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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배 Dec 21. 2018

여자 선배들이 사라지는 이유

20대의 난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던 것  

곧 그만둬야겠지. 마흔다섯 넘은 여자 선배가 회사에 없어.


20대의 나는 30대의 내가 저런 넋두리를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내게 30대 여자 선배들의 고민은 와 닿지 않는 먼 일이었기에 섣부른 공감이나 위로를 하기보다는 외면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간혹 그들이 20대의 어린 내게까지 털어놓는 고민들의 무게감을 개인의 무능력함으로 쉽사리 치부했다. 그들이 하는 고민들은 앞으로 승승장구할 내겐 결코 일어날 일이 아니라는 오만함이 젊은 날의 내게 있었다.  

여성들이 직장에서 차별을 받는다는 말도 내게는 와닿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그 차별을 겪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여성 직원의 비율이 80%인 사무실 내에 차별은 없어보였다. 오히려 소수의 남자들이 여자들 사이에서 겉도는 일은 종종 있었다. 


그 80%의 여성 99%가 미혼 여성이라는 사실, 그러니 어쩌면 나의 수명도 10년 안팎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할 만큼 나는 사리분별을 제대로 하는 이가 아니었다. 미숙하고, 미숙했기에 철이 없었다. 철없는 나의 시건방짐을 그때는 알 길이 없었다.


나는 2009년에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작은 언론사에서 시작했던 직장생활은 여러 차례 반복된 이직과 함께 어느새 10년 차를 맞았다. 이십 대 중반에서 삼십 대 중반이 되었고, 그 사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런 내게 철없던 시건방짐은 전생의 삶처럼 기억조차 희미하다. 대신 가슴 깊은 곳에 남아있는 울분을 억누르며 하루하루 출근을 하고 있다.



나보다 5살 정도 많은 여자 선배들은 대부분 떠나고 없다. 20%도 채 안 되는 여전히 일을 하는 선배들을 현장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나는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버티기 위해 그들이 겪고 있을 일들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은 하루하루가 고된 전쟁일 것이다. 창창한 20대엔 전부였던 자존심은 이미 내동댕이쳐진 지 오래일 것이니까.  

유독 남성적이었던 전 직장에는 40대의 여자 선배가 딱 셋이 있었다. 한 명은 승진은 포기하고 최대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려는 이였다. 그는 언론사에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받는 인터넷 이슈팀 소속이었다. 제대로 된 취재를 바탕으로 하는 기사가 아닌 실시간 검색어에 맞춰 베껴쓰기를 하는 팀이었다. 직장 내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팀이 애초에 아니었다.


또 다른 한 명은 남성들의 룰에 과감히(?) 자신을 던진 이였다. 남자 선배나 동료를 "오빠!"라 부르며 추켜세워주고 그들의 업무를 백업해주며 수년을 버텼다. '그녀의 오빠들'이 직장에 남아있는 한 그녀 역시 건재할지 모르겠으나, 불쾌한 추문도 늘 그녀를 따라다녔다.


마지막 한 명은 유일한 싱글이었다. 건너 듣는 소리로는 능력이 제법 뛰어나다고 한다. 승진 욕심도 있어 보였다. 꽤 큰 성과를 거둔 해, 그녀는 팀장이 됐다. 그런데 십 년 넘게 몸을 담아 성과를 맛본  부서가 아닌 전혀 뜬금없는 인터넷 이슈팀 팀장으로 발령이 났다. 그녀의 황망함이 내게까지 느껴졌다. 나는 조직이란 이름이 여성을 대하는 치졸함에 치를 떨었다.

 

내 미래가 그들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니 암담했다.


20대의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지금 20대인 후배들에게 그녀들의 현실은 전혀 와 닿지 않을 것이다. 간혹 내가 여자로서 받는 차별을 넋두리하면 후배들 역시 나의 20대처럼 영혼 없는 눈길을 보내곤 한다. 누군가는 "선배가 너무 예민하다"라며 타박을 하기도 했다.


비혼족, 딩크족을 선택했다고 말하는 일부 후배들에게 결혼과 육아는 정말로 남의 일일 밖이다. 그러니 선배들의 이런 넋두리는 저가 좋아 결혼과 육아를 택해놓고 불평이나 하는 아둔함으로 와 닿을지도 모르겠다.


차별에 익숙한 조직의 논리는 단순하다. 단기간·저임금에 노동의 효율을 최대한으로 뽑아내는 것. 꼭 출산이나 육아만이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비효율적인 노동력이 되는 순간, 누구라도 차별을 만나게 된다.


지금 여성들이 겪는 차별이 남의 일만은 아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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