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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Jul 11. 2024

(D+547일)우리집 강인한 패셔니스타

난 엄마 아빠랑 달라요!



24년 3월, 엄마의 복직을 앞두고 유니는 어린이집 등원을 시작했다.

한달여의 적응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이제는 씩씩하게 걸어 등원해서

안녕히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배꼽손에 꾸벅 웃으며 인사하고서

친구들과 놀러 뛰어 들어가는 어엿한 어린이가 되었다.

비록 매일같이 콧물을 주르륵 흘리는 동네 코쟁이긴 하지만

그래도 큰 병치레 없이 건강히 자라주고 있어 고맙다.


돌이 지났을 즈음엔 점차 자아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고싶은 것'들이 생기더니 

18개월인 지금은 프로 도리도리러가 되어서

먹는 것, 입는 것, 노는 것 어느 하나 부모 맘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여전히 고기 먹는 것은 싫어해서 계란 전에 숨겨서 줘야하며

최애 반찬은 두부와 버섯구이, 과일은 말해 무엇해 식사가 끝나기 전에 제공하면

밥은 하나도 먹지 않고 "과일을 더 내놓아라!!"상전님을 만날 수 있으므로 눈앞에 보여서는 안된다.

싫어하는 반찬에다가는 들깨가루나 버터를 첨가하면 '조금은 먹어드림'버전을 만나볼 수 있으며

아무리 좋아하는 과일이라도 배가 많이 부를 땐 입에도 대지않는 대쪽같은 관리력을 보여주는 유니다.


어느 날 부턴가 칙칙한 무채색의 계열의 옷을 꺼내기만 해도 뿌앵 울며 도망가선 

팅팅 부은 빨간 눈으로 두 손을 안돼안돼 내저으며 온몸으로 입기를 저항하기 시작했다.

(+제일 싫어하는건 갈색 상하의인데, 입혀놓으면 또 생각보다 예쁘게 잘어울리나 입히기가 어려움)

어린이집 여벌 바지라고 가방에 넣어놓은게 맘에 안들 땐 스스로 가방에서 꺼내서

엄마아빠 몰래 옷장 서랍 깊숙히 집어넣어버리기도 한다.

유니에게는 3켤레의 신발이 있다.

발에 꼭 잘 맞고 안전한 분홍색 운동화, 갈색 가죽 샌들, 달콤한 향기가 솔솔 나는 진분홍색 리본 구두.

아침마다 신발을 고르시는데, 역시 그녀는 매일같이 진분홍색 리본 구두를 선택한다.

아직 발이 작아서 걸을 때 한번씩 구두가 벗겨서 울며 다시 고쳐신어야 하는데도 포기않는 그녀는

우리집안에 유일한 첫 패셔니스타다.

그나마 이모가 패션에 관심이 많으니, 나중에 이모랑 아주 쿵짝이 잘맞는 쇼핑메이트가 될 것 같다.


더운 여름에 접어들자 본격적으로 걷기 싫어진 유니에겐 첫 자가용이 있는데,

빨간 외제차가 되시겠다. 

아침 등원길 집 문 앞을 나서자 마자 전용 주차장에서 몸소 문을 열고 직접 탑승을 하신 뒤에,

옆자리에 폭신한 토끼 태우시고 음악 소리 크게 울리시면서 아침의 시작을 알리신다.

놀이터에서 걷기조차 뜨거운 날에는 오로지 아빠와 함께 그네만 빠르게 타고 실내로 돌아오시는데,

아주 높이높이 스릴을 즐겨야 즐거움을 느끼시므로

엄마와 타는 그네는 높이 올라가지 않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다.

엄마가 사정사정해야 아 진짜 하 하는 느낌으로 한번 같이 타주신다...


요즘 그녀의 특징 중 참으로 마음에 드는 부분(?)이라하면 유니는 꽤나 쎈캐라는 것이다.

사실 사회생활에 그리 좋은 요소인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자신의 소유를 아주 강하게 어필한다.

"아땨!!!"하는 기합과 함께 자신의 장난감을 지키거나, 친구의 장난감을 빼앗아오는데(ㅠㅠ)

어디가서 뺏기고 울거나 맞고 울고오는 경우는 아직까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뺏는 부분은 매일 친구와 함께 놀며 유니하나, 율이하나, 한이하나, 이렇게 열심히 가르치다보니

가끔은 친구들에게 장난감도 나눠주고 과일도 한입씩 넣어주는 대인배의 모습을 보일때도 있어 기특하다.


그런 그녀는 언니 오빠들에게도 지지않는다.

어느날엔가 키즈카페에서 3살 오빠가 계단을 올라가는 유니를 끌어내리고

얼굴을 손바닥으로 위에서 아래로 꽤나 세게 때리는듯 쳐 내린 일이 있었는데,

정말 눈물 한방울도 흘리지않고, 단말마의 "아!"비명도 내지르지 않은 채

맞고나서 그저 말없이 3살 오빠를 매서운 눈으로 응시했다.

째려보는 눈도 아니었고, 그냥 강한 경고와 약간의 분노를 담은, 깜박이지 않는 부릅 뜬 눈이었다.

서로 말 없이 눈빛을 교환하더니, 3살 오빠는 그냥 말 없이 지나쳤다.

오........저것이 과연 내 딸이란 말인가.......

반해버렸다.


참으로 얌전하게 양보가 미덕임을 실천해왔던 엄마 아빠, 패션에 전혀 관심 없는 엄마 아빠에게서

자신의 것을 지키고 의견을 주장하며 취향을 이야기하는 작은 딸이 나오다니,

역시 부모와 자식은 아주 독립된 별개의 자아인것을 배운다.

매일 너를 키우며 또 많은 고민을 하고, 우리도 성장하고, 너도 성장하고, 모두가 바르고 행복한 길을 걸으며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가정안에서 행복을 이룰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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