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안경

by 가을장미


고교 시절엔 안경 쓴 사람이 좋았다. 왠지 지적으로 보여 부럽기까지 했다. 꽃사슴이란 별명의 독일어 선생님을 짝사랑했는데 온화해 보이는 얼굴에 쓴 금테 안경이 왜 그리 멋지게 보이던지. 선생님 사진을 몰래 찍어 앨범에 끼워놓기도 했다. 양복차림의 중후한 분위기의 옆모습을. 그러다 쉬는 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깜빡 잠들었던 나는 독일어 수업 종소리를 듣지 못하고 반장의 ‘차렷’ 소리에야 벌떡 고개를 들었다. 부스스한 모습으로. 선생님은 출석부를 들춰보며 내 이름을 부른 후 지난주 배운 교과서를 읽어보도록 시켰다. 더듬더듬 어려운 단어를 읽어갔던 창피한 사건 후로는 독어도 짝사랑도 멀어져 버렸다. 기억에 남은 것은 ‘이히 리베 디히’뿐.

아침마다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먼 거리에 배정된 등굣길은 전쟁이었다. 그러나 난 멀리서도 버스의 작은 번호가 보여 눈치껏 뛰어가 빨리 탈 수 있었다. 부모님 덕분에 시력이 안 좋은 사람들의 고충은 모른 채. 추운 날 따뜻한 곳에 들어오면 김이 서리는 불편함과 안경을 잃어버리면 그 난감함까지도 알 바 아니었다. 우리 식구 중 누구도 안경 쓴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어린 시절부터 보아왔던 신문을 결혼해서 지금까지도 고집하고 있다. 토요일 아침, 현관에 놓인 신문을 집어 들고 펼쳤을 때 퍼지는 종이 냄새란. 조용히 세상 이야기를 읽는 한가한 그 시간은 무엇과도 바꾸기 싫었다. 그러나 아들은 요즘 종이 신문 보는 집이 어디 있냐며 전자신문을 보라 했다. 하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난 다시 동네 신문 보급소에 전화를 걸었다. 오래된 나의 이 습관을 바꾸기는 어려웠으니까.

어느 때부턴가 신문을 보는데 이상하게 양미간이 찌푸려지고 머리가 아파왔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이유를 몰라 한참을 지내다 정기 검진하러 들린 안과에서 해답을 찾았다. 노안. 내가 안경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다니 충격이었고 서글펐다. 하지만 돋보기안경을 처음 쓰고 신문을 보니 눈이 편안하고 잘 보일 수가. 아버지가 백내장 수술을 하고 먼지까지 다 보여 문제라고 했듯이 신세계였다. 그 후로 안경은 어디든 나와 함께 했다. 외출 시 제일 먼저 가방에 챙기는 것이 핸드폰 그다음은 안경이다. 슈퍼에서 상품에 붙어있는 성분표를 읽을 때나 특히 생선을 발라 먹을 때 요긴했다.

그동안 많은 돋보기안경을 썼다. 그중에 일본 여행 때 산 빨간색 뿔테 안경이 가장 애착이 갔다. 남편의 파란색 안경과 세트로 샀었는데 몇 년 쓰니 코팅이 벗겨지고 다리가 부러져버렸다. 많이 아쉬웠다. 내 부족한 눈이 되어준 안경이었는데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나 보다.

지인의 칭찬이 자자한 동네 한 안경점에 들렸다. 고교시절 독일어 선생님과 비슷한 사장님이 친절히 맞아주던 열 평 남짓한 작은 공간. 한 면에 안경과 선글라스들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었다. 유리 진열장 위에는 주문받은 많은 안경들이 접힌 주문서와 같이 놓여있었다. 단골들이 많다는 뜻 이리라. 한 번은 요양병원에 계신 아흔 넘은 시어머니가 눈이 침침하다고 상담을 했더니 그런 사정이 있었냐면서 적당한 안경을 골라 그냥 선물로 주기도 했다. 난 그날로 충성된 단골이 됐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안경을 바꾸러 가면 사장님은 꼭 안과에 다녀오라 권했다. 안과 정기검진을 한 후 시력 검진표를 가져와야 더 잘 맞는 안경을 맞출 수 있다면서. 그런 깐깐함이 믿음직스러웠다. 그러나 그 단골 안경점도 몇 달 전 문을 닫았다. 산책길에 간판이 바뀐 것을 보고 얼마나 서운했던지. 아마 이 동네 사람들이 다 그랬을 것이다. 코로나로 힘이 들어 문을 닫은 것은 아니기를 바라며, 안경뿐 아니라 섬세한 마음까지 담아주었기에 두고두고 아쉽다. 당분간 새 안경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듯.

그 안경점에서 맞춘 마지막 안경, 동그란 안경알을 감싸고 있는 분홍색 안경테와 금테 안경다리, 제일 마음에 들어 애지중지하고 있다. 그 안경이 노란색 책 표지의 ‘키다리 아저씨’ 옆에 놓여있다. 어릴 적 아동용으로 읽었던 책을 요즘 다시 보면 새롭다. 원작은 편지글이고 주인공 ‘제루샤 애벗’은 고아 소녀다. 동화책 중 고아가 주인공인 경우가 꽤 있었다. ‘하이디’, ‘소공녀’는 내 유년에 빼놓을 수 없는 동화책이었고 ‘빨강머리 앤’까지도. 마치 내가 부모 없는 고아가 된 양 빠져들어 ‘하이디’와 ‘소공녀’를 얼마나 읽고 또 읽었던지.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지금에 이르도록 내 주변에 고아는 없었다. 단 한 명도. 고아란 단어를 되뇌어보면 아득할 뿐. 책을 읽을 때는 공감하며 읽었지만 정말 그들을 편견 없이 내 친구로 삼을 수 있을까. 그동안 내 마음은 편견의 색안경을 쓰고 있었음을, 안경알을 호호 불고 닦으며 마음의 시력과 안목 또한 형편없었음을 깨달아간다.

헬렌 켈러는 수필집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에서 간절한 소망을 썼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암흑과 정적의 삼중고를 갖고도 그 고통을 이겨내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사람. 그녀는 첫째 날은 자신을 지금까지 이끌어온 설리번 선생님의 얼굴을 제일 먼저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후 밖으로 나가 나뭇잎과 들꽃 그리고 석양에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어 했다. 둘째 날에는 먼동이 트고 밤이 낮으로 바뀌는 웅장한 기적을 보고 나서 하루 종일 박물관을 찾아가 인간이 진화해온 궤적을 눈으로 확인해보고 밤에는 별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겠단다. 마지막 날에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오페라하우스와 영화관을, 저녁에는 쇼윈도에 진열돼 있는 물건을 본 후 사흘 동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다시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고 썼다.

내가 일상에서 당연하게 보고 있는 것들이 그녀의 간절한 소원이었으니.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또 기적 같은 일인지를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그토록 보기 원하는 이 세상의 모습을 나는 경이로움과 감사로 여기고 있는지를 되돌아본다.

부모님 덕분에 좋은 눈을 타고났다. 하지만 철이 든 것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가 아닐까. 고아라고 느낀 후에야 마음의 눈에도 다시 돋보기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매 순간 찬찬히 살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보이는 것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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