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똥통에 빠진 날

by 가을장미

남녀공학인 고등학교를 다녔다. 교복이 좀 특이했다. 여학생 교복은 평범한 감색이 아닌 자주색 정장 스타일이었고 호빵처럼 납작한 자주색 모자가 있었다. 실 핀으로 고정시켜 비스듬히 쓰고 다니면 눈길을 끌었다. 교복 콘테스트에서 입상한 멋진 디자인이라 다른 학교 학생들이 부러워했다지만 무거운 가방을 들고 아침마다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모자를 잡고 뛰어야 하는 등굣길은 전쟁이었다. 수업시간에 가까스로 맞춰 교문을 들어갈 때면 선도부와 교련 선생님이 서있었다. 복장이 단정한지 매의 눈으로 살피고 지각생들을 잡기 위해서. 그곳을 지나칠 땐 왠지 죄를 지은 듯 위축됐다. 그들 옆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쳐다보는 또 한 분이 있었으니 바로 정ㅇㅇ음악 선생님이었다. 그는 마치 규율부 반장처럼 등교하는 학생들을 지켜보았고 복장 불량으로 걸린 아이들과 지각생들은 자전거 탄 정 선생님을 뒤따라 운동장을 몇 바퀴씩 돌아야 했다. 교실 창문에서 반 아이들과 그 모습을 지켜보며 웃음 지었지만 항상 조마조마했다. 언제든 내 차례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음악시간, 수업종이 울리면 선생님은 검은색 긴 출석부를 들고 대머리를 빛내며 교실로 들어오셨다. 작달막한 키에 신경질적으로 올라간 눈썹과 움푹 들어간 큰 눈, 딸기코와 두툼한 입술에서 나오는 커다란 목소리는 우리를 늘 긴장시켰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우리를 둘러본 그는 출석을 부른 후 피아노 앞에 앉으셨다. 먼저 목을 풀어야 했다. 선생님은 익숙한 솜씨로 건반을 누르며 “아아아아 아아아아아 ~ “ 두성으로 시범을 보이면 우리도 피아노에 맞춰 그 음을 따라 했다. 반주는 반음씩 높아졌고 발성 연습은 계속되었다. 제대로 하고 있다 여겼지만 갑자기 선생님은 “꽝 꽝” 피아노를 두드리셨다. 그리곤 “머리에 똥만 가득한 녀석들” 명대사를 퍼부었다. 십여 년 전 인기 TV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내뱉던 유명한 ‘똥덩어리‘보다도 훨씬 전에 어록을 만들면서. 교실은 정적이 가득했고 아이들의 얼굴은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인정하기 싫은 말이었다. 정확한 소리를 못 낸다고 이런 독설까지 들어야 하나 자존심이 상했으니까. 그 후 이어지는 합창 연습은 더욱 고역이었다. 합창은 한 사람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한 사람이 잘못해도 안 되었으니. 선생님의 쩌렁쩌렁한 두성이 교실 천장까지 가득 채웠지만 우리는 그분이 원하는 그 소리를 내기는 어려웠다. 콧 평수를 넓히고 눈썹을 이마로 밀어 올리며 소리를 머리 위로 끌어올 리 듯 노력했지만 그것은 고도로 숙련된 성악가의 목소리였기에. 그럴수록 성난 선생님의 얼굴은 더욱더 벌게졌고 우리의 목소리는 기어들어갔다. 음악시간은 똥통에 빠졌다 나오는 심정이었다.

고등학생 때 소녀감성으로 남자 선생님들을 짝사랑했었다. 그러나 정선생님은 제외였다. 또래 남학생들도 정신연령이 낮다 생각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대학입시만 바라보면서 학교에 다녔다. 소풍이나 학교 축제 때도 떠오르는 재미있는 일도 하나 없이 그렇게 나의 청춘은 아침 버스에서 시달리고 저녁이면 달과 별을 보면서 하교하는 일만 반복될 뿐이었다.

어느 날, 밝고 경쾌한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으로 시작하는 장학퀴즈를 보고 있었다. 아마도 그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청소년 프로그램이었을 것이다. 간혹 정답을 맞히기라도 하면 동생들에게 우쭐해하면서. 출연한 한 학생이 음악 문제를 골랐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제목을 맞추는 것이었는데 음악이 나오자마자 벨을 누르는 게 아닌가. 그리곤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정답.” 아니 이럴 수가, 난 충격을 받았다. 조금밖에 듣지 않고 어찌 알 수가 있단 말인가. 그 당시 우리 집은 전축을 사서 거실에 장식했지만 기껏해야 아버지가 좋아하는 유행가나 팝송을 듣는 수준이었다. 클래식 음악의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고등학교 음악 시험에서도 이런 유형이 있었다. 클래식 열 곡을 듣고 제목을 적어야 했지만 난 첫 부분과 유명한 멜로디만 알 뿐, 중간 부분은 어려웠다. 음악을 듣고 아름다움을 느끼기는커녕 제목만 달달 외웠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멜로디의 힘은 컸다. 그 후로는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 아마도 고등학교 때 유별난 음악 선생님 덕분이 아니었을까. ‘보리밭’과 ‘몽금포 타령’을 배우고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시를 읽노라…”를 부르곤 했으니.

가끔 동창들과 고교시절을 회상할 때면, 누구나 정 선생님의 일화는 빠지지 않는다. 그분의 한쪽 다리가 의족이라는 비밀도. 선생님은 음악실을 벗어나면 만나는 아이들의 이름을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큰소리로 불렀다. 아마도 전교생의 이름을 외우는 거의 유일한 선생님이었을 듯. 그런 그가 음악시간만은 돌변했으니 그것은 자신의 일에 철저했기 때문이리라. 음에 대한 완벽을 추구하는 선생님께 우리의 소음은 얼마나 고역이었을까. 아무리 가르쳐도 따라 하지 못하는 열등생들을 닦달하면서. 제자들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쓴소리도 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이젠 나도 엄마가 되어서 아이들을 키워보았기에. 철없던 학창 시절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고맙고 소중한 분이다. 나의 순수한 그 시기를 함께 했던 음악 선생님이 오늘은 더욱 그립다. 누구라도,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일화 속의 주인공으로 남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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