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이 되던 해, 부모님은 나를 노량진교회의 선교유치원에 보냈다. 많은 기억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유치원 뒷편에 있던 알록달록한 철제 놀이터에서 옷깃이 닳도록 미끄럼틀을 타고, 또 탔던 기억이 난다. 그네를 탈때는 일어서서 있는 힘껏 온몸으로 발을 구르면 파아란 하늘 구름 속으로 쏙 들어가는 기분이었고 때론 눈부셔서 감히 있는그대로 바라볼 수 없는 태양까지 닿을 듯 했다.
선교유치원답게 매년 12월 25일 성탄절에는 성대한 공연이 열리곤했다. 어느 해는 동방박사가 별을 따라가는 연극을 했다. 처음 내 배역은 천사였다. "천사 배역을 따내다니 !!!" 눈이 초롱초롱 심장은 두근두근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뛸듯이 기뻤다. 하얀 깃털이 달린 원피스와 당장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듯한 순백의 날개를 달고 무대를 오른다면 조명을 받아 하얀 천사인 내가 반짝 하고 빛날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연습기간 중 몸이아파 2-3번 연습에 참석할 수 없게되었고, 이내 분량이 아주 작은 피아노 역할로 바뀌었다. 의상은 하얀색 드레스는 까만 드레스로 변경되었고, 머리 위에 빛날 노란색 천사 링은 투박한 피아노 건반모양 도화지 모자로 바뀌고 말았다. 천사는 대사도 많았는데, 피아노는 대사 달랑 두마디에 피아노를 치는 척 손을 몇번 휘젓고 허밍을 하는게 다였다. 아- 천사를 해볼 큰 기회를 놓치다니... 어찌나 좌절했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무대에 오르니 작은 배역이라도 참 즐거웠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 언니 오빠들과 호흡을 맞추는 연극은 내게 가장 큰 행복한경험이었다.
한 해는 호두까기인형과 백조의 호수 음악에 맞춘 발레공연을 했다. 그즈음의 나는 아주 통통하게 살이 오르기 시작했었는데, 꽉 끼는 하얀 발래복을 입으니 어찌나 터질 듯 했는지... 머리는 세게 질끈 묶어 눈꼬리가 휙 올라가고 90년대 엄마 화장품(짙은 핑크와 보라의 섀도우, 빨간립스틱)으로 진한 무대화장을 하고 올라가려니 발가벗은듯 부끄러웠다. 분명히 나는 가벼운 몸짓으로 발레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무대를 마치고 찍힌 영상을 보니 동글동글한 애가 짧고 오동통한 팔다리를 휘두르는게 만화캐릭터같아 웃긴 모양새였다.
6살이 되던 해였을까? 유치원을 떠나는 언니 오빠들의 졸업식 축사를 동생 대표로 맡게되었다. 워낙에 무대에 서는걸 좋아하는걸 아셨는지, 어쩌다가 큰 강당에 홀로 올라갈 아이로 선정되었다. 졸업식 축사 글은 엄마가 예쁜 손글씨로 써주었던걸 기억한다. 색상 도화지 커버에 안쪽에 덧댄 얇은 종이 위에 엄마의 손글씨가 놓여져 있는게 볼 때 마다 기분이 좋았고, 이걸 들고 무대위로 올라갈 생각을 하니 시작전부터 언제나 두근거렸다. 왠만하면 머리를 푹 숙인채 대본을 읽는게 아니라 거의다 외운 채로 앞에있는 대중들을 보면서 말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몇날몇일 축사를 외웠다. "노오란 개나리 꽃이 피는 날~ 사랑하는 정든 언니오빠들을 떠나보내려합니다." 라는 문구로 시작했던 기억이다. 진짜 좋아하는 언니오빠들을 떠나보낼 생각을 하니, 무대에서 축사를 하다가 결국 울컥 눈물이 나오고 말았는데, 망치지 않으려 힘써 눈물으 참고 웃으며 마무리했다. 함께 지내던 누군가와 이별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마음헛헛한 일이란걸 배웠다.
지금 내가 과거로 돌아가서 노량진 선교유치원에 있는 나를 만난다면 환한 얼굴로 달려가 안아주고, 너는 참 소중하고 귀하구나, 하고 말해주고, 놀이터에서 신나게 함께 뛰어놀아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