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망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교육이라는 이름의 합법적 학대

by 박신영

야근을 마치고 밤 10시가 넘어서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집 근처는 학원가로 유명한 동네다. 평일 밤늦게 이곳을 걷는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지하철 문이 열리자 줄줄이 교복 입은 아이들이 타기 시작했다. 모두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나는 일을 늦게 마치고 퇴근하는 길인데 이 아이들은 그제야 집에 가는 것이다.


역 밖은 더 놀라웠다. 편의점 앞, 버스 정류장, 골목 구석구석까지 학생들이 흩어져 있었다. 눈은 풀려 있고,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손엔 문제집, 입에선 한숨. 무슨 재미있는 얘기라도 하나 싶어 귀를 기울이면, 시험 얘기, 수행 얘기, 등급컷 얘기뿐이다. 그리고 어떤 아이들은 근처 24시간 무인카페로 들어가 앉았다. 책가방을 내려놓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자발적이길 바라는 어른들도 있겠지만, 그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 이 나라에서 정말 스스로 원해서 밤 11시에 문제집 푸는 아이가 얼마나 있을까?


자라지 않는 아이들, 무너지는 교육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어갈 때가 되면 학부모들 사이에 가장 큰 고민거리가 생긴다. 바로 '영어 유치원에 보낼까 말까?'이다. 나도 내 첫째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고 있지만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 주변에서 누가 물어보면 보내지 말라고 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자식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부모의 욕심을 채우고 불안을 해소하는 것으로 보인다. 굳이 7세부터 그럴 필요는 없다. 유치원생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기 수많은 여어 단어를 외우고 반복되는 영어 시험을 치러야 하나?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본게임이다. 학교 수업은 뒷전이고 방과 후엔 학원 뺑뺑이를 돈다. 집에 오면 숙제를 하고 시험 대비 공부를 한다. ‘어릴 땐 다양한 걸 경험해야 한다’는 말은 교과서에 남아 있을 뿐이다. 아이들은 경험 대신 경쟁을, 놀이 대신 논술을, 자유 대신 자습을 배운다.


중학교쯤 가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이제는 뭘 좋아하는지보다 뭘 잘 버티는지가 중요하다. ‘취향’은 사치고, ‘재미’는 위험하다. 좋아하면 흔들리기 때문이다. 의욕은 내신과 등급컷 앞에서 증발하고, 사춘기라는 말은 입시에 묻힌다.


그리고 고등학교. 이쯤 되면 많은 아이들은 조용히 포기한다.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방향이 없기 때문이다. 교실은 탈진과 무력감으로 가득하고, ‘수행평가’라는 새로운 괴물은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를 지치게 한다. 형평성도 기준도 없고 결과에 대한 승복도 없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지만, 모두가 어쩔 수 없이 따른다.


얼마 전, 부산에서 여고생 세 명이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그중 한 학생은 수행평가 과제로 잠 못 이루던 밤을 반복하다가 끝내 무너졌다. 또 다른 학교에서는 친구 발표 영상을 몰래 촬영해 공유한 일이 벌어졌다. 수행 점수를 위해 친구가 경쟁자가 되는 현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평가인가?


지금 학교에서 교사는 채점관이 되고, 학부모는 매니저가 되고, 아이는 프로젝트가 되었다. 마감과 완성도를 위해 쉴 틈 없이 굴러가는 ‘인재 양성 시스템’. 그런데 그 결과물은 자존감 낮고, 번아웃된 십대들이다.


스펙은 늘었지만 감정은 마를 대로 말랐다. 우리는 지금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더 오래, 더 많이 앉아 있는 법? 기준 없는 평가에 순응하는 법? 자신을 감추고, 침묵하며, 견디는 법?


아이들은 자라는 중이 아니다. 무너지는 중이다. 미래를 준비하느라, 현재를 잃고 있다. 교육에 정답은 없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지금 이 방향이 틀렸다는 것만큼은 누구나 알고 있다. 문제는 그 누구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득,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이 시스템에서 과연 누가 가장 이득을 보고 있을까? 수행평가 자료집을 파는 출판사, 수백만 원짜리 입시컨설팅 업체, 명문대 합격자 수로 경쟁하는 학원들. 평가표를 디자인하고, 순위를 생산하며, 불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많은 구조들. 그 누구도 대놓고 손해를 보진 않는다. 단지 아이들만 예외다.


누구의 책임이라 단정하지는 않겠다. 다만, 지금의 교육은 너무 많은 사람에게는 기회이고, 정작 아이들에겐 생존 전략일 뿐이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으로 한 가지 상상만 해보자. 만약 지금 이 시스템을 어른들이 하루만 살아본다면 과연 견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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