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지금 머라캣노?

외계어같은 사투리 적응기

by 연두빛초록

내가 9살, 동생이 3살이 되었을 때 쯤 우리가족은 경기도에서 경상도 울산으로 멀리 이사를 가게되었다.
아빠의 회사발령 때문이었다.
몇달간 아빠는 울산의 한 조그마한 고시원에 방을 얻어 혼자 밥을 먹고 출퇴근을하다
외로운 생활이 견딜 수 없어져 모든 가족이 옮겨가기로 했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온 뒤로 간신히 적응하고, 이제 새로운 친구도 많이 생겼는데
또 다시 이사라니.
그것도 들어보지도 못한, 차를타고 자그마치 5시간이 넘게 걸리는 남쪽 어딘가로 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아득했다.
내가 소중히 생각하던 장난감과 인형들을 따로 박스에 잘 챙겨넣고선 먼 길을 떠났다.
언제쯤 다시 돌아오게될지 기약없는 이사였지만, 믿을 수 없는 마음에 할아버지댁 가듯 나들이가는 기분이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싶었던 것 같다.

새로 터를 잡은 곳은 아빠 회사에서 직원복지로 주어지는 5층짜리 10평대 빌라 한칸 이었다.
사택 단지 내 쭉 뻗은 중심도로 주위로 가지런히 심어진 가로수가 제법 멋진 동네였다.


이사 후 새학기가 시작되고, 나는 새로운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처음 들어보는 경상도 사투리인 선생님의 말도, 친구들의 말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였다.
마치 한국이 아닌 외국으로 유학을 온 기분이었다.
차라리 영어라면 조금 더 알아들을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해석이 안되어 혼란스러웠다.
수업시간에도 절반 이상은 잘 못알아들어 진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고,
쉬는시간이면 친구들이 말하는 단어 뜻을 몰라 틈에 끼어 놀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공기놀이를 살구놀이라고 했는데, 분명히 내가 아는 살구는
우리 시골 외할머니댁 마당에 있는 나무의 주황빛 열매인데, 왜 자꾸 공기를 살구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같은 반 친구들 중 노란 브릿지를 길게 넣은 소위 동네 깡패같이 생긴 여자친구 하나가
나를 '서울 깍쟁이'라 칭하며 재수없다고 놀렸고, 왕따를 시켜보려 안간힘을 썼다.
세상에서 가장 발랄하게 뛰어다니고 춤과 노래가 취미던 밝은 나는 점점
말 수가 적고 표정이 어두운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매일 밤 누가 들을새라 이불 속에 숨어 몇시간을 울다 지쳐 잠들었다.
울다 울다 눈물조차 말라 나오지 않는 밤에는 그저 방바닥에 가만히 틀어앉아
창가로 스며드는 별빛과 달빛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나마도 밤의 별들이 내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주는 듯 했다.
그렇게 몇달을 보냈다.
그 몇달은 내가 계모에게 다락방으로 쫓겨나 추위에 떨며 청소를 해야했던 신데렐라가 된 듯이 서러웠다.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매몰차게 나를 따돌리려 하던 친구는
기대한만큼 내가 울거나, 화내거나 하는 반응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앉아있어 재미가 없어졌는지
이내 나를 친구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무슨 선포식이라도 하듯 "야, 느그들 이제 야한테 잘해줘라, 우리반 친구다아이가." 하고 큰소리로 내옆에서 외쳤다.
지금 생각하니 무슨 수영장 아줌마가 텃세부리듯 내게 텃세를 부렸던 못난이였다.
그리곤 매일같이 "야, 니는 말 못하나? 벙어리가? 서울말좀 들어보게 서울말좀 해봐라." 하고 말을 걸었다.
거참 퉁명스러운 경상도식 친구만들기였다.
그리고 내가 못이기는 척 입을열어 말을 하면 "오~ 서울~"하면서 씨익 웃곤 했다.
이게 놀리는건지, 대단하다고 하는건지 헷갈렸는다.
그래서 내 속에서 내린 결론은 '내 말투가 너무 튀어서 그러는 것 같으니, 어서 사투리를 배우자.' 였다.
그 뒤로는 친구들의 억양과 생소한 단어들을 사투리로 바꿔말하는 연습을 했다.
처음 사투리 억양을 입에 올렸을때는 어찌나 어색하던지, 그만 얼굴이 단풍처럼 빨갛게 물들고 말았다.
내가 소리내어 뱉어낸 말이 너무도 어색하고 간지러워서 혀를 잘근잘근 씹어 간지러움을 없앴다.

그렇게 3달쯤 지났을까,
나는 어느새 서울에서 온 흔적도 없이
완벽한 울산어린이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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