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승부>를 보고 쓴 리뷰수필
집을 나섰다. 조조영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자리를 확인하고 앉았으나 광고가 시작되어도 우리 일행밖에는 더 이상 들어오는 관객이 없었다. 너무 한산해 극장운영이 걱정될 정도였지만, 상영관 전체를 대관한 듯 조용해 나쁘지 않았다. 커다란 화면과 입체적인 사운드 그리고 연신 입안으로 들어가는 팝콘의 고소한 냄새가 모처럼 극장의 분위기를 실감케 했다. 영화는 1990년대 초 사제지간인 조훈현과 이창호를 주인공으로 하는 바둑영화 <승부>였다. 내 뇌리에 남아있는 바둑이란 십여 년 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이었다. 1대 4로 알파고의 일방적인 승리였기에 그 후 내게 바둑은 이제 한물간 놀이로 여겨졌다. 하지만 번거롭게 극장을 찾는 선택의 승부수를 던졌다. 두 주연배우의 연기력과 작품의 호평 때문이기도 했고, 바둑이란 너무도 정적인 게임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도 궁금했다. 게다가 아버지와 남동생들이 바둑을 두던 모습이 떠올라 내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기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드디어 객석의 불이 꺼졌다.
먼저 자막이 나왔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상상력을 더한 허구라고. 줄거리는 단순했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세계 바둑대회에서 조훈현은 바둑계를 재패하던 중국을 물리치고 금의환향한다. 국위선양을 한 국민영웅으로 환영행사인 카퍼레이드를 받으면서. 그 후 바둑계에서는 그를 물리칠 상대가 없다. 그러다가 바둑신동이란 소리를 듣는 어린 이창호의 소문을 듣고 찾아간다. 결국 자신이 낸 사활을 풀게 되자 제자로 그를 집에 받아들인다. 내제자로 숙식을 함께 하면서 스승은 바둑의 정석부터 가르치지만 스승과 제자는 스타일이 다르고 달랐다. 제비라는 별명처럼 저돌적인 공격형의 조훈현과 후에 꼬마부처라 불리던 이창호는 신중하게 집을 지키는 수비형의 제자였으니. 제자는 천재성에 성실까지 더해져 끊임없이 대국을 복기한다. 마침내 너무 빨리 찾아온 제자와의 결승 대국에서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스승 조훈현은 반집차이로 지고 만다. 영화는 프로기사인 조훈현이 이 한계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통과해 가는지 초점을 맞춘다.
최정상에서 그것도 자신이 키운 제자에게 져서 충격에 빠진 스승은 축하의 말도 제대로 못 하고 허둥지둥 계단을 내려간다. 제자는 부끄럽게 이겨 죄송하다고 말한다. 수비위주의 바둑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창호는 화려하진 않아도 절대 지지 않는 바둑을 두려 했고 그것은 집 짓기로 결정되는 것이었다. 반집의 의미. 이것은 언제든 승패가 바뀔 수 있는, 실력의 차이가 거의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의 승자와 패자는 극명했다. 황망히 자리를 뜨는 조훈현 프로의 그 뒷모습과 너무 빨리 제자를 키웠다는 후회와 이어진 방황의 시간들. 스승을 이긴 제자 또한 기뻐할 수 없었다. 자신을 키워준 스승을 잡아먹었다는 주위의 모진 말에 편치 않았으니. 그들의 관계는 더 이상 한 집에서 살기가 어려울 만큼 악화된다. 영화는 두 주연배우의 고독과 침묵의 진중한 긴장감이 중심 서사를 이끌고 갔다면 조연들의 감초연기와 유머로 분위기는 밝았다. 모든 대사가 더하고 뺄 것이 없을 만큼 적당했다.
조훈현 9단도 일본인 스승의 내제자로 바둑을 배웠다. 그가 스승에게 받은 바둑판에는 “답은 없지만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게 바둑”이란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바둑과 인생은 정말 닮았다. 정답은 없다. 자신만의 길을 찾고 집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프로기사 9단 최고 영예를 가진 자신도 언제든 질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인정하며 조훈현은 자신의 오만을 깨닫는다. 마침내 다시 밑바닥부터 토너먼트를 거쳐 결승에서 또 제자와의 대결하게 된다. 5시간을 넘긴 대국 끝에 서로의 수를 읽으며 한 치의 양보 없는 승부를 향한 장고의 시간들, 그 세계는 정말 냉혹했다. 승부 앞에서 스승과 제자는 평등했고 인생과 명예를 건 침묵의 전쟁 같았다. 하지만 아름다웠다. 누가 더 멀리 내다보는지 치열하고 정직한 두뇌와 인내의 싸움이었으니까. 내게도 초읽기의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드디어 제자를 뛰어넘으며, 스승의 역할이란 이렇게 좌절을 다시 딛고 일어서야 한다고 제자에게 가르쳐 주는 듯했다.
영화 속 두 배우의 모습과 연기는 실제 인물들과 너무나 비슷했다. 헤어스타일, 얼굴 표정과 그들의 대국 시 습관 등 재현에 충실했다. 첫 부분에서 몇 갑의 담배를 갖다 놓고 줄 담배를 피우는 조훈현 기사의 모습도 삭제하거나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않았다. 아마도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영화 심의에서도 허용할 수밖에 없었을 고충이 느껴졌다. 게다가 단순할 수 있는 대국 모습과 바둑판의 화면을 여러 각도로 클로즈업해 뛰어난 영상미에 빨려 들게 했다. 가로세로 19줄씩 361칸에 흑백의 바둑돌을 차례로 놓아가며 누가 더 많은 집을 짓는가로 승부를 가리는 바둑. 돌부처같이 오래 동안 앉아서 바둑돌 하나에 인생을 걸 듯 치열하게 초를 다투며 바쁘게 고심하고 있는 그 내면을 잘 그렸다. 주연배우들은 세밀한 인물분석으로 이름값을 증명했다. 만약 내가 바둑을 조금 알았다면 영화가 좀 더 더 재미있었을까. 다행스럽게도 이 영화는 바둑의 이론을 잘 몰라도 이해가 되었다.
마지막 장면, 이창호가 이제 스승의 배웅을 받으며 그동안 몸담고 배웠던 스승의 집을 떠나며 트럭에 이삿짐과 함께 넣었던 바둑판에 새겨진 문장, “바둑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라고 구절을 나도 되새겨본다. 작은 바둑돌에 인생을 걸고 바둑판에 모든 것을 건 남자들의 승부의 세계, 흑과 백의 작은 돌로 하는 이 게임을 누군가는 돌싸움이라 비하하기도 했지만, 두 사람은 지금도 현역으로 바둑계에 건재하다는 마지막 자막을 끝으로 객석의 불이 켜졌다. 인생의 어려움을 직면하고 아파하며 성숙해 가는 서사를 잘 담은 사람이 보였기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리라. 뜻밖에 눈물이 흐르기도 했으니까. 조조영화를 보러 달려온 수고는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화려한 공격과 기술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에는 누가 더 많은 집을 지었는지로 승부를 결정하는 바둑의 세계처럼. 나의 인생도 결국은 내 집을 만들어가는 것이리라. 그런 깨달음을 얻었으니. 어찌 보면 자기 집 하나를 얻기 위해 한평생 수고하는 인생 같으니까.
십여 년 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친정에 있던 그 바둑판은 지금 남동생 집에 모셔져 있다. 거북 모양으로 깎은 등위에 새겨있던 무거운 바둑판과 바둑통. 학창 시절, 아버지께서 나와 동생에게 바둑을 가르쳐 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난 곧 바둑을 멀리하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바쁜 와중에도 틈만 나면 동생들과 바둑을 두셨다. 아버지는 분명 우리에게 바둑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아마도 아버지의 바둑판에는 보이진 않는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마음이 담겨 있었으리라. 세상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고, 인생이란 길은 이 영화에서처럼 정답이 없는 길에서 자신만의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라고, 고독하지만 치열하게 한 걸음씩 선택의 돌을 놓아가는 것이라고, 가장 중요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충수를 두지 않는 올바른 선택이 중요한 것이라고. 어미가 새끼에게 세상을 살아갈 방법을 알려주듯 그리고 인생에 승부의 참된 의미를 가르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