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by 가을장미


미뤄오던 숙제가 있었다. 몇 개월 전 선물 받은 책을 이제야 읽었다. 월간문학으로 등단한 40여 명의 원로 수필가들이 자신을 울린 두 권의 인생 책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수십 년간 문학의 길을 정진한 작가들이 그동안 읽었던 많은 책 중에서 딱 두 권만 선정하려니 얼마나 고심했을까. 그들의 정선된 동서고금의 독서목록을 접하니 소중한 보고를 만난 듯했다. 나도 읽었던 몇몇 책들은 전문작가들의 생각도 알아볼 수 있는 기회도 되었으니까. 그중 두 문인이 목성균의 수필 ‘누비처네’를 추천했다. 내겐 작가도 낯설고 누비처네란 단어조차 생소했지만.


검색하니 처네는 어린애를 업을 때 사용되는 끈 달린 포대기였다. 많은 블로그에는 그리 길지 않은 ‘누비처네’ 전문이 실려있었다. 읽어보니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뭉클했으니 역시 이유가 있었다. 아련한 향수와 작가의 사유가 깊은 글의 힘에 이끌려 도서관으로 향했다. 두꺼운 ‘목성균의 수필 전집’을 운 좋게 대출할 수 있었다. 대표작인 ‘옹기와 사기’, ‘명태에 관한 추억’, ’ 배필’ 등을 접하며 안타까운 그의 생애도 알게 됐다. 수필계의 기형도, 늦깎이 작가였지만 일상의 체험을 잘 해석해서 의미를 부여한 삶의 통찰이 들어있는 글이었다. 수필문학의 정수를 간직한 책이란 평과 함께.


‘누비처네’는 작가가 가장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 이야기였다. 아버지가 보내준 소액환으로 누비처네를 사들고 그는 백일이 된 자식을 그제야 보러 간다. 추석을 쇠고 처갓집으로 근친 가는 달밤 풍경을 묘사하는 부분이 이제는 내 마음에도 와닿는다. 자신은 술과 두어 근 고기를 들고 아내는 그 누비처네에 첫아이를 업고 둥실 달이 뜬 밤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업힌 아이는 무엇이 좋은지 펄쩍 뛰며 키득키득 웃었고 자신의 자식을 업은 여자와 시냇물이 흐르는 밤길을 이심전심으로 동행한다. 그때 행복이 무엇인지 처음 구체적으로 알았단다. 훗날 그의 아내는 손을 잡아준 남편에게 “달빛에 당신의 얼굴이 알밤을 깎아놓은 것 같았다”며 부부만의 사랑의 언어를 나눈다.


눈에 보이는 듯 그려지는 묘사와 아련한 향수는 또한 내 부모의 이야기였다. 엄마는 십 리 떨어진 이웃마을의 처자였고 아버진 가난한 군인이었다. 할아버지의 명에 따라 중매결혼을 했으니 똑같은 상황이었다. 엄마도 나를 누비처네에 업고 아버지와 친정으로 갔을까. 그의 글 속의 인물들은 감나무가 있던 내 고향 할아버지 댁을 떠올리게 했고 가난의 고단함 속에서도 순수하고 끈끈한 정을 느끼게 하는 그 시절이 가득했다. 내밀한 정서와 섬세한 필력에 자신의 삶의 철학으로 마무리를 맺고 있는 글에 감탄과 함께 콧날이 시큰해졌다. 아마도 문학의 향기와 은은한 명수필의 힘이리라.


나도 둘째가 돌이 지났을 즈음 남편이 의논도 없이 연희동에 설계사무실을 차렸다. 돈이 부족해 사무실 근처 반지하방을 알아보러 가던 날, 매캐한 최루탄 가스의 기억이 아직도 맵다. 연세대 근처에서 터진 최루탄으로 숨을 못 쉬고 어쩔 줄 몰라하던 내 손을 꼭 잡고 묵묵히 끌고 가던 남편. 그 모습이 이 년 여의 반지하 생활을 군말 없이 하도록 했나 보다. 남편의 좁은 어깨 아래로 맞잡은 손의 감촉이 따스했으니까.


한 권의 책을 만날 때마다 정보와 지식을 얻고 감동을 받지만 나만의 인생 책이 되진 않았다. 나의 무지를 보게 하고 또 다른 세계로 가는 길이기에 설레었지만 단순히 이성의 머리로만 읽었나 보다. 머리에서 가슴까지가 가장 먼 여행이란 말은 나를 두고 한 말이리라. 그러나 이 책은 진한 감동의 파도가 내 마음 깊숙이 하얀 포말을 이루며 계속 밀려왔고 쉬이 잦아들지 않았다.


그동안 쓴 내 글을 돌아보면 진솔한 삶의 고백인 수필이기보다는 르포에 가까울 듯, 관찰과 메모로 정확하게 쓰려니 너무 건조한 글이 된다. 작품성 즉 서정성이 없다는 정확한 진단이 명의의 침 맞은 듯 아프게 찌른다. 문장력과 어휘력의 빈곤을 많이 느낀다. 이 누비처네 전문은 사전을 옆에 두고 찾아가며 읽어야 했으니 말이다. 한자어 그리고 순우리말 등 품격 있는 단어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생소함이 너무 많았으니까. 작가는 어떻게 이 엄청난 단어들을 알았을까. 아마도 대장장이의 풀무질과 담금질 같은 고된 사유와 노력 속에서 나왔으리라.


요즘 나를 따라다니는 고민은 ‘무엇을 쓸까’다. 목성균 작가는 일상의 평범한 소재와 경험 속의 희로애락을 촘촘히 엮어 잔잔한 감동과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유년의 기억을 현실로 되살려 반추하게 하고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래서 그의 글은 그냥 대충 읽을 수가 없다. 어떤 문장에서는 눈길을 멈추고 뜻을 찾게 만들고 감정을 이입하고 음미하면서 한동안 머물게 만든다. 곱씹게 한다. 따뜻한 교감과 윤리적 책임, 인간애의 소중함과 더불어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의 근원적인 질문에 답을 찾게 된다. 진정한 수필 감상의 묘미가 이런 것이라는 듯.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 속에서 왕이 감정하라고 명령한 왕관의 비밀을 알아내고는 기쁜 나머지 벌거벗은 채 뛰어나와 ‘유레카’를 외치며 달렸던 것처럼, 나 역시 늦게나마 문학의 서정적 아름다움과 문향을 느낄 수 있게 한, 인생 책을 찾은 기쁨에 유레카를 되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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