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말 ChatGPT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을 떠올린다. 그때만 해도 AI가 이렇게 빠르게, 이렇게 광범위하게 우리 일상을 침투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불과 2년여 만에 우리는 AI와 대화하고, AI가 그려준 그림을 감상하며, AI가 작성한 글을 읽는 일상에 익숙해졌다. 이 변화의 속도는 단순히 '빠르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마치 시간 자체가 압축되어 흐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구글이 지난 5월 발표한 VEO 3를 보며 경이로움과 동시에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몇 개의 단어만으로 영화급 영상과 동시에 대화, 효과음까지 포함된 완성작이 탄생한다니. 창작의 마지막 성역마저 AI의 영토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 테슬라의 로보택시는 텍사스 오스틴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운전자 없이 실제로 승객을 태우고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모습이 더 이상 SF 영화 속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레이 커즈와일이 예언한 특이점(Singularity)이 이토록 가까이 다가왔다. 며칠 전 한국어 번역본으로 출간된 그의 최근작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 (The Singularity is Nearer)』를 읽으면서, 미래학자들의 예측이 현실이 되어가는 속도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커즈와일은 2029년까지 AI가 인간 수준의 지능에 도달하고, 2045년에는 인간과 AI가 완전히 융합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기하급수적 성장이라는 개념이 더 이상 이론이 아닌 피부로 느끼는 현실이 되었다.
이런 변화 앞에서 우리는 상반된 감정을 품게 된다. 한편으론 인류가 이룩한 기술적 성취에 감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통제할 수 없는 변화의 급류에 휩쓸리는 듯한 두려움을 느낀다. 특히 부모의 입장에서는 이런 복잡한 감정이 더욱 증폭된다.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과연 어떤 모습일지, 지금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이 그때도 의미를 가질지 확신하기 어렵다.
AI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뛰어넘는 순간이 온다면 교육의 의미도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추구해 온 학습과 성취의 개념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도 있다. 암기와 계산, 심지어 창작까지도 AI가 더 잘할 수 있다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로보택시가 보편화되면 운전면허증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현재 테슬라가 시작한 오스틴 시범 운행은 비록 제한된 지역에서 안전 모니터와 함께 이뤄지고 있지만, "10년간의 노력의 결실"이라는 머스크의 평가처럼 상징적 의미가 크다. 대중교통 체계는 물론 도시 설계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다. 주차장이 사라지고, 교통사고가 현저히 줄어들며, 이동의 개념이 완전히 재정의될 것이다.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사회 구조와 인간의 삶의 방식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혁명적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일의 의미에 관한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의 정체성은 상당 부분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로 정의되어 왔다. 의사, 교사, 엔지니어, 예술가... 이런 직업적 정체성이 AI에 의해 대체되거나 근본적으로 변화한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이미 법률 분야에서는 AI가 판례를 검색하고 법률 문서를 작성하는 일을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고 있다. 의료 진단에서도 AI의 정확도가 숙련된 의사를 앞서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금융 분야의 알고리즘 트레이딩은 이미 인간 트레이더를 압도하고 있다.
창작의 영역도 예외가 아니다. AI가 생성한 시와 소설, 그림과 음악이 인간의 작품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해지고 있다. 실제로 VEO 3로 생성된 영상들은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인간 영화제작자나 배우들이 만든 것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 나아가 어떤 경우에는 인간이 만든 작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창작이라는 행위의 본질적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결과물의 완성도보다는 창작 과정에서 인간이 경험하는 내적 성장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할 시점이다.
이런 변화 앞에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 시점이야말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다시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다. AI가 할 수 없는 것, 혹은 AI가 할 수 있더라도 인간이 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탐구해 볼 때다.
감정과 공감 능력이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말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AI도 점점 더 정교한 감정 표현과 공감적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감정 자체보다는 그 감정이 만들어내는 관계성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관계적 존재다.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고 타인과의 연결을 통해서만 온전한 자아를 형성한다.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런 관계의 진정성이다. 진짜 웃음과 가짜 웃음을 구별하는 능력, 말하지 않은 것까지 읽어내는 직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존재감. 이런 것들은 단순히 기능이나 능력의 문제를 넘어선 존재론적 차원의 영역이다.
내 아이들이 성인이 될 즈음에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그들은 AI와 협업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물리적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환경에서 자라날 것이다. 어쩌면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이 상용화되어 생각만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소통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무엇일까? 지식의 전달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AI가 모든 지식에 즉시 접근할 수 있게 해 줄 테니 말이다. 대신 우리는 아이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관을 형성하고, 진정한 관계를 맺는 능력을 기르도록 도와야 한다. 비판적 사고력도 필수다. AI가 제공하는 정보와 답변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의심하고 검증하며 자신만의 결론을 도출해 내는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에 대한 명확한 정체성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추구해 온 가치들이 흔들리고 있다. 효율성과 생산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겨온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이 AI 시대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AI가 인간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라면, 인간의 가치를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속도와 효율성 대신 느림과 여유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할지도 모른다. AI가 모든 것을 빠르게 처리해 준다면, 인간은 오히려 천천히 사유하고 음미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생산성보다는 의미를, 성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새로운 가치 체계가 필요하다.
창의성의 개념도 달라질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보다는 기존의 것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하고 조합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AI가 제공하는 도구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그 결과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가 인간 고유의 창의성이 될 것이다.
AI가 만든 작품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AI의 판단에 의해 의료 치료가 결정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AI가 인간의 감정을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이를 어떻게 규제해야 하는가? AI 기술의 발전은 이처럼 새로운 윤리적 문제들을 끊임없이 제기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AI의 의식에 관한 문제가 있다. 만약 AI가 진정한 의식을 갖게 된다면, 그들에게도 권리를 부여해야 할 것인지, AI와 인간의 관계가 주인과 도구의 관계에서 동등한 존재들 간의 협력 관계로 발전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아있다.
이런 질문들에 대한 정답은 아직 없다. 하지만 이런 질문들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기술의 발전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고, 그 기술이 인간과 사회에 미칠 영향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두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희망의 근거이기도 하다. 아무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미래라는 것은, 그만큼 많은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단순히 변화에 적응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미래를 능동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주체다.
AI 시대의 인간상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위협이 될 수도 있고, 인간의 잠재력을 극대화시켜 주는 동반자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에 끌려가지 않고 기술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변곡점에 선 지금, 우리는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인간다움의 정의를 다시 써야 하고, 삶의 의미를 새롭게 찾아야 한다. 이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바로 그 과정 자체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다. 결국 AI가 발달할수록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인간 본연의 가치다. 기계가 할 수 없는 것을 찾아내기보다는, 인간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변곡점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