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우리 집 송년의 밤은 티브이와 함께 했다. 연말이면 한 해를 결산하는 각종 영화제 시상식과 방송사의 연예대상 프로그램을 보면서 과연 누가 대상을 탈까 궁금해했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연예인이 트로피와 꽃다발에 둘러싸여 눈물을 글썽이며 수상소감을 말하는 장면을 지켜보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많은 시상식 중 기억에 남는 소감은 소박했다. ‘스태프들이 차려준 밥상에 자신은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라던 겸손한 그 말은 정말 감동을 불러일으켰으니까. 자정이 가까워지면 사회자의 사인에 맞춰 5, 4, 3, 2, 1을 함께 외쳤고 축포가 터졌다. 서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나눴으나 졸린 눈을 부릅뜬 나는 남의 잔치에 들러리 선 손님이었다.
아이들이 크면서 점차 한 해의 마지막 날은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추운 겨울밤 남편이 운전하는 차로 아이들과 함께 먼 거리의 교회로 달려갔었다. 많은 교인들과 경건한 마음으로 한 해동안 지켜주심에 감사기도를 드렸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시곗바늘이 자정을 넘어가는 순간의 느낌이란. 인간이 아무리 많은 것을 계획한들 그것을 이루어주시는 분은 창조주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그때의 나는 행복만 찾는 얕은 믿음에 불과했다. 예배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동네 근처 감자탕 집에서 뜨끈하게 먹고는 막상 새해 아침엔 늦잠을 자곤 했으니.
코로나로 모든 것이 달라진 올해, 식탁 앞에 걸린 달력도 마지막 잎새처럼 이제 달랑 한 장 남았다. 그 달력의 사진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고요함이 묻어난다. 어둠 속에 교회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주변의 나지막한 나무를 장식한 꼬마전구들로 인해 화려함이 희미하게 드러난다.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찬송가가 들려올 것만 같다. 크리스마스의 들뜬 도심 분위기와 떠들썩한 연말 방송과는 다른 성스러움으로.
이맘때쯤엔 나도 일 년치 탁상용 달력을 자주 들춰보게 된다. 그곳에는 색색의 크고 작은 동그라미와 자잘한 글씨들이 적혀있다. 가장 큰 동그라미는 십여 년 요양원에 계시던 시어머님이 소천하신 날이다. 그녀는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않았지만 면회갈 때면 기도문을 같이 외웠다. 하루아침에 뇌경색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 자신의 몸상태를 받아들이고 화해하기까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쉴 수 있기를.
몇 년 전 글쓰기 모임에서였다. 연말을 정리하며 무엇을 하겠는가란 주제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날 참석한 한 분은 자신은 유서를 쓰고 그것을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매 년 조금씩 수정한단다. 깜짝 놀랐다. 유서란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왠지 두려운 단어였으니까.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사는 그분은 얼마나 충실한 삶이었을까. 다시 유서 쓰기에 도전해야겠다. 막상 쓰려하니 어떻게 무엇을 써야 할지 막막했었지만 더는 미룰 수 없기에.
유언장은 재산의 상속이나 분할 문제로 법적인 효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목적이 있겠지만 난 다르다. 물려줄 재산도 별로 없거니와 요즘은 주민번호만 있으면 은행계좌는 다 조회할 수 있으니까. 시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 상조회사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곳 직원들은 유서 쓰기와 관에 누워보는 경험을 한다는 글을 읽었다. 대부분 직원들은 관 뚜껑을 열어주면 나오면서 울음을 터뜨린단다. 그 울음의 의미가 무엇일지 짐작이 된다. 죽음 앞에서는 많은 것이 드러나리라. 소중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전 생애를 살아온 이유가 바로 제대로 된 유언 한 줄을 남기기 위한 것이란 말이 있다. 살면서 자신이 간절하게 느낀 것은 남기고 싶은 한 마디가 될 테니까. 만일 죽음을 생각하지 못한 삶이었다면 노벨 문학상을 받은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유명한 묘비명처럼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하며 후회하게 될 것이기에.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했지만 내겐 그건 너무 높은 산이다. 그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낮은 동산이 되는 것으로도 만족할 뿐.
버트란드 러셀은 그의 자서전 서문에서 말한다. 자서전 또한 자신이 어느 정도 삶을 살고난 후 정리하며 쓰는 것이리라. 그는 사랑과 지식에 대한 열망으로 살았지만 늘 연민이 자신을 다시 지상으로 끌어내렸다고. 나는 그중 아들들에게 미운 짐이 돼버린 무력한 노인들에 대한 그의 연민이 피부에 와닿았다. 시어머니를 면회 가면서도 늙음과 병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내 고통으로 여기지 못했기에, 나만 아는 나도 어쩔 수 없는 그 마음을. 자신을 돌아보는 자서전이야 말로 어쩌면 유서가 되지 않을까. 시어머니의 오랜 병상의 고통을 보았기에 나도 마음이 낮아졌다. 죽음을 생각해 봐야 지금 나 자신을 점검해보고 현실의 일들도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될 테니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고요함 속에 침묵하면서 내 존재의 목소리를 들어 보련다. 돌아보니 나는 인생의 선택과 그에 따른 위험을 감수하려는 마음이 많이 부족했다. 삶에서 가장 큰 위험은 아무 위험도 감수하지 않은 것이란 어느 시인의 말이 그래서 아프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고통과 슬픔은 피할 수 있을 것이나 배움을 얻거나 변화할 수도 성장하거나 사랑을 할 수도 없기에, 그런 사람은 자유를 박탈당한 노예 같다는 말이. 바로 나의 모습이 보였으니까.
송년의 밤, 나의 까질한 성격의 모서리를 다듬어 둥근 조약돌이 되도록, 늦가을 나무에서 붙어있던 나뭇잎이 우아하게 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해본다. 그리고 자연의 순환처럼 끝이 있어야 다시 시작할 수 있으므로 새해에 또 소망을 한다. 인간은 이 세상을 떠날 땐 소유했던 모든 것과 기억마저도 두고 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 했다. 정말 인생의 마지막엔 사랑만이 내가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일까. 그렇다면 12월 끝자락에 나의 내면을 더욱 살피고 비우면서 가장 소중한 것만 남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