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가 되면 확실히 예민해진다.
예민함은 주변 환경의 변화, 내 신체와 정신에 다가오는 크고 작은 자극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든다.
생명을 품고 있다는 책임감이 예민함으로 발현되는 것 같다.
첫 아이 임신 때는 예민함들이 그저 스치기만 했을 뿐이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낯선 감정인 탓에 깊이 들여다볼 여유는 미처 없었다. 그저 낯선 경험이 주는 낯설지만 당연한 변화려니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둘째 아이를 품은 지금, 내가 느끼는 예민함들을 머릿속에서 차곡히 정리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바로 산전산후 요가 수업이다.
수업에서 선생님은 임산부가 느끼는 통증을 들여다볼 수 있게끔 해주셨고, 나아가 통증의 원인을 파악하고 개선시키는 법까지 이끌어주시고 계신다.
덕분에 (임신 초반 긴장이 풀어진 둘째 임신이란 이유로 인스턴트도 많이 먹었지만) 수업 이후엔 양질의 음식을 찾으려 하게 됐고, 통증의 원인이 되는 부위를 보다 정확히 알게 됐다.
그런데 이런 연습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이 찾아왔다. 어젯밤 불현듯 두통이 찾아왔다. 오른쪽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로 성가신 통증이었다. 그 순간 나는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최근에 꽤 화제가 된 드라마였고 요 며칠 푹 빠져 있었기에 잘 시간을 쪼개어 드라마를 봤던 것이다.
'혹시 두통이 드라마 때문일까'
생각이 거기에 미친 건 마침 내가 본 장면들이 자극적이었기 때문이긴 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도 그 드라마는 소재 자체가 자극적이었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그러했다.
결국 두통을 없애고 잠이 들기 위해 드라마를 끄고 만트라를 들으며 가만히 누워 있었다. 나의 진단이 맞은 것인지, 다행히도 30분 만에 두통이 가셨다.
그러면서 스치는 나의 지난 날들. 나는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을 10년 동안 해왔다.
알다시피 우리나라 드라마나 영화들은 대부분이 자극적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오열을 하는 식이고 카메라는 늘 그들을 당겨 클로즈업한다. 일상처럼 잔잔한 연기들에 능한 배우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주목받지 못하고, 표정을 마구 일그러뜨리고 소리를 지르는 연기들이 열연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카메라의 기법들도, 색감들도, 음악의 사용도, 또 이야기의 전개도 늘 전보다 더 자극적인 것들이 주목받았다.
그런 콘텐츠는 나도 모르게 내 일상이 되었다. 또 연차가 쌓이며 수용자보다 생산자와의 스킨십도 자연스럽게 늘어났고 내가 쓰는 글들도 수용자보다는 생산자 입장을 더욱 대변하게 되기도 했다. 자극적인 것들을 더욱 자극적으로 그리는 것들에 나도 모르게 동의하고 동조하고 대변했던 것이다.
그 일을 그만두고 나서 나는 한동안 드라마도 영화도 멀리했다. 아마 나도 모르게 자극적인 것들에 지쳐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단 한 번도 자각하지 못했던 사실이지만, 산전산후 요가에서 배운 통증을 바라보고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고 개선시키는 방법들이 이렇게도 적용이 되어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자극점을 새롭게 발견하게 됐다.
물론 임산부의 예민함도 한몫을 했을 테고. 미안, 꿀동아. 엄마, 이제 좋은 것만 보려고 노력해볼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