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해는 이내 기울고 바람도 차가운 날이었다. 학습지 회사에서 방문 교사를 할 때였다. 사정에 따라 수업일정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가끔 엄마들은 시간을 변경하곤 했으니까. 다음 집 수업까지는 한 시간이나 남아있어, 망설이다가 근처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국숫집에 들어가기까지는 문 손잡이를 잡고 심호흡을 해야만 했다. 처음으로 먹는 혼밥. 혼자서 밥 먹기는 아직 어색했다. 아마도, 이 일이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것은 바쁜 직장생활에서 처음으로, 여유 있게 자신을 위해서 챙겨 먹은 혼밥이었으니까.
접시에 담긴 굵은 김밥 위엔 통깨가 뿌려져 있었다. 나는 젓가락으로 계란 지단이 삐죽 나온 꼬투리를 집어 입에 넣었다. 불룩해진 볼을 한 손으로 가리며 씹으니 짭조름한 단무지와 어묵의 비린 맛이 입 안에 고스란히 퍼졌다. 곧이어 큰 스테인리스 그릇에 멸치국수가 나왔다. 멸치 국물 위에 김 고명이 식욕을 자극했다. 푸짐한 양 때문에 남자 손님들도 많이 찾는 식당 같다. 혼자서 먹는 나를 중년 남자들이 쳐다보았지만, 아랑곳 않고 뜨끈한 국물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식탁 위 핸드폰에 눈을 고정시키며. 열 평 남짓한 허름한 동네 국숫집이었지만, 얼마 만에 제때 먹어보는 저녁식사였던가.
아이들이 초등학교 가기 전, 주부로서 슈퍼에만 자주 가는 여자였다. 화장도 잘할 줄 몰랐고 공부시키는 엄마도 아닌 밥하는 여자였고 식탁에 둘러앉아 온 가족이 먹고 마시는 가족의 안녕이 내겐 전부였다. 솜씨는 없어도 매일 반찬 걱정하며 칼질을 했었다. 삼시 세 끼의 책임과 의무가 즐겁고 버거웠지만, 아이들이 포동포동하게 커가고 그들의 웃음이 내 행복의 전부였다. 그러나 국가적 경제 파동으로 갑자기 남편 사무실이 문을 닫게 되자, 고심 끝에 직장을 찾아 나서야 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하교 후 아이들이 먹을 밥을 챙겨놓고 내 도시락도 싸야 했다. 그래도 피곤한 줄 몰랐다. 그땐 오직 하나만 보고 달렸으니까. 어리석게도, 엄마 없는 썰렁한 집에서 혼자 밥 먹게 될 아이들을 잊은 채...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회원들이 넘쳐나서, 겨우 점심을 급하게 먹고 뛰쳐나가야 했다. 늦은 시간, 일과가 끝나면 피곤하고 굳은 얼굴로 집에 돌아와 혼자 밥을 먹는 일이 일쑤였으니. 이 직업은 가족과 저녁식사는 불가능했고 시간과 돈을 맞바꾸어야 했다. 긴 직장생활 동안 사회도 많이 변했다. 여러 이유로 청년들은 결혼을 기피했고, 차츰 회원 아이들도 줄어들어 내 수입은 반 토막이 났다.
저녁시간이 되면 회원들 집에서는 된장찌개며 갓 지은 밥 냄새가 났다. 배는 꼬르륵거리고. 그럴 땐 집에 있는 아이들 생각보다 내 배가 더 고팠다. 육체와 정신적 허기 속에서 거친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특히 맞벌이 가정 아이들과의 수업은 마음이 짠했고 게임에 빠져있는 모습은 내 아들 같았다. 내 아들 또한 그러했을 테니까. 결혼 후 주부로 가정에 머물렀던 십여 년, 그땐 미련하게도 왜 몰랐을까. 온 가족이 한 상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는 평범한 일상의 행복과 소중함을.
이젠 긴 직장생활을 끝내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와 시장 가고 밥하는 여자가 되었다. 요즈음은 삼시세끼 때마다 ‘오늘 뭐 해 먹지?”라는 질문이 일상의 숙제다. 그러나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커 버렸다. 그들은 직장생활로 바쁘고 지금은 집에서 나 혼자 먹는 밥이 익숙해졌다. 주부의 일상이 몸에 배었지만 안방마님이 된 나만을 위한 밥상 차리기가 싫다. 귀찮다. 이런 습관화된 나태함은 유독 나 자신에게만 인색했던 것은 아닐까.
여자의 길이란, 숙명처럼 전통대로 친정엄마에게서 배운 대로 내게 스며든 가정의 일들만 전부처럼, 한 톨의 자의식도 없이 희생의 그물처럼 엮어내야만 했던가. 그러니까 엄마와 아내, 딸과 며느리로 인정받았지만 나를 대접하지는 못했다. 진정, 자신을 다독이며 사랑하는 일에 간과하며 살았던 날들. 그날의 김밥과 국수는 온전히 나를 위한 만찬이었다. 어색하고 용기가 필요했지만, 저녁시간에 맞춰 제대로 먹었던 푸짐한 혼밥이었기에.
지금은 혼밥의 시대, 거실 TV에서는 젊은 연예인들이 혼자 사는 일상을 보여주는 인기 프로가 나온다. 화려함 뒤에 숨은 외로움을 유쾌하게 풀어나간다. 그들의 혼밥은 모두에게 평등한 허기 앞에서 짠한 감동과 공감을 주니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기에 흥미로웠다. 혼자 먹어도 잘 차려서 먹는 여자 연예인과 달리, 남자 연예인의 서툴고 진솔한 생활이 더 진정성 있게 보였다.
생각해 보면, 혼밥의 역사는 엄마한테서 모유를 먹을 때부터다. 힘껏 빨아서 삼켜내는 본능적인 힘, 그리곤 이유식으로. 그 후엔 스스로 숟가락질을 배워서 밥을 떠먹는 것. 이 얼마나 위대한 혼밥의 발달 과정인가. 어쩌면 혼밥의 역사가 각자의 자립과 독립을 위한 삶의 과정이 아닐지. 엄마가 해주는 집밥에서 벗어나 혼자 살면서 지어먹는 자신을 위한 밥. 때론 바빠서 혼자 사 먹는 밥까지도. 그 모든 과정의 혼밥은 우리들을 더 강하게 홀로 서도록 했던 원동력이 되었다. 때론, 혼밥의 서러움도 철드는 과정에서는 또 다른 성숙의 길목이 될 수 있으리라.
요즘은 가족과 함께 먹는 시간보다 각자의 생활 형편대로 식사 시간이 저마다 다르다. 오히려, 혼자서 먹는 것이 익숙해서 자연스러울 정도니까. 그러니 오롯이 자신과 대화하듯, 혼자 먹는 시간도 귀히 여겨야 하겠다. 어차피 홀로 나만의 삶을 되새김질하듯. 그동안 방치했던 나를 대접도 해야겠다. 비록 소찬일지라도 정성을 들여 차려서 꼭꼭 씹어 먹으며, 남몰래 자신에게 애썼다고, 나를 보듬어 주리라. 혼밥의 기억 속으로 나를 되찾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