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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Oct 12. 2021

흑석동 골목대장

우리 가족의 첫 시작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학교의 왼편에 위치한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가면

파스텔빛으로 빛나는 행복이 가득한 나의 어린시절이 있다.


그 옛날, 겨우 26살이던 아빠와 27살이던 엄마는 결혼 후 흑석동 옥탑방에 자그마한 단칸방살림을 마련했고,

결혼 1년 후 세상에 나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엄마는 외할머니의 보살핌을 받기 위해서 경상도에 위치한 차병원에서 나를 낳고 몸조리를 하다가

서울의 회사에 다니는 아빠를 알뜰살뜰히 내조하기 위해 갓난아이던 나를 데리고서 상경을 했다.


엄마 아빠가 기억하는 옥탑방은,

여름엔 찜통같이 푹푹찌는 더위에 겨울엔 뼈까지 얼어붙을 것만 같은 추위를 견뎌야 하는 열악한 곳이자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작은 셋방살이로 시작한 힘겨움이 있는 곳이었지만

저녁이면 노을지는 하늘 아래 사이좋게 모여있는 흑석동의 작은 집들을 내려다 보며 미래를 꿈꾸고

가까운 한강공원으로 손을 꼭 잡고 산책을 나가 도란도란 일상을 나누는 사랑스런 곳이었다.


분명 '엄청작은' 옥탑방이었지만

당시 아주 작은 아기였던 나는 즐거움이 가득한 넓디 넓은 놀이터같은 곳으로 옥탑방을 기억한다.

그리고 우리 엄마아빠의 부부로서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를 터뜨릴만한 장소로 생각한다.


옥탑방 문을 열고 나오면 초록색으로 방수처리가 된 벽돌집 옥상이 있었다.

더운 여름이면 김장용 '빨간 다라이'안에 물을 한가득 받아놓고

물오리 장난감을 동동 띄워 첨벙첨벙 물장난을 하는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

작은 방 벽에 붙여놓은 온갖 동물 그림들과 알록달록하게 쓰여져있던 가, 나, 다, A, B, C같은 글자들을 보고

엄마와 맞추기 놀이하는 것도 조금은 머리가 아팠지만 즐거운 일이었다.


엄마는 취미로 계절마다 내 옷을 만들어 입히곤 했는데,

가을엔 낙엽을 흩날리며 엄마가 만든 티셔츠를 입고 사진을찍고,

겨울이면 엄마가 직접 만든 골덴원피스에 고급스런 자수까지 놓은 까만 코트를 입고

눈오는 집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나는 엄마가 손수 만들어준 옷을 입고 다닌다는게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그 옷을 입을때면 가슴팍이 절로 펴지고 허리가 꼿꼿해져

턱을 높이 들고다닐 정도였다.


밥을 주기도 전 부터 작은 밥상에 앉아서 얌전히 기다리다가 먹었던

조미김에 밥한숟갈, 작은 김치 한조각은 어찌나 꿀맛이었던지

밥먹고 시원한 보리차를 꿀-꺽, 캬- 하고 넘기곤, 통통배를 문질문질 두드렸다.


내가 3살쯤 되었을때는 아빠가 열심히 벌어온 돈으로

옥탑방에서 2층 월세집으로 이사를 갔다.

작은 옥탑방에서 옮기니 우리가족의 새 보금자리가 마치 대궐같고 멋진 성 같이 느껴졌다.

집 앞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나오던 계단과 성냥개비모양의 철제 난간을 언제나 뛰어다녔다.

옥탑방보다 분명 몇 층 낮아졌는데, 집이 좋아져서였는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흑석동 2층 집에선 어린이집에 다녀온 뒤 언제나 친구들과 땀이나도록 뛰어놀았다.

바닥에 철푸덕 넘어져 무릎이 까지고 피가 나도 다친줄도 모르고 헤헤 하고 다시 일어나 뛰었다.

많은 날들에 나는 친구가 제일 많은 내가 가장가는 골목대장이라고 생각했다.(진실은 모른다.)


우리는 골목을 점령한 깍두기 아저씨들처럼 세발자전거로 질주를 하고 추격전을 벌였다.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처럼 앞바퀴가 들리지는 않지만 코너길에서 가속을 하노라면

옆바퀴가 번쩍 들렸다가 쿵 - 하고 내려앉곤했다.


친하게 지내던 상미와는 언제나 골목길을 꺄르르 뛰어다니고

푸름이네 집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한가득 먹었다.

갓 뽑아 김이 모락모락나는 가래떡을 조청과 고추장, 깨를 섞어 만든 매콤달콤한 소스에 찍어먹었던 날은

그 맛이 어찌나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었는지 지금도 그 감동이 기억난다.

그 뒤에도 그 맛을 재현해보려 이리저리 배합을 달리해 섞어보았지만 푸름이네 아주머니 손맛은 따라갈 수가 없어 아쉽다.

소스를 만들어 찍어먹어본 날에는 언제나 그 날엔 마법가루가 들어갔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곤한다.


어느 어린이 날에는 엄마가 우리집 앞 담벼락에 한가득 전지를 붙이고 양동이에 알록달록 물감물을 풀어

모두들 버려도 되는 헌옷을 입고 나와 온 몸에 물감을 묻히고 전지에 내 몸 데칼코마니를 그렸다.

종이에 한가득 찍힌 빨갛고 노란 고사리 손 그림들에서 깔깔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즐거웠다.


집이 있는 동네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흑석시장이 있었다.

어릴 때 부터 낯도 가리지 않고 춤추고 노래하는걸 좋아하던 나는 시장을 휩쓸고 다니는 연예인이 된듯이

온 시장골목을 누비며 엉덩이를 씰룩샐룩 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모습이 귀엽다며 한번씩 얻어먹던 간식이 어찌나 달콤했던지, 노래가 쉬지않고 계속해 나왔다.


주말이면 엄마아빠와 함께 중앙대학교 캠퍼스에 가서 산책을 하고

청룡탕 앞에서 청록색에 노란무늬가 그려진 스웨터를 입고 빨간 손수건을 목에 따뜻하게 두르고선 사진도 찍었다

봄에는 벚꽃이, 여름엔 녹음의 푸르름이, 가을엔 낙엽의 알록달록한 색과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겨울엔 하얗게 변한 전경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운 곳을 함께 거닐던 우리 가족의 모습도 그 속에서 더욱 아름다워졌다.


시간이 지나 중앙대학교에 진학을 하고

우리가족이 서울대학교 앞에 살았으면 서울대학교에 갔을텐데, 하고 농담을 하곤 했지만

내 삶의 시작했던 곳에 다시 되돌아왔다는 푸근함이 나를 감싸곤 했다.

지금의 흑석동은 재개발로 많이 달라졌지만,

내 기억속에 언제나 우리가족의 첫 발을 뗀 곳으로 남아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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