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

이반 일리치의 죽음 - 레프 톨스토이

by 박신영


톨스토이의 이 작품은 착하고 적절하게 살고자 노력했던 한 인간의 삶 전체에 대한 냉혹한 청산 보고서이다. 고등 법원 판사 이반 일리치는 자신이 사회가 요구하는 모든 성실하고 우아한 형식을 완벽하게 수행했다고 믿는다. 톨스토이는 이반의 생애를 "끔찍할 정도로 평범하고 일상적이었다."고 묘사하는데, 이 표현이야말로 이 소설의 가장 날카로운 문학적 판결이다. 끔찍함은 비범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허위적인 평범함 속에 숨어있다.


톨스토이의 문학적 천재성은 서사의 구조적 비틀기에서 빛난다. 소설은 이반 일리치가 죽은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장례식에 모인 조문객들의 대화는 눈물 대신 '일리치 자리가 비었으니 내 승진은 어떻게 되려나' 하는 속물적인 계산으로 가득 차 있다. 아내 프리시코비치는 남편의 시신 옆에서 정부로부터 받을 연금을 걱정한다.


이 냉소적인 오프닝은 소설 전체의 핵심을 미리 드러낸다. 이반의 삶을 둘러싼 모든 형식주의와 공허함을, 그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터지는 순간 주변인들의 위선을 통해 해부하는 것이다. 그들의 삶이 이반의 삶과 놀랍도록 닮아 있기에, 그들은 일리치의 고통에 진정으로 공감하는 대신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로 치부하며 자신의 안전지대를 확인하려 애쓴다.


이러한 허위의 사회에서 유일하게 진실한 인간성을 대변하는 것은 하인 게라심이다. 게라심은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이며, 일리치를 짐짝처럼 대하는 대신 그의 다리를 어깨에 받치고 힘든 밤을 함께 지새운다. 게라심의 단순하고 힘센 연민은 진정한 삶의 가능성을 상징하는 유일한 빛이 된다. 톨스토이는 게라심의 순수한 노동과 연민을 통해, 인간의 가치는 사회적 지위나 절차적 완벽함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공유하는 진솔한 마음에 있음을 선언한다.


죽음의 문턱

이반 일리치의 삶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세련된 표면을 구축하는 일종의 예술 행위였다. 적절한 학교를 졸업하고, 적절한 지위의 여성과 결혼하며, 심지어 새로 이사한 집의 커튼을 늘어뜨리는 방식까지도 사회적 관습이라는 이름의 압제에 충실했다. 그의 모든 행동에는 자기 자신이 없었고, 오직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강박만이 지배했다.


그러나 징후는 사소하게 찾아온다. 새집을 장식하다가 받은 옆구리의 가벼운 타박상. 이 상처가 곪아들어 육체의 파멸을 예고할 때, 이반의 세계는 철학적 균열을 일으킨다. 그는 평생 법원에서 타인의 삶을 심판했으나, 이제 자신이 심판대에 선 것이다.


그가 가장 먼저 거부하는 것은 죽음의 보편성이다. "카이사르는 죽었다, 인간이므로"라는 익숙한 삼단논법은 모두에게 적용되지만, 이반 일리치라는 나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 죽음은 늘 타인의 일이어야 했다. 이반의 고뇌는 나는 예외여야 한다는 인간의 근원적인 자기 기만이 무너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최근 읽었던 <에피쿠로스 쾌락> 에서 에피쿠로스는 "죽음은 감각의 소멸이므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에피쿠로스가 간과한 것인지 의도적으로 뺀 것인지 모르겠으나, 죽어가는 과정 그 자체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죽어가는 과정에서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매우 잘 묘사한다. 톨스토이는 이반의 고통스러운 저항을 통해, 죽음이야말로 인간이 평생 동안 쌓아 올린 모든 허위와 관습으로부터 홀로 서는 최초의 철학적, 종교적 경험임을 깨닫게 한다.


빛의 상징성

죽음 직전,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모든 삶이 잘못된 길이었다는 섬광 같은 깨달음을 얻는다. 그가 평생 좇았던 적절하고 세련된 삶은 실은 자신을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은 허위의 길이었던 것이다. 이 고통스러운 자기심판의 끝에서 그는 비로소 연민과 진실함의 가치를 깨닫는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일리치가 고통의 터널 끝에서 목격하는 '빛'은 아래와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

- 종교적 구원: 기독교적 속죄와 영혼의 구원을 상징하며, 허위의 삶을 참회한 자에게 주어지는 용서일 수 있다.

- 실존적 진실: 빛은 곧 인생의 진실 자체이다. 고통과 죽음을 통해 비로소 허위의 껍질이 깨지고 난 뒤에야 드러나는 삶의 본질적인 의미, 즉 타인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라는 실존적 깨달음의 순간일 수 있다.


일리치는 이 빛을 보고 "죽음이 끝났다"고 외친다. 이 외침은 육체적 고통의 종료를 넘어 그를 짓눌렀던 평생의 허위와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톨스토이에게 진정한 구원은 종교적 교리가 아니라 잘못된 삶을 인정하고 진실을 대면하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현대인들에게 가장 불편하고도 절실한 질문을 던지는 도덕적 거울이다. 우리는 지금 적절하고 세련된 형식이라는 거푸집 속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죽음이라는 최종 판결을 앞두고 후회 없는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진정한 내면의 빛을 우리는 얼마나 쌓아 올리고 있는가? 톨스토이의 이 걸작은 우아한 허위를 깨부수고 투박한 진실을 선택할 용기를 촉구하는 시대를 초월한 지침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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