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이었다. “삐리 삐리 삐리리 삐리리…” 식사시간 전인데 인터폰이 울렸다. 경비 아저씨였다. “차 좀 빼주세요. 아파트 도색작업과 보수공사 때문에…” 남편은 구시렁대면서 키를 들고나갔다. 좋은 계절 다 두고 추운 12월 첫날부터 보수공사를 하냐면서.
오후,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섰다. 우리 차가 서있던 아파트 주차장에는 차들이 치워져 휑했고 ‘위험, 안전제일’이라는 빨간색 줄이 바닥에 처있었다. 마스크 속에서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외투의 모자를 올려 쓰고 아파트 주위를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아파트 벽에는 군데군데 흰색과 회색의 덧칠이 돼있었다. 주차장 한쪽 바닥에는 ‘외벽 균열 보수제’라고 쓰인 흰 통들이 많이 쌓여있었다. 다 쓴 플라스틱 통들은 석회 성분의 찌꺼기가 바닥을 드러낸 채 뒹굴었다. 양동이 크기의 그 통들 옆에는 지저분한 솔과 미장용 몰탈 포대가 쌀포대처럼 몇 개씩 포개져 있었다. 외벽 칠 작업이 끝나면 아파트도 깨끗하게 목욕하고 설빔을 입은 아이처럼 새해 단장이 되겠다 생각하며 위를 쳐다봤다. 18층 높이의 아파트 옥상 위에서 드려진 가느다란 외줄에 의지한 작업복 차림의 기사가 뒷모습을 보이며 보수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득했다.
모르는 사이, 아파트 외벽은 많은 곳이 갈라져 있었나 보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군데군데 덧칠해진 외벽의 갈라짐은 따가운 햇볕과 태풍 그리고 눈, 비의 사계절을 지내며 약한 곳에 생긴 것이리라. 마침 작업 기사가 5층 우리 집 근처의 난방 홈통 주위를 살펴보면서 땜질을 하고 있었다. 난 잠시 멈춰 지켜보았다. 외줄에 매달린 그네 같은 작은 판 위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좌우로 움직이며 어느새 부엌 창틀 쪽으로 아슬아슬하게 옮겨 가며 전문가의 손길로 보수제를 바르고 있었다. 그 뒷모습에 난 숙연해졌다.
바닥에 내려와 정리하는 기사에게 흰색과 회색 보수제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물어봤다. 농도의 차이일 뿐이라면서 이것을 바르면 빨리 굳어져 벌어진 틈을 잘 매워준단다. 이 사전 작업이 잘 되어야 페인트칠이 골고루 잘 되고 오래간단다. 페인트칠은 언제 시작하느냐고 물어보니, 자신들은 균열 보수작업만 한단다. 말하는 그의 얼굴은 앳되보였으나, 전문가의 자부심이 물씬 묻어났다. 그 자신감이 보기 좋았다.
하자 보수공사는 어디 아파트의 벽뿐이겠는가. 살면서 인생도 보이지 않는 많은 실금들이 생기는 것 아닐까.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과 인간관계와 건강에도 점차 틈이 벌어져 공사가 필요한 때가 있으리라. 때를 놓치면 전체가 위험해지는 순간이. 인생도 아파트처럼 이렇게 하자보수가 가능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꼭 해야만 한다. 이렇게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나의 부족하고 힘든 부분을 매만지고 채워 넣었어야만 한다. 조용히 나를 들여다보면서 내 생활을 정리하고 반성하고 또 계획을 세워보는 시간이. 비록 계획대로 되지는 않을지라도.
욕심만 많고 무지했기에 위로 향한 사다리만 오르려고 했다. 때로는 내려다보며 이렇게 삶의 하자보수가 필요했건만. 나 자신의 내면을 보면서 실금이 큰 균열로 되기 전에 찾아내 그곳을 땜질하고 다시 딱딱하게 굳히는 나만의 시간이. 남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나에게 집중하는 외롭고 고독한 그 시간이, 비록 남에게는 등을 돌린 듯 오해를 좀 받는다 하더라도. 잠시는 아프지만 있어야 할 그 고통을 직시하는 순간이 될테니까.
인생이란 조금만 방심해도 안 되는 것임을 살수록 더욱 느낀다. 되돌아보니 여기까지 온 것도 내 힘만이 아니었고 많은 도움이 있었음을 이제는 깨닫는다. 가정의 화목과 건강한 가족관계를 만들기 위해선 설사 서로 잘못했어도 이해해주고 덮어주어야 하는데 난 옳고 그름으로 따지고 책임을 가리려 했다. 특히나 편한 부부사이엔 더욱 그러했다. 가정은 재판정도 아니고, 그렇게 시시비비를 따져서 무엇을 하겠는가. 뒤늦게 알아간다. 때론 부모와 자녀관계에서 알아도 모른 척 넘어가 주는 배려가 있어야 하는 것임을.
누군가 아이들은 부모의 말이 아니라,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했다. 꾸밀 수 없는 나의 뒷모습은 어떠했을까. 아찔하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내 삶의 결론이라니, 그만큼 아픈 말이 또 있을까. 이젠 그 말을 되짚어보니, 매 순간이 나를 입 다물게 한다. 뒷모습은 숨기거나 가릴 수 없다고 한다. 더구나, 반복도 없는 삶의 길에서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