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원피스 입은 날

by 가을장미

오랜만에 외출이었다. 옷장 속 잔잔한 무늬의 낙낙한 원피스를 만지작거렸다. 여름엔 원피스만큼 시원한 옷도 없고 또 특별한 날이기도 했으니까. 모처럼 도서관에서 중견 베스트셀러 작가의 특강이 있었다. 그 작가의 책을 몇 권 읽었기에 실제 만남을 기대하며 원피스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오전임에도 햇살은 따가웠고 양산을 쓴 얼굴과 등으로 땀이 흘렀다.

시간에 맞춰 도착한 동네 도서관에는 예약한 주민들이 속속 들어왔다. 준비하는 사서들의 표정에서도 오래간만에 행사를 주최하는 긴장이 보였다. 난 본인 확인을 하고 안내해주는 자리에 앉았다. 좌석 주변에는 초대 강사의 책과 글쓰기에 관한 다른 책들을 탁자에 예쁘게 배치해놓아 분위기를 살렸고 애쓴 손길이 보였다. 평소엔 카페로 쓰던 장소가 모임 장소로도 어울렸고 앉아있으니 천장의 에어컨 바람이 땀을 식혀주었다.

잠시 뒤 흰 셔츠에 검은색 바지를 입은 중년의 강사가 나타났다. 희끗한 반 곱슬머리에 왼쪽 발은 반 깁스를 한 채로. 성실하게 서서 강의를 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차분한 목소리와 겸손한 표정, 마치 회사 과장님 같았다. 그럼에도 출간하면 몇 만부 씩은 너끈히 팔리는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평범 속에 비범한 그 무엇이 있으리라. 자신의 직장생활 주 업무였던 연설문 원고 쓰는 일로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스토리를 입혀 자신의 길을 찾았으니 부러웠다.

역시 글쓰기에 왕도는 없었다. 일만 시간의 법칙, 작가도 8년 동안 블로그에 쓴 글이 만 개가 된다고 하니 역시 개미였다. 글쓰기에 관한 많은 책을 집필하다가 이번에는 말하기를 연결해서 썼단다. 그러나 말하기와 글쓰기는 상호 교차하는 삶이라고. 듣기부터 잘해야 말하기와 글쓰기로 발전할 수 있다며 듣기의 효용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서 들려주었다. 하지만 듣기는 말하고 쓰기 위한 것으로의 한계가 있다며 자신만의 노하우를 찬찬히 이야기했다.

예전엔 공부 잘하려면 잘 듣고 요약하고 출제 의도를 잘 파악하면 시험성적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만을 위해 절대 공유하지 않는 공부였기에 이기적인 아이들이 시험을 잘 볼 수 있었다는 말이 마치 내게 하는 말 같았다. 그런 우등생들은 사회에서도 기회주의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고. 맞다. 진정한 공부는 친구들과 서로 토론하면서 나눌 때 더 잘 알아갈 수 있다고. 자신도 사회에 나가서는 상사의 비위를 맞추고 인정받기 위해 살았기에 눈치만 늘고 나중엔 우울증이 왔다는 고백도 했다. 사회 생활인의 비애인 것을.

작가는 50대 초반에 암 선고를 받고 그전에는 직장에서 감히 하지 못했던 말 ‘아니요, 못해요’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직장을 찾았단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장 힘든 터널을 지나며 숙고하면서 찾은 것이 바로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글쓰기였다고. 세상을 관찰을 하고 사색을 하면서 자신만의 의견을 갖도록 자문자답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 많이 와닿았다. 나 또한 내 생각이 없이 남에게 맞추는 생활을 하면서 살았기에.

초등학교 2학년 때 작가의 엄마가 돌아가셔 트라우마가 있었던 과거사와 아내 자랑과 자녀들과의 소소한 사례도 흥미를 끌었다. 엄마들의 자녀에 대한 적절한 칭찬의 말은 정말 공감이 되었다. 직장을 다니며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의 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해주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으니까. 언제나 후회는 남는다. 남의 반응에 연연하지 않는 자존감 높은 아이, 문제에 부딪혔을 때도 회복 탄성력이 좋은 아이로 자라도록 하지 못했기에. 나도 초보 엄마여서 무지했다, 미안하다는 말이 면죄부가 되진 않았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내 이름으로 증명하면서 살 수 있다면, 꿈같은 이야기다. 온라인 공간에 자신의 콘텐츠를 만들고 이야기를 써나가는 일, 실패와 실수의 일상 속에서도 그것을 도전하며 극복해나가는 진솔한 이야기는 타인의 공감을 얻을 테니까. 지금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대세가 됐듯이 앞으로는 영상매체 유튜브가 더욱 주류가 될 것이기에 온라인에 자신의 영토를 만들고 이를 준비하라고 했다. 자신에게 재미있고 지금까지 해왔으면 더욱 좋은 나만의 것을 찾아 취미로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유튜버들의 예를 들어 수긍이 간다. 모든 과목을 골고루 평균적으로 잘하는 인재가 아니라 자기만의 장점을 더 갖추어야 한다는 말은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이었지만 직접 작가의 경험을 통한 강연을 들으니 고개가 끄떡여졌다.

읽기만 하던 독자의 입장에서 어느 날, 쓰고 싶다는 마음이 슬며시 들었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책을 읽게 되니 거기서 뭔가를 꺼내 써봐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글쓰기가 2년이 되었다. 이렇게 지속될 줄은 몰랐고 나를 조금씩 변화시킬 줄은 더욱 알지 못했다. 그동안은 생활에 급급하게 사는라 환경에 나를 맞춰 살아갔으니까. 급하게 다가온 일들만 해결하면서. 그랬기에 공허감이 크고 허전했다. 앞으로 나도 온라인 공간에 내 영토를 마련하고 소통의 통로를 만들고 싶다. 많은 것이 급변하는 시대에 생존의 방법이기도 할 것이기에.

휴식시간도 없이 진행된 특강은 좀 힘들긴 했지만 온라인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얼마 만에 맞보는 만남의 기회였던가. 이제 앞서가는 많은 인생 선배들이 있음을 안다. 벤치마킹할 좋아하는 작가를 찾고 그 책을 열 번 이상 읽고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글을 섭렵해야 한다는 조언을 마음에 새겼다. 멘토들을 따라 한 걸음씩 걸어간다. 가다 보면 아니 따라가는 자체 만으로도 즐거운 일이 아닌가. 어린아이와 같은 경외감으로 세상과 사람을 대할 수만 있다면, 마음밭을 고르는 일이 가장 기본이면서도 중요한 일이리라. 작가의 말을 노트에 담아 집으로 향했다. 모처럼 차려입은 원피스를 바람에 휘날리면서.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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