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을 장미

by 가을장미


이른 아침이었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공원엔 산책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경사진 넓은 코스모스 언덕에는 젊은 연인들이 일찍부터 모여들었고 서로의 사랑을 사진에 담기 위해 열심이었다. 보기 좋았다. 코스모스 들판 위, 원두막으로 올라가는 좁은 꽃길은 마치 교통체증에 밀린 차들처럼 청춘남녀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코스모스의 하늘거림 속에 계절이 깊어가고 있었다.

혼잡한 곳을 피해 공원을 한 바퀴 돌아 나오니 장미광장이었다. 철 지난 장미들의 다소곳한 자태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봄과는 달리 한적한 분위기였지만 찬찬히 보니 꽃의 여왕답게 장미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낭만적인 사랑과 열정을 떠올리게 하는 붉은 장미와 순수를 상징하는 흰 장미, 노란 장미는 질투라는 제각각의 꽃말과 학창 시절에 읽었던 어린 왕자의 장미도 떠올려보면서.

때를 놓치고 핀 장미를 보면서 애잔한 감정이 들었다. 무엇을 하다가 이제야 핀 거냐고 묻고 싶었다. 왠지 나와 비슷했다. 코스모스처럼 제 철에 피어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즐거움을 주면 좋겠지만. 젊은 시절엔 남들의 인정을 받는데만 연연했다. 소중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알았더라면, 후회도 되었다. 하지만 뒤늦게나마 왠지 모를 끌림으로 시작한 글쓰기 수업으로 나를 찾아가고 있다. 소중한 이 시간들로 내 삶의 의미를 찾고 있으니 좀 늦으면 어떠랴.

글을 쓰면서 나를 돌아보고, 진정한 나의 꿈과 길을 차츰 알아가게 된다. 남들이 보는 나보다 나를 찾는 길이 더 중요했다. 학창 시절은 잦은 이사로 친구들을 사귈 기회가 많지 않았다. 직업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전방으로 다니다 보니 뿌리를 내리지 못한 나무와 같았지만 외로운 관사에서 책을 보며 자연에서 위로받았다. 맑은 시냇물 속에서 헤엄치던 송사릿 떼는 중년까지도 꿈에 나타나곤 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래도 순수하고 고독했던 그런 성장과정이 내게 많은 자양분이 되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청년의 때는 앞날에 대한 불안과 기대가 혼재했던 시기였다. 부모와 학교에서 원하는 대로 공부를 열심히 했고 비교적 모범생으로 성실했지만 자신의 내면을 볼 줄 몰랐다. 그저 경쟁하며 사다리를 올라가는 노력이 전부였다. 이렇게 앞으로 나가다 보면 무언가 되어있겠지 막연한 기대만 했을 뿐. 부모의 땀과 눈물로 내가 누리고 있다는 것도 잘 모르는 허약하고 무정한 딸이었으니.

고교시절,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누구를 가장 존경하냐고 물었다. 난 땀 흘려 일하는 농부가 훌륭하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아버지는 별말이 없었다.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수고는 감사하면서도 나를 위해 가장의 무거운 짐을 진 아버지의 마음은 왜 몰랐을까. 가깝게 같이 지내는 사람의 소중함을 모르고, 무채색의 불확실한 내 미래만을 보며 살아왔다.

사랑이라 착각한 결혼을 통해 제일 많은 것을 깨닫고 있다. 남편과 함께 결혼생활을 하며 자녀들을 키우면서 나를 넘어서야만 했으니까.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맞은 외환위기로 직장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또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다. 가정을 지키려 안간힘을 쓰면서. 그러나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엄마의 빈자리로 힘든 아이들의 마음보다 내 수고가 컸다 여겼으므로. 내 마음도 잘 몰랐으니 남편과 자식들의 힘듬을 돌 볼 여유가 있었겠는가.

이제 그런 긴 직장생활을 뒤로했지만 남은 상처와 후회가 남았다. 서로 많은 아픔을 겪어야 했기에. 그러나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다시 조금씩 엄마의 자리를 회복하며, 본연의 내 자리로 다가서고 있다. 세상 풍경 속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이라고 했던가.

좀 늦어도 차분하게 내 자리로 돌아오고 싶었다. 그동안 겪었던 나의 일들을 정리하면서 정말 소중했던 그때를 글로 써본다. 제철이 지나서 늦게 핀 꽃이라도 좋다.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하는 어는 작가의 책 제목처럼.

글쓰기를 하다 보니 젊음이 부러웠다. 앉아 있을 수 있는 힘이 필요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기의 길을 알고 가는 재능 있는 작가들이 새삼 부러웠다. 전공을 하고도 그 길로 몇십 년을 달려온 사람과 비교되어 자괴감도 들었으니까. 그들의 문장은 빛이 났다. 반짝반짝 갈고닦은 보석처럼. 나는 무엇을 써야 하는지 나는 왜 쓰는지 질문도 하면서 뒤늦은 공부를 하고 있다. 모차르트를 시기하는 살리에르처럼 추한 모습은 되고 싶지 않다. 있는 그대로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의 길을 가는 겸손을 깨닫게 된 나이도 되었으니까.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지창조를 완성하고 베르디가 오셀로를 작곡한 나이가 팔십 세가 넘어서란다. 괴테도 파우스트를 팔십이 세에 썼다나니 요즘은 의학이 얼마나 발달했는가. 자신의 건강을 위해 노력하면서 주어진 시간에 몰입과 집중으로 알차게 보낸다면 늦은 시작은 없으리라. 오직 뜨거운 열정만이 필요할 뿐. 그렇다면 나도 나이의 고정관념을 넘을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이기적인 목적에서 시작한 글쓰기가 차츰 나를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한다. 이제는 닮고 싶은 아름다운 문장이 보인다. 탁월한 명문을 필사하고 많은 퇴고를 하며 써보려 하나 결코 쉽지는 않았다. 워낙 현실의 실용성을 최고로 여기며 살아왔기에, 나의 글은 문향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건조할 수밖에. 그러나 작가들의 아름다운 문장 속에 깃든 힘과 깊은 사유의 세계가 마음에 스며든다. 이제는 잘 쓰기 위해 책을 골라서 읽게 되니 모든 것이 내 글의 소재가 된다. 개인적인 기록이지만 뜸 들이고 익히듯 작품화하고 이 시대적인 상황을 직시하는 작가정신도 생각하면서.

사진 속에 담아온 가을 장미를 다시 본다. 그 옆에 서서 웃고 있는 중년의 여인이 누군지도 이제야 알겠다. 늦게 핀 그 장미가 나에게 눈짓하는 것만 같다. 비록 시기를 놓쳤지만 나만의 향기와 자태로 인생의 가을을 써 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