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피 또는 변신

혼자 남은 여름

by 혜령

반년. 여섯 달. 180일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아침에 비가 왔고 조금씩 코끝에 바람이 걸렸다. 환기를 위해 큰 창을 열고 맞바람을 기대하며 주방의 작은 창도 열었다.

너무 깊은 고요가 두려워 밤 새 켜둔 거실의 소리를 끄고 싶다는, 아니 꺼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방의 문을 열고 늦여름의 습기를 들였다.

환기.

아직 버리지 못한 물건들이 억류에서 풀려나 모습을 보이는 복도를 오래 바라본다.

그 물건들 사이로 가볍지 않은 시간과 고통이 살고 있는 듯하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조심하며 마른걸레로 꼼꼼히 닦았다. 마지막 인사를 하듯이.

천천히 움직여 보기로 다.

인간의 시간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지나가고 있다는 말을 기억한다.

나의 가족들은 그렇게 세상을 지나갔고 다만 나의 순서가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남았을 뿐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진실을 받아 들었을 때 묵묵히 긍하며 걸었다.

가슴에 바람이 수없이 불어나가고 들어왔지만 시간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스스로에게 독촉하지 않기로 했었다. 그렇게 여섯 달이 필요했다.

남은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살아간다.

축축하고 아픈 감정의 동굴을 기어서라도 나오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늦게 와닿는 통증이 새삼스럽게 멍든 곳을 강타한다.

다 기억해 내고 만지고 삼켜야 하는 것이 꼬박꼬박 나타난다.

이 시간을 지나가면 다른 모습이 될까.

고치에서 탈피하고 날개를 얻을 수 있을까.

작은 벌레가 되어 세상으로 숨을 수 있을까.

나에게 오는 시간과 계절이 비스듬히 쌓인 눈처럼 다 녹는 날이 온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부지런히 걸어서 세상을 지나가는 에 감사를 잊은 적은 없다.

먼 과거로부터 한 줌씩 쌓인 모레 언덕을 지나 파도가 한창인 바다를 찾아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버리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시간이 아직은 덜 마른 채 널려 있지만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