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로 가는 길, 2차선 도로 양 옆에 벚꽃들은 거의 져가고 있었다. 봄 나들이를 계획했던 나는 갑자기 일어난 사건으로 이별 여행을 하게 되었다. 남편과 승용차 뒷자리에 앉아 떨어지는 꽃잎을 보며 말없이... 운전기사가 몰아주는 차는 안락하고 조용했다. 장의차였다.
박세리가 LPGA에서 우승하고 찍은 사진 중에 애완견 비글이 있었단다. 그 후 우리나라에서 비글의 인기가 치솟았다고 하는데 실은 키우기 힘든 넘버 3 안에 드는 개였다. 나중에 많은 수가 유기견이 되었다고도 했다. 허나 우주선에 처음으로 실어 보낸 실험용 개도, 사랑받는 만화영화 스누피의 모델 또한 이 종(種)이었다고. 바로 비글, 이 녀석이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개를 키울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큰 조카가 못 키우게 된 강아지를 얼떨결에 떠맡게 되었다. 흰 바탕에 머리는 윤이 나는 갈색이고 축 늘어진 큰 귀에 등부터는 검은색과 갈색이 겹쳐지며 몇 개의 얼룩무늬가 있었다. 5개월 정도 된 강아지가 큰 집 장식용 다듬이돌에 묶여 있는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큰 아주버님은 “제수씨, 이 개 이름이 뭔 줄 아십니까 “ 모른다고 하니 성이 ‘고’씨라고 하셨다. 이름은...‘갱’. 잠시 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인상파 화가 고갱이 화낼 것만 같았으니까. 남편 집안의 개 이름은 항상 고갱이었다고, 큰 아주버님이 미술교사였기에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화가 이름을 붙였단다. 어릴 적 친정에서 키웠던 우리 집 똥개의 이름은 촌스러운 누렁이였는데. 어느 무더운 날 개는 사라지고 반짝이는 스텐 대야만 남았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그 녀석을 데리고 집에 왔고 그날부터 전쟁이 시작되었다. 준비 없이 맞이한 개와의 동거, 똑똑해서 대소변은 잘 가리긴 했지만 이가 나기 시작하니 집안 가구들은 성한 곳이 없었고 합선의 우려 때문에 전선도 숨겨야 했다. 밥을 먹을 땐 식탁에 뛰어오르려 해서 가리고 먹느라 피난민 같았고, 솜이불을 깨끗이 씻어 침대에 놓으면 언제 올라갔는지 오줌을 싸 영역표시를 했고, 집은 성한 곳이 없는 전쟁터였다. 특히 혼자 두고 외출할 때면 우렁찬 개소리가 아파트 우리 동을 울렸다. 다행히 좋은 이웃들을 만나 시끄럽다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기적이었을 뿐. 가끔 예방접종이나 심장사상충 약을 구입하러 동물병원을 방문하면 수의사는 어떻게 이런 개를 아파트에서 키우냐며 대단하다고 웃으며 말하곤 했다. 처음엔 그 말이 칭찬인 줄 알았지만 차차 주인과 개에 대한 안쓰러움이 담겨있는 말임을 느꼈다.
점차 정이 들어갔지만 버거웠고 식구들은 잠시 귀여워할 뿐 뒤치다꺼리는 다 내 차지였다. 사냥개를 좁은 집에서 키운다는 것은 서로에게 힘들었다. 몸집은 점점 커지고 활동량이 많은 개라 산책도 쉽지 않았지만 한 번 우리 가족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러나 가끔 내가 칠순이 되어도 같이 살 아야 할 것만 같아 걱정이었다. 지금도 너무 건강하고 힘이 좋은데 나중엔 할머니가 된 내가 끌려다닐 모습을 상상하면 아찔했으니.
그러나 산책길에서 갱이는 멋쟁이였다. 날씬한 몸매에 날렵한 걸음걸이 목줄을 잡고 걸을 때면 산길이나 으슥한 곳도 무섭지 않았다. 아파트 뒤의 한적한 산책로를 같이 돌곤 했다. 겨울에는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달렸고 여름의 더위 속에서도 헉헉거리며 다녔다. 첫 나들이때 개나리꽃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속 갱이를 보고 개를 키워 본 지인은 너무 잘 생겼다고 했다. 듣고 보니 모델을 해도 될 만큼 외모가 뛰어나게 보였다. 난 의무감에만 급급해 갱이를 제대로 보지도 못했으니. 마치 우리 아이들 키울 때처럼. 짖어대는 소리가 커 입마개를 하고 다녀야 했지만 수 년을 같이 생활하면서 정이 쌓여갔고 진짜 우리 가족이 되었다. 그러나 거실 바닥은 갱이의 단모가 수북하니 쌓여 엉망이었고 나는 갱이에게 물려 발톱이 부러진 적도 있었다. 물론 나를 물려고 한 것은 아니었고 우리 집에 낯선 사람이 오니 밥값 하느라 흥분해서 물게 된 것이었다. 발을 붕대로 감고 일주일 넘게 일하러 다니느라 힘들었었지. 그런 날 보고 동료들은 갱이에게 된장 바르라는 무서운 말을 했다. 예전에는 사람을 문 개는 죽였다고 하면서.
우리 집에 온 지 7년째 되는 봄날이었다. 집 근처 화원에 들려 화초에 줄 영양제를 샀다. 겨우내 실내에 두었던 화분들도 베란다로 옮겼기에 봄을 맞아 양분이 필요할 듯해서였다. 오자마자 봉투를 뜯어서 제라늄과 벤자민, 고무나무 등 부실해 보이는 화분에 봉숭아 씨 크기의 동그란 영양제를 조심스레 뿌렸다. 그때 언제 왔는지 고갱이 혀를 내밀어 맛을 보는 것이었다. 한 번 더 반복하더니 맛이 없는지 뱉어 버리기에 식성이 좋아 아무거나 먹어 탈이라 웃어넘겼다. 그렇게 화분에 영양제까지 주고 나니 봄맞이 집안 정리가 다 된 듯해 뿌듯했다.
다음날 월요일 아침이었다. 출근을 서두르는데 갱이가 토를 해놓았다. 조금 이상했지만 바삐 집을 나섰고 퇴근해 보니 힘이 없고 계속 여기저기 토하는 것이 아닌가. 병원은 문을 닫았을 시간이고 피곤한 나는 진찰을 내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싱크대에서 바쁘게 아침식사를 준비할 때였다. 거실 창문 쪽에 앉아 있던 갱이가 일어나 내게로 걸어오더니 소파 사이의 공간으로 들어가며 쓰러졌다. 심상치 않았다. 자는 남편을 깨워 차 시동을 부탁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수 없었던 나는 15킬로그램의 개를 안고 7층 계단을 마구 뛰어내려 갔다. 몸이 축 늘어지고 혀가 나왔다. 갱이의 따뜻한 몸을 안고 조금만 참으라면서. 몸을 뻗치며 괴로워하는 모습에 어찌할 바를 몰라 부여 안고 동물병원에 도착하니 수의사가 맞아주었다. 이유를 모르겠단 말에 독극물로 간이 많이 상했단다. 내가 식물에게 영양제라고 준 것이 개에게는 치명적인 독약이 될 줄이야. 너무나 무지한 주인이었다. 사람들은 원래 식물과 개는 같이 키우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게 갱이는 갑자기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아침에 눈 뜨면 내가 깬 것을 알고 방문 틈으로 콧바람을 집어넣으며 어서 나오라던 녀석, 딸과는 서로 입바람 불며 놀아주었고 한 공간에서 같이 부대끼던 녀석이. 현관에는 며칠 전 사놓은 갱이의 몸보다 큰 사료포대가 거의 못 먹고 그대로 놓여있었다. 배달이 오자 본능적으로 자기 밥인 줄 알고 앞에 앉아 우리가 못 오게 으르렁댔었다. 비만을 걱정해 적정량을 먹인다며 맘껏 밥 한 번 준 적이 없었기에 항상 배고팠을 갱이 생각에 마음이 아렸다.
수의사에게 소개받은 김포 개 전용 화장장. 그곳에는 먼저 온 한 중년 여자가 울고 있었다. 애견과의 이별에 슬픔을 토해내듯이. 남편과 나도 7년을 같이 한 갱이를 애도하며 장례를 치렀다. 갱이도 가는 날을 준비한 듯 마침 내가 쉬는 근로자의 날이었다. 그곳에는 개와의 추억을 담은 사진과 편지들로 꾸며진 많은 납골당이 있었다. 연간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나는 개는 동물일 뿐 사람 이상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인간이었다. 이 정도 추도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화장을 마친 뒤 유골함에 담아 시어머님이 계시는 축령산 근처 요양병원 나무 밑에 뿌려주었다. 이제는 목줄 없이 신나게 뛰어다니라면서.
갱이가 떠나기 며칠 전 딸은 개와 방에서 사진을 찍어달라 했다. 무엇을 예상한 듯이. 둘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꼭 껴안은 모습을 몇 장 찍었다. 딸은 웃고 있었고 갱이도 앞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한 곳을 응시하는 그 눈빛엔 기쁨은 없어 보였다. 그것이 마지막 사진이 될 줄이야. 딸의 검은색 옷이 상복으로 느껴졌다. 개가 너무 오래 살까 봐 했던 나의 걱정이 갱이에게 들렸나 죄책감이 들었다. 주인의 무지와 실수로 한창인 나이에 보냈기에 처음 일주일은 힘들었다. 그 허전함은 개를 키워본 사람만이 알 심정이다.
갱이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갈 곳 없는 개를 내가 맡아 좋은 일 해준다는 생색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사료비와 병원비가 아까운 생각도 들었고 한 생명을 돌보는 것은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고 책임감이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키울수록 존재만으로도 기쁨을 준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갱이는 자신과 함께 하는 가족들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었다. 직장과 일상생활에서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신비한 힘까지도. 모든 것을 주인에게 의존하는 약한 존재가 말이다. 그 무능한 존재가 자신의 밥을 챙겨주고 대소변을 치워주고 자신의 감정을 알아주고 보살펴주는 우리 가족에게 자신도 모르게 남을 배려하는 것을 배우게 하고 정서가 풍부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니.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우리 가족에게 좋은 선물을 주었다. 동물은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 생명이 얼마나 연약하고 또 소중한지도 조금씩 느껴가며. 사람의 친구인 개와 같이 살아가고, 또 살아가야만 하는 동물에 대한 이해의 폭도 조금은 넓혀주었으니.
갱이는 나에게 무엇을 알려 주고 갔을까? 동물에게는 기대가 없기에 실망도 없었으나 남편과 자식은 내 높은 기대와 욕심으로 사육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잘한 것은 당연한 것이고 못 한 것만 잔소리하며 그들의 목줄을 잡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했다는 것을 깨닫는 아픔도 주었다. 말로 하지는 않지만 온 몸과 눈빛으로 채근하는 나의 보폭에 맞추느라 가족이 힘들었으리라, 특히 남편이. 그리고 어찌할 수 없는 외로움, 그것은 삶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리라. 가족 간에 보듬어 주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야말로 동물에게 의존하고 회피한 것은 아니었는지. 산책길에서 많은 이들이 반려견을 데리고 다니는 것을 본다. 나처럼 외로움이 보인다. 갱이도 갇힌 공간에서 주인이 돌아올 때를 기다리며 그 또한 외로웠으리라. 말썽꾸러기 사냥개로 태어난 것은 죄가 아니고 내가 선택을 잘못해서 서로 힘들었던 것이었다. 넓은 마당의 집주인을 찾아주었으면 좋았으련만 못 한 것이 미안하다.
만약 다시 개를 키우게 된다면 우리 집에 맞는 작고 수더분한 유기견을 맞이하고 싶다. 버려진 개를 입양해 한 생명이라도 구하고 싶고, 그것이 갱이에게 갚아야 하는 빚 이리라. 개로 인한 아픔은 또 개가 치유할 것을 알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