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옆집

by 혜령

한 달쯤 시인의 하숙집 주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계란요리를 서른 가지 정도 준비해 두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아침이나 저녁에 내놓을 수도 있겠다.

그가 하는 말을 들어주며 소주병을 지키고 그가 일어나면 등을 두드려 조용한 응원을 보내고 싶다.

밝은 얼굴로 귀가하거나 보이지 않는 얼굴로 식사를 거 때도, 혹은 귀가하지 않는 저녁이라도 무심히 흘려보낼 것이다.

그런 시간들 모두가 시인의 하루를 만드는 의미가 될 것이니까.

그런 의미 곁에 가만히 있고 싶다.

한그루의 나무, 한쪽의 그늘처럼.


또 어떤 날 아침에 찻잔이 깨져야 한다면 가장 아끼고 가장 값나가는 것이 깨졌으면 좋겠다.

어떤 운명이나 기운이 요구하는 대가를 비싸게 치르어 버리고 싶기 때문이다.

가슴이 멍해지는 정도의 의미 있는 물건이거나 보기만 해도 기꺼웠던 그런 것.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어도 좋다.

하루 사용권이 허락된 만큼 아픔이나 서운함은 미리치르고 가고 싶을 것 같다.

우리의 운명은 늘 복병처럼 기다리는 세금이 있기 때문이다.

자주 외롭고 많이 기다리고 혼자에게 말을 거는 날들이 일상이 된다.

그런 하루 끝에 기꺼이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그가 만났으면 좋겠다.

긴 여정 끝에 목적지를 찾은 날이 온 듯.

그런 하루들이 한 달이고 일 년이 되어도 행복할 수 있는 시절이 그에게 왔으면 좋겠다.

그가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