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길 위에서

by 가을장미

드디어 조명이 꺼졌다. 드넓은 하늘 아래 멀리 바위산들이 보이는 황량한 길 위를 흰색 낡은 밴이 달리고 있었다. 짧은 머리에 화장기 없는 여인의 움푹 들어간 큰 눈은 알 수 없는 많은 사연이 담긴 듯했고 입가엔 주름이 드러나 보였다. 황혼을 바라보는 나이의 그녀는 대체 혼자서 어디를 향해가고 있는 것일까. 아카데미 3관왕의 타이틀을 거머쥔 ‘노매드 랜드’의 첫 장면을 응시하며 스크린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영화는 편치 않은 묵직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십여 년 전 미국에 닥친 경제 위기 앞에서 개인은 무력했다. 그녀가 살던 도시의 공장들이 문을 닫자 주민들도 일거리를 찾아 떠나버려 한 평생 모은 돈에 융자를 받아 얻는 집과 그 도시는 폐허가 되어버린다. 더구나 남편조차 병으로 죽자 그녀는 아이도 없었기에 철저히 혼자 남겨진다. 집과 남편도 없는 생각하기도 무서운 가장 힘들고 외로운 상태가 된다. 이때부터 차에다 생존에 필요한 몇 가지만 가지고 일거리를 찾아 헤맨다. 아마존의 포장 일과 단기 알바를 전전하면서.

그러면서 같은 처지의 유랑민들을 만나 그들의 아픈 사연들을 듣게 되고 관계를 맺지만 또다시 이별이 찾아오고 그녀는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면서 용기 있게 살아나간다. 한 평생 열심히 일했지만 안정적인 모든 것이 사라진 이후에 고난 앞에서 좌절하지 않는 강인한 인간의 모습이 자연의 여러 풍광들과 함께 잔잔하게 펼쳐진다. 삶의 기반이 사라지는 두려움을 마주하는 영화라 마음이 힘들었지만 개인과 사회에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할지 질문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영화가 아닐까.

노동력에서 기술로 지금은 자본으로 사람들은 부를 쌓고 있다. 그러나 인간사회는 약육강식인 동물의 세계와 다르기를 바란다. 개인의 잘못도 있지만 개인만의 책임으로 돌일 수 없는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 있기 때문임을 알기에. 인생은 연약해 부서지기 쉽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닥칠 수 있는 어려움이 있을을 알아간다.

우리 가정도 이십여 년 전 국가적인 경제위기를 맞아 남편의 사무실이 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런 아픔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욱 이 영화의 주인공에게 공감이 되었나보다. 생계를 위해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이들을 두고 가정에서 밖으로 나가야만 했었다. 사회의 냉정함을 몸소 체험하면서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거리가 있음에 감사했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은 점차 피폐해졌고 가정은 웃음을 잃어갔다. 남편만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지만 많은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돌아보면 그런 어려움을 통해 나도 세상을 배우고 좀 더 강한 사람이 되지 않았나 싶지만.

영화의 중반부 이후에 그녀의 낡은 밴이 고장이 난다. 고치기에는 돈도 너무 들고 낡았기에 큰 돈이 필요해 언니를 찾아간다. 거기서 그녀는 안정적인 가정에서 같이 살자는 언니의 말도, 노매드 행렬에서 만나 호감을 느꼈던 남자가 함께 살자던 제안도 뿌리치고 다시 낡은 밴을 이끌고 길 위로 나선다.

아직 해결되지 못했던 그녀의 깊은 상처. 고아였던 남편과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던 자신이 살던 도시를 찾아가 눈물을 보이는 장면에서 그녀는 깊은 아픔의 근원을 직시한다. ”기억되는 한 죽은 것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그녀의 가슴속에 남편은 죽은 것이 아니고 그녀도 삶이 끝나면 남편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기에. 그녀는 이제 그 상처를 넘어선다. 언젠가는 모든 것과 그녀 자신도 사라질 것이다. 그것이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자연의 이치니까. 갑자기 다가온 이런 시련 앞에서 이제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삶을 향해 또다시 길을 떠나는 그녀의 고독한 모습이 뭉클했다.

며칠 전 비가 개인 후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촉촉한 나뭇가지와 꽃들을 보느라 유독 천천히 발걸음을 옮길 때 누런 길고양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야옹’ 소리를 내며 겁 없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 암고양이가 무서웠다. 네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라고 말을 하자 지나가던 아주머니는 고양이가 배가 고파 먹을 것을 달라는 거란다. 그 순간 ‘노매드 랜드’의 한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철저히 혼자 있는 고양이 모습이 주인공 ‘펀’의 모습과 겹쳤으니까.

그러면서 언젠가 신문에서 읽은 내용이 떠올랐다. 앞으로 기후 변화가 지속되면 살아남을 생명체는 공룡시대 때부터 있었다는 바퀴벌레도 아니란다. 지금 그들은 안락한 아파트에 적응해서 탈락할 것이고, 개들도 집안의 사람들 손길에 익숙해져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다. 길고양이들이야말로 야생에 적응해서 살고 있기에 앞으로 힘든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유일한 동물이란 기사였다. 그 말을 위로 삼으며 그 고양이 곁을 떠났다.

요즘 내가 하고 있는 글쓰기를 생각해본다. 이 과정이 어쩌면 철저히 혼자 있는 것을 연습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고독한 가운데 내 인생을 마주하는 시간, 과거를 반추하고 미래를 그려보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니까. 생의 근원적인 물음이 가득한 책들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게 삶의 의미를 묻고 답하고 있으니까. 글쓰기는 나의 민낯을 자꾸 보면서 내면을 단단하게 다져가는 과정이 아닐는지.

어떤 삶도 정답은 없으리라. 똑같은 삶은 하나도 없기에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강하게 여겨진다. 이젠 점차 혼자만의 시간에도 익숙해져 간다. 인생은 노매드와 같이 어쩌면 유랑의 길이기에 그 노정을 담는 나의 글쓰기의 길 위에서 오늘도 잠시 생각에 잠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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