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피디 Mar 04. 2019

엄마와 떠난 홍콩 3박 4일 자유여행

그저 먹고, 사고, 사색했던, 여유 가득했던 시간

올해의 직원을 발표하겠습니다.
XXX 팀장, 수고 많았습니다.


2018년을 마무리하는 송년회에서 나의 이름이 호명됐다. 올 한해 수고했고 내년엔 더 수고해달라는 의미에서 받은 엄청난 선물과 함께. 바로 포.상.휴.가.


연차가 소진되지 않는 4일간의 휴가에 동반1인 대한항공 프레스티지석 티켓과 3박동안 머물 수 있는 5성급 호텔 숙박권이었다. 오 마이 갓. 누굴 데려갈까 살짝 고민하다, 이건 엄마랑 가야겠구나 결론을 냈다. 효도여행은 사실상 여행이 아니라고 하지만 언제 이렇게 어머님 은혜를 갚아보리. 더구나 나는 3월 중 독립 예정중이라 헤어지기 전(?) 마지막 여행 기회였다.

언제 봐도 카메라를 찰칵거리게 되는 소호 거리
언제나 활기찬 청킹맨션 앞 횡단보도
홍콩의 이런 낡은 시멘트 건물이 너무 좋다

딸에게는 다섯번째, 엄마에게는 첫번째,

두 여자의 홍콩 이야기




인천-홍콩 대한항공 프레스티지클래스


우리 엄마 인생의 첫 비즈니스석이다. 어렸을 때 방콕 여행을 가면서 할아버지가 어린 손녀 손자들만 타이항공 비즈니스석을 태워주신 적이 있는데 그때도 엄마는 이코노미에 탑승했었으니 레알 처음. 나도 일이 아닌 개인 여행에 비즈니스를 타는건 성인이 되고 처음이다.

프리미엄체크인에 라운지라는 호사를 누린 엄마는 시종일관 어리둥절ㅋㅋㅋ


2터미널의 대한항공 프레스티지클래스 라운지는 아침 7시경인데도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음식은 예상대로 별로. 엄마가 아니었다면 나는 신용카드 라운지키를 이용해 바로 옆 마티나에 가서 맛난 것들을 흡입했을테지만(대한항공은 프레스티지 기내식도 그닥이니까) 모든 것은 엄마 위주로.

반딱반딱 새 공항
대한항공만 늘어선 것이 장관이다

오전 8시 20분 인천에서 홍콩으로 가는 KE603편의 기종은 B777-300의 2-3-2 배열이어서 사실 비즈니스석으로의 메리트는 없다. 삼일절 연휴 껴서 수~토 1인 약 80만원에 예약했다. 올때는 오후 3시 25분 KE614편 B747-8i를 탑승하는 행운이 있었다. 더이상 신규 발주가 없어 대한항공이 2017년 인도 받은 것이 민간 항공사로는 마지막인 보잉사의 점보젯. A380도 생산 중단이라고 하니, 이 참에 엄마에게 2층 비행기를 경험하게 해준건 럭키!

식사도 아침식사여서 비교적 간소한 편. 돌아올 때는 런치나 디너를 기대했으나 '간단한 식사'를 준비해 준단다-_- 닭다리살을 주문했는데 냄새가 많이 나서 예민한 우리 엄마는 다 남겼다. 역시 기내식은 아시아나가 나은걸로.




침사추이 호텔 아이콘(ICON)

17 Science Museum Rd, Tsim Sha Tsui

호텔은 아이콘(ICON)의 36하버뷰룸이었다. 15층으로 배정 받았고 인터파크투어에서 조식포함 3박에 110만원 정도에 예약했다. 업그레이드를 잘해주는 곳이라 기대를 했으나 실패. 그래도 널찍하고 인테리어도 예쁘다. 스위트와 비교하자면 어메니티가 디스펜서고 무료 미니바가 반의 반의 반 정도라는거?

대표님이 보내주신 깜짝 선물과 카드 ㅠㅠ 일 열심히 해야지...
초콜릿과 음료, 맥주 등을 무료로 먹을 수 있다
낮과 밤의 하버뷰는 이 정도.

사실 위치로 보면 침사추이 시계탑이나 하버시티까지 좀 거리가 있다. 지금처럼 날 좋을 때는 운동 삼아 걸을만 하지만 짐이 많거나 더워지면 절대 힘든 거리. 대신 하버시티와 페닌슐라호텔까지 셔틀을 운영하니 시간 맞춰 잘 이용하면 편하다.

첫째날 둘째날 나의 조식 플레이트

아이콘은 조식뷔페가 훌륭한 곳은 절대 아니다. 홍콩에 워낙 맛있는 것이 많으니 가격 차이가 크다면 룸만 예약하길 추천한다. 그나마 먹을건 오믈렛, 연어, 딤섬 정도.


TIP. 침사추이까지 걸어서 왔다갔다 해보니 로열가든(Royal Garden)이나 리갈구룡(Regal Kowloon)호텔도 지리상 괜찮아 보인다.




맛집&카페 TOP7


1. 란퐁유엔 토스트

44 Nathan Rd, Tsim Sha Tsui

홍콩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간 란퐁유엔. 홍콩이 다섯번째인 나도 이런저런 이유로 가보지 못했던 곳이다. 소호에 있는 본점은 항상 줄이 길어서 포기했고 이번엔 침사추이 지점으로 도전! 점심시간이 아닌 애매한 시간이어서 그랬는지 바로 자리가 있었다.

이런 홍콩 로컬 식당에서 절대 '친절'은 기대해선 안된다 :) 합석은 기본, 현금은 필수!

밀크티는 예상했던 그 맛. 찐~한 홍콩맛. 예상 외였던건 사실 먹을 생각도 없었던 치킨누들이었다. 엄마와 나는 프렌치토스트로 당만 보충하고 저녁을 먹으러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옆자리 현지인들이 모두 이걸 먹고 있길래 시켰는데, 웬걸? 솔직히 이게 프렌치토스트보다 백만배 맛있다.


전혀 냄새 안나게 짭짤하게 시즈닝해 구운 닭다리살은 통통하니 씹는 맛이 있었고, 살짝 타서 바삭한 껍질의 감칠맛이 굽네치킨 저리가라였다. 같이 올려주는 마늘소스는 좀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라면 같은 누들 자체에도 양념이 되어 있어서 고기를 다 먹고도 자꾸 손이 가는 맛.

프렌치토스트는 좀 실망스러웠다. 보통 생각하는 그런 프렌치토스트는 절대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파리바게트에서 파는 기름에 튀긴 찹쌀도넛에 시럽을 뿌리고 버터를 얹은 맛. 기름 쩐내가 좀 많이 나서 별로였다. 다시 간다면 나는 저 치킨누들을 먹으러 간다!



2. 타이청 베이커리

35號 Lyndhurst Terrace, Central

소호를 걷다보면 만나기 싫어도 만나게 되는 타이청 베이커리. 목요일이었던 둘째날 오후에 갔을 때는 대기 없이 바로 먹었는데, 삼일절이었던 금요일에는 줄이 어마어마했다.

엄마가 여행 내내 "에그타르트 하나만 더 먹고 싶다" 했던 타이청. 나도 홍콩에 올 때마다, 소호에 들를 때마다 꼭 챙겨먹는다. 사실 한국에도 이 정도 맛을 내는 에그타르트는 널리고 깔렸지만... 뭐랄까? 따끈따끈하게 데워져 푸슬거리며 부서지는 이 에그타르트를 한입 베어물어야 비로소 '아, 나 홍콩에 있구나' 싶달까. 



3. 예만방

63 Sing Woo Rd, Happy Valley

이번까지 다섯번의 홍콩 방문 중 정말 피.치.못.한. 두번을 빼고 모두 방문한 예만방. 소호도 침사추이도 아닌 해피밸리라는 꽤나 먼 주거지역에 있는 곳이라 맘먹고 찾아가야 하지만, 샤오롱바오 6알과 하가우 2알과 연잎밥 두덩이에 4만 7천원이라는 비싼 가격을 자랑하지만, 그래도 제대로된 딤섬이 처음인 엄마를 꼭 먹여주고 싶었던 곳.

소호에서 1번 버스를 타고 꽤 가야한다. 가는 길이 예쁘기 때문에 꼭 2층 앞자리에 앉기를 추천한다. 홍콩의 2층버스는 자리를 잘 잡으면 돈 내고 타는 관광버스 못지 않게 좋아서 나는 시간이 남을 때는 정처 없이 버스 앞자리에 앉아 돌아다니곤 했다. 옥토퍼스 카드는 한국에서 사가지고 갔고 1인당 50HKD씩만 충전했는데 3박 4일동안 충분했다. 숙소에서 도보 20분 거리 내인 침사추이 지역은 모두 걸어다니거나 호텔 셔틀을 탔기 때문에.

예만방의 이 끝내주는 샤오롱바오는 먹는 방법이 있다. 그냥 입에 넣으면 육즙에 온 입안을 데이고 다 뱉어내게 될지어다. 반드시 딤섬을 숟가락에 올리고 피를 약간 찢어서 늑진한 육즙을 호로록 마신 뒤(1차 탄성), 함께 주는 생강 절임을 약간 올려 호호 불어 한입에 쏘옥(2차 탄성).

이것이 딤섬이다

새우만두인 하가우에는 통통한 새우살이 가득 들어있다. 이 날은 좀 잘못 쪘는지 피가 약간 흐물거려 안타까웠지만 엄마가 계속 새우살을 이야기한걸 보면 맘에 들었나보다.

연잎밥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주문한 메뉴. 닭고기가 들어있는걸로 시켰는데 노른자와 함께 적당히 간을 한 고기가 찰밥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예만방의 새로운 발견! 다음에 가면 이 연잎밥도 필수다.

가격은 이 정도

우리 모녀는 워낙 입이 짧아 저 정도 먹고도 딱 기분 좋게 배불렀지만... 대식가들은 여기서 가산 탕진하는 수가 있다. 카드결제가 가능하니 신용카드를 준비해가자. 그래도 인생 딤섬을 맛볼 수 있다고 장담한다. 내가 홍콩에서 1일 1딤섬 했던 여자다.



4. 이순 밀크 컴퍼니

63 Pilkem St, Yau Ma Tei

사실 여긴 계획에도 없던 곳인데ㅋㅋㅋ 예만방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오면서 폭풍수다를 떨다가 이상한 곳에 내렸다. 여긴 뭐지...

엄마, 이런게 자유여행의 묘미야.
잘못 내린 김에 디저트 먹고 가자!

그래서 먹게된 이 곳의 우유푸딩. 백종원님이 한 프로그램에 나와서 갔던 곳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거슨 우리 엄마의 소울푸드가 되었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우리가 아는 푸딩이라기엔 좀 묽고, 우유라기엔 쫀득하고, 달다고 하기엔 끝맛은 깔끔하고, 밍밍하다기엔 분명 기분좋게 달콤한 그 맛. 사발로 주면 사발째로도 먹을 수 있을 맛이라고 했다 엄마는. 한국에서 맛볼 수 없는 맛이다. 꼭 먹고오길 추천한다.



5. 누들하이브

The Noodle Hive

伊利近街12A號 中環, Central

두번째 소호에 갔던 날, 나도 매번 못 먹었던 카우키레스토랑에 반드시 가려고 했으나! 역시 줄이 2시간 짜리였다. 그 시간은 분명 3시 정도였는데^^^^ 우리 모녀가 맛있는걸 좋아해도 두시간 기다려서 먹을 정도로 미식가는 아니어서, 이전에 현지인들이 줄서 있던 미슐랭 누들집으로 가보기로 한다.

이 길에 있다

일단 결과는 대성공. 엄마는 F번 SEA TASTE를 시켰고, 나는 G번 홍콩 커리 누들을 시켰는데 해물이 더 맛있었다. 엄마 누들은 해초 같은 것에 피시볼, 나는 고기에 피시볼이 있었고 소스는 각자 따로 나왔다. 국물이 진짜 진하면서 깔끔하고 건더기들도 실했다. 무엇보다 소면처럼 보이는 저 국수가 이상하리만큼 쫄깃해서 '이것이 밀가루인가 쌀국수인가' 한참 고민을 했더랬다. 혹시 홍콩 음식에 질려 라면을 먹고 싶은 사람들에게 성림거보다 추천하는 곳이다. 해물칼국수 맛을 느낄 수 있다.

가격도 착하다.



6. 청흥키
Cheung Hing Kee Shanghai Pan Fried Buns
48 Lock Rd, Tsim Sha Tsu

마지막날, 체크아웃을 한시간 남겨두고 '이대로 갈 순 없다'며 내가 20분을 걸어 다시 청킹맨션 쪽으로 가서 사온 청흥키. 결과는 대만족.

엄마, 내가 다시 홍콩 오면 청흥키부터 먹으러 온다

시그니처와 새우맛을 테이크아웃 해왔다. 한김 식혀서 먹는게 더 맛있다. 역시 한입에 넣으면 육즙이 터지면서 입안을 다 데이고 뱉어내게 될지어다222. 만두피의 말랑한 부분을 살짝 베어물고 육즙을 쭉 마신다. 밥 말아먹고 싶은 진한 고깃국물이 입안 가득 퍼진다. 새우 하나가 통째로, 고기 하나가 통째로 실하게 들어가 있다. 핵심은 실한 소와 육즙을 단단히 가두고 있는 만두피인데, 얇지 않지만 화덕에 바삭하게 구운 맛이라 피만 먹어도 정말 일품이다(원래 탄수화물맛이 제일 맛있는 법). 굳이 비교하자면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파는 화덕만두랑 비슷하다.



7. teakha

18B Tai Ping Shan St, Sheung Wan

정신 없는 소호에서 카페를 찾아 헤매다가 '일단 좀 벗어나자!' 해서 트립어드바이저 신공으로 찾아가게 된 곳. 정말 이번 여행 중 신의 한수가 있었다면 여길 간거다. 일단 소호에서 15분 정도를 걸어가야 하는데, 가는 길 골목골목 끝내주는 벽화들과 힙한 카페들을 구경할 수 있다. 다들 북적이는 소호 내 그 건물 벽화 앞에서만 사진을 찍는데 진짜 홍콩스러운 힙플레이스는 바로 여기란 말이다.

★이 지역과 카페에 대한 정보는 따로 준비했습니다. 진짜 강추라서요... 글이 발행되면 링크를 남기겠습니다! (제가 부지런을 떨 수 있게 해주세요)




홍콩 패션 쇼핑리스트


모녀 여행에서 쇼핑이 빠질 수 없다. 더구나 우리 엄마는 알아주는 패피이고, 나도 옷에 관심이 지대해서, 우리 모녀의 3박 4일 중 족히 이틀은 옷을 구경했을거다. 흔히 홍콩 쇼핑이라고 하면 명품을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는 가성비 좋은 로드샵들을 발굴(?)했다. 홍콩의 디자이너샵부터 명품 로스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파는 샵(이건 정말 나만 알고 싶은건데...), 홍콩 사는 친구가 꼭 들러보라고 알려줘서 득템한 (한국에는 없는) 영국 SPA 브랜드 등.

약간의 스포... 나의 아가들

● 쇼핑 정보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주세요:)




"홍콩 너무 좋다"


우리 엄마가 여행 내내 했던 말이다. 홍콩이 좋다는걸 이미 알고 있던 나도 유난히 좋았던 여행이었다. 청바지에 흰티 하나 딱 입고 다니기 좋았던 날씨도, 여전히 너무 맛있는 음식들도, 떠들썩한 소호와 침사추이의 분위기도, 2층 버스 앞자리에서 구경했던 길쭉길쭉한 건물 사이 골목들, 햇살 가득 머금은 초여름의 설렘,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엄마의 소녀 같은 미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여행과 일로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딸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부럽다고 했던 당신. 용기가 없고 여유가 없어 젊은 날 누리지 못했던 넓은 세상을 내가 힘 닿는대로 보여줄테니. 내가 엄마보다 잘난건 이것뿐이니까.


고맙습니다. 삼십년 내내 '너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해줘서. 하고 싶은건 뭐든지 다 해보라고 믿어줘서. 네가 세상에서 제일 멋지다고 해줘서. 시도 때도 없이 놀러나가는 나를 이해해줘서. 그것이 내 인생의 가치이자 행복임을 인정해줘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시간을 줘서. 나만의 방식으로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키워줘서. 

엄마와 잊지 못할 홍콩 여행,

끝.



매거진의 이전글 사진으로 보는 부다페스트의 가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