박에 18만원 정도 한다. 비싸다. 그 돈이면 호텔도 갈 수 있다. 그렇지만 최대 4명까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나눠낸다 생각하면 괜찮기도.
위치는 정말 짱이다. 역과 걸어서 5분, 뛰면 2분? 게다가 근접한 역이 생미셸역 또는 생미셸노틀담(St.Michel Notre-Dame)역이다. 4호선을 비롯해 샤를드골공항까지 가는 RER선이 지난다. 덕분에 나는 공항에서 한번에 시내로 올 수 있었다.
매일 지나다녔던 생미셸 광장. 생미셸 광장을 등지고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노틀담 성당이 있고 왼쪽으로 내려가면 퐁뇌프 다리와 루브르 박물관이 있다. 모두 걸어서 10~20분 내외로 갈 수 있어서 대부분 걸어다녔다. 집 앞이라 밤마다 노틀담 야경을 보며 산책하는 즐거움이...(아 그리워)
집 앞에 맛집들도 많다. 크레페, 피자, 케밥 등 다양하게 먹을 것이 있어서 저녁을 여기서 많이 먹고 들어가곤 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폴 빵집, 스타벅스, 모노프리(Monoprix)도 걸어서 10분 내 거리에 있다.
특히 모노프리 같은 대형 슈퍼가 숙소 주위에 있는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여행자들은 알거다. 그곳은 천국이다. 각종 먹을 것들과 생필품들이 다 있다. 선물용으로 잼이나 꿀 등을 사오기에도 안성맞춤.
집 앞 모습이다. 집에 들어가려면 3번의 잠금 장치를 풀어야 한다. 2층에 있어서 계단은 한번만 올라가면 끝.
짜잔- 2층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1층이 가장 한눈에 보이는 샷. 크기가 에어비앤비 사진으로 본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여자 두명이서 이용하고도 남을 공간. 나는 2층에서, 친구는 1층에서 잤다. 저 쇼파를 펴면 침대가 되는데 꽤 크고 편하다.
호스트가 준비해준 와인. 마지막날 맛있게 먹었더랬지.
화장실의 모습이다. 노후된 느낌이 있긴 했지만 사용하기엔 무리가 없었다. 다만 집의 크기에 비해서 좁기 때문에 최대 정원인 4명이 사용하려면 화장실이 좀 불편할 것 같기도. 뜨거운 물을 오래 틀면 찬물이 나와서 그건 아쉬웠다.
부엌에는 다양한 식기와 세탁기, 전자레인지, 커피포트, 냉장고, 냄비 등이 있다.
깨끗하게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이 집을 선택한 중요한 이유! 바로 복.층.구.조.
이거슨 로망 아닌가... 그냥 복층집도 로망인데 파리의 복층집이라니><
너무 아늑하고 좋았다 이 공간.... 여기서 잤던 8일의 밤을 절대 잊지 못할거야...ㅠㅠ
에어비앤비에서 먹었던 우리의 아침ㅎㅎㅎ
모노프리에서 뮤즐리, 요거트, 식빵, 연어 등을 사다 놓고 아침마다 차려 먹었다. 아침을 먹을 때마다 이런 말이 생각났다.
여행은 살아보는거야
숙소는 전반적으로 좋았지만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조명.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너무 어두워서 비오는 날에는 약간 우울하기까지 했다. 뭐, 파리 에어비앤비에서 반짝한 채광까지 기대한건 아니었지만.
더 아쉬웠던건 호스트의 피드백이다. 안그래도 어두운 숙소엔 램프가 두개나 고장나 있었다. 첫 날에 호스트 Caroline과 함께 일한다는 남자가 와서 숙소에 대해 설명을 해주면서 조명은 "내일 갈아줄게! It's our mistake!"라고 했지만 남은 8일 내내 그는 오지 않았다. 캐롤린에게 한번 더 요청을 했지만 역시 오지 않았다. 그래서 2층에서는 불을 켜지 못한 채 지내야 했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치와 복층구조의 메리트가 너무 크기 때문에 나는 다음에도 가능하다면 이 숙소를 이용할 계획이다. 벌써 그립다, 파리 내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