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시장통에 있는 동네의원이었다. 몇 주전 내가 백신 접종 예약을 위해 주민센터를 방문했을 때 직원은 이곳을 지정해 주었다. 이층에 보이는 병원 이름을 확인하고 낡은 계단을 올라갔다. 예약 시간에 맞춰 도착한 그곳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고 대부분 나이가 지긋했다. 연령 제한이 있었으니까. 간호사 옆에서 접수를 돕던 젊은 직원이 내게 서류를 가져와 문진하고 신분증을 확인했다. 확인 사인을 마친 후 혼잡한 자리를 피해 구석에 앉아 잠시 대기했다. 대기시간은 좀 길어졌고 두리번거리던 내 눈에 진료실 문 옆에 걸린 긴 액자가 들어왔다.
액자 속 데생은 고대 서양 남자의 얼굴이었다. 유심히 쳐다보다가 밑에 쓰여있는 긴 글을 읽기 시작했다. ‘이제 의업에 종사하는 일원으로서 인정받는 이 순간,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 하노라. 나는 은사에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노라. 나는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그림의 주인공은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의사인 히포크라테스였다. 지금도 세계 각국의 의과대학 졸업생들이 의사의 본분을 다짐하며 낭독한다는 바로 이 ‘히포크라테스 선서’, 의료의 윤리적 지침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것은 오늘날 상황에 맞도록 수정한 제네바 선언이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읽기는 처음이었다. 의사란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으로 오랜 공부와 고된 훈련의 과정을 마쳐야 한다. 본인의 적성에 맞지 않고 소명의식이 없다면 너무나 힘든 직업이 아닐까. 그래서 이 같은 엄숙한 선서가 필요하리라. 나는 둘째 아주버님이 생각났다. 그는 들어가기 어렵다는 의대에 갔지만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공부를 다 마치지 못했다. 본인이 좋아하는 문학으로 길을 돌렸으니 시부모님의 가슴엔 멍이 들었고 자신도 죄책감과 자괴감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 직업이었지만 남들의 인정만으로 택할 수 있는 직업은 진정 아니겠다.
지인들은 이미 백신을 맞기 시작했다. 약간의 부작용 논란이 있는 AZ백신이었지만 유월이 되면서 K방역의 한계를 느낀 사람들은 너도 나도 팔을 걷었다. 남편은 좀 더 안전한 백신이 공급되면 그때 맞아도 된다는 신중론자였기에 결국 의견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고 난 기어이 혼자서 병원에 왔다. 그동안 밥도 신경 써서 잘 먹고 몸을 챙겼다. 백신 접종 뒤에도 후유증 없이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아내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주변에서는 백신 접종에 앞서 유서를 쓴 사람도 있단다. 만약을 대비해 진중한 행동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그렇게 사려 깊은 사람은 못되었다. 가끔 해외여행을 떠날 때면 밀린 집 청소도 하고 두려움에 기도를 하긴 했지만 남들도 별 이상이 없으니 자신도 괜찮으리라 낙관하면서.
잠시 뒤 간호사는 내 이름을 불렀다. 진료실에 들어서니 여의사가 웃으며 맞아주었다. 차분한 목소리로 몸상태를 다시 물어보고는 소독솜으로 왼팔을 닦은 후 주사를 놓았다. 따끔했다. 의사의 밝은 목소리와 표정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30분 대기한 후에야 갈 수 있었기에 다시 한번 히포크라테스 선서 앞에서 내용을 또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딸의 나이팅게일 선서를 떠올렸다. 간호사로 십여 년 근무 중인 딸은 백신 접종을 훨씬 전에 했다. 병원에 있으니 우선 대상이 되었으니까. 동료 친구들도 다 맞고 이상이 없다며 아빠의 반대에도 두 번의 접종을 마쳤다. 젊은 여성은 출산도 해야 하니 아직 확인된 부작용이 많을 수 있다며 절대 맞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딸은 아빠의 충고를 가볍게 무시했다. 모전여전. 아빠에게는 비밀로 했지만 앞으로 해외여행도 갈 수 있겠다며 웃음 짓는 철부지였다.
백신을 맞고 와서 당분간은 무리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접종 후에도 근무할 수밖에 없었던 딸을 생각하면 너무 몸을 사리는 건 아닌가 미안했지만. 코로나19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공포 속에서 그리고 이 년 동안 지속되는 감염의 위험에도 병원 의사들과 의료진들은 꿋꿋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새삼 존경의 마음이 들었다. 그 직업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들의 선서는 여전히 유효했으니까.
접종 후 하루는 감각이 예민해지면서 여기저기가 간지러웠고 누워있어도 쉬이 잠은 오지 않았다. 선서란 단어가 계속 맴돌았다. 그러면서 나의 결혼서약이 생각났다. 그땐 어떤 마음가짐으로 주례 선생님과 증인들 앞에서 결혼서약을 했는지 또 그 서약에 걸맞게 충실한 배우자로 생활했는지를 돌아보니 부끄러웠다. 뒤이어 첫딸이 태어났고 시험도 없이 무조건 주어지는 엄마라는 이름을 얻었다. 부모 시험이 있었다면 내가 과연 통과할 수 있었을까.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알지 못하면서 그저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고 남들의 인정받는 아이가 되도록 키우길 원했을 뿐. 무릇 엄마란 보이지 않는 섬세한 사랑의 수고가 있어야 했지만 내게 모성은 책에서처럼 저절로 우러나는 것이 아니었다.
백신 접종을 하면서 마주한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그동안 아내와 엄마로서 느슨해진 나의 마음을 돌아보며 다시금 다잡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