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에 온 지 거의 삼십 년이 되어간다. 이제 여기가 나의 고향 같고 터줏대감이 되었다. 그동안 내 주변의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안방에 떡하니 자리 잡고 거드름을 피우던 장롱도 이십여 년이 되니 사라지고 대신 아주머니의 친정엄마가 남긴 열 자 원목 장롱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주방에서 식구들의 사랑을 받던 아담한 냉장고도 십여 년이 지나자 성에가 끼고 덜커덕 소리가 커지더니 어느 날인가 멈췄다. 그러자 며칠 뒤 문짝이 두 개나 되는 덩치 큰 녀석이 들어왔다. 다용도실의 세탁기도 벌써 세 번째 바뀌었지만 난 아직도 독야청청하다. 이 가족의 역사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나는 피아노로소이다.
몇 년 전 아주머니네가 이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처음엔 나를 거실 창 쪽에 두었다가 햇빛을 가려 집안이 어둡다고 현관 쪽으로 옮겨졌는데 지금은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애물단지다. 나와 긴 세월을 함께 했던 언니도 이젠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예전에는 아파트 단지에서 아이들의 ‘딩동댕’ 거리는 소리가 자주 들렸었는데, 요즘은 층간소음도 신경 쓰이고 퇴근 후나 주말에 치기엔 부담스럽단다. 언니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난 십여 년 정도 이 집에서 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잊힌 존재다. 집에는 늙고 순한 개의 뒤척임뿐 정적이 흐른다. 가끔 택배 아저씨의 발자국에 암팡지게 짖어대는 개소리만 들릴 뿐.
처음 왔을 때 이 가족은 나를 귀하게 맞이했다. 대단한 환대였다. 단단한 원목에 윤기가 흐르는 멋진 나를 보는 소녀의 환한 웃음에 나는 자부심을 느꼈다. 점차 커가는 소녀와 함께 초등학교 내내 그녀의 손가락이 두드리는 대로 바이엘과 소나티네에서 체르니와 명곡집 으로 옮겨가며 우리는 음악의 풍성한 세계를 드나들었다. 그때 소녀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했고 우리의 데이트는 길었다. 딸이 반주가 가능해지자 아주머니는 나의 리듬에 맞춰 온 가족이 합창을 하곤 했다. 노랫소리를 담은 카세트테이프가 몇 개씩 쌓여갔다. 단란한 가정의 꿈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무엇보다 내가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때가 내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특별한 순간이었으니까.
아주머니는 딸에게 어떻게 피아노 레슨을 시키게 됐는지 말하곤 했다. 몇 번이나 들어서 이젠 새로울 것도 없지만 처음 들을 땐 나도 귀를 쫑긋 세웠다. 내가 이 집에 오게 된 이유이기도 했으니까. 그 이야기를 회상할 때면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밝은 햇살이 나타나는 듯했다. 주인아저씨가 상의도 없이 연희동에 사무실을 내는 바람에 그 근처 반지하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아는 이가 없었단다. 유치원생인 딸에게 매일 클래식 피아노 테이프를 틀어주며 같이 듣던 어느 날, 장난감 피아노를 가지고 오디오 앞에서 뚱땅거리던 딸아이가 모차르트의 멜로디를 그대로 흉내 내어 치고 있었단다. 그래서 절대음감을 가진 신동이 태어났다며 급하게 피아노 교습소를 찾아 등록시켰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내가 와서 몇 년이 지나자 IMF 경제위기가 찾아왔다. 아저씨는 사무실을 닫고 집안 분위기는 장조에서 단조로 급격하게 조바꿈을 하면서 침울하게 바뀌었다. 아주머니는 심각한 표정으로 신문을 보더니 어느 날부터 집을 나가 저녁이 늦어서야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을 하게 되었단다. 가족들의 표정은 침울하고 냉랭하게 얼어붙었다. 모든 사랑은 끝이 있듯이 소녀가 중학생이 되면서 나와도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해서 나는 외로움을 알게 되었다. 행복했던 날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아주머니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가정은 평화를 되찾은 듯했다. 아침부터 그녀는 내 위에 있던 먼지 묻은 덮개를 벗기고 마른걸레질을 해주고 지저분한 거실을 정리하느라 바쁘다. 잠시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뚜껑을 열어서 건반을 살펴보며 눌러보더니 닫았다. 그리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출근하던 언니도 섭섭해했다. 실은 며칠 전 아주머니의 통화를 들었다. 오늘 나는 이별을 해야 한다. 여기서 멀지 않은 집에서 나를 필요로 한단다. 그 집도 아마 꼬마 아이가 있는 듯하니 가서 즐겁게 소리 내면서 살라했다. 나도 마음이 좀 이상했다.
이들 가족과 오랫동안 함께 한 터줏대감인 내가 이별을 앞두고 감히 한마디 되뇌어 본다. 인생의 태풍 속에서 아주머니의 소프라노 소리는 너무 강했고 아저씨의 바리톤 소리는 너무 짧고 약했다는 점이 문제가 아닐까. 두 사람이 갑자기 조를 바꾸지 말고 계속 변주되는 같은 멜로디를 아주머니가 조금만 줄였더라면 어땠을지. 그랬더라면 불협화음이 조금은 줄지 않을까. 마음을 닫고 소리를 내지 않는 것보다는 힘들어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각자의 음을 찾아갔더라면. 아이들의 소리도 함께 들어가면서 합창을 했다면 조금은 더 빨리 멋진 화음을 내는 가정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부디 내가 없어도 다시 예전처럼 화목한 가족 합창을 하시라고 ……
드디어 약속시간이 왔다. 초인종 소리가 나기도 전에 개가 짖었고 낯선 두 남자가 오더니 나를 번쩍 들었다. 두려웠다. 그들은 굵은 목소리로 잘 전달해드린다면서 트럭에 나를 실었다. 밖에는 장미가 피기 시작한 봄 햇살이 찬란했다. 고향과 같은 이 집에서 십여 년은 내 역할도 못하면서 군식구였기에 이별의 슬픈 마음도 잠시 다시 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떤 가족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까. 날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니. 또 다른 소녀의 미소를 기대하면서 흔들리는 트럭에 몸을 싣고 오월 속을 달린다.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