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청첩장

by 가을장미


얼마 전 반가운 모바일 청첩장을 받았다. 감색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맨 신랑이 단아한 아이보리 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손을 잡고 서 있었다. 앳된 신랑 신부는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웃음을 짓고 있었고 신랑의 보조개가 눈에 들어왔다. 사랑과 믿음으로 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으니 바쁘시더라도 오셔서 앞날을 축복해달라는 초대의 글과 함께. 눈물이 핑 돌았다. 몇 해 전 하늘로 간 보조개가 예뻤던 친구, 그녀의 아들 결혼식이었기에.


이십여 년 전, 외환위기로 남편의 설계사무실이 문을 닫게 되었다.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난 위기감에 일을 시작했다. 가정과 일,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 결심했지만 십여 년 전업주부였으니 서툴고 서러웠다. 가장 힘든 나날을 보내던 그때 손을 내민 동료가 있었다. 바로 그녀와 점심을 먹고 시간이 날 때면 속엣말을 하면서. 시집살이를 했던 그녀는 퇴근해 집에 가도 편치 않아 안쓰러웠다. 우리는 비슷한 성향의 몇몇 동료들과 뭉쳤고 가끔 밖에서도 만남을 이어갔다. 그녀는 까탈스런 동료들도 잘 조율하는 큰 언니 같았으니까.


출근길엔 후줄근한 가방을 들고 정류장으로 내달았지만 간혹 출발해버린 연두색 버스의 뒷꽁무니를 쳐다보면 속이 쓰렸다. 배차 간격이 유난히 길었으니까. 다음 차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때면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와서 공항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곤 했다. 우리 동네 버스정류장은 공항버스도 같이 섰다. 시간과 돈의 여유가 있어야만 가능한 해외여행, 나는 언제나 저런 캐리어를 끌고 폼나게 다녀 볼까 부러워하면서.


그럴 즈음 그 친구의 제안으로 의기투합한 우리는 적금을 붓기 시작했다. 몇 년 만에 드디어 동남아로 떠나게 되었다. 부럽게 쳐다보던 바로 우리 집 그 버스 정류장에서 나도 캐리어를 끌고 드디어 리무진 버스를 타게 될 줄이야. 캐리어 안에 이것 저것 짐을 싸느라 얼마나 설렜던가. 팔월 가장 더운 성수기에 떠난 여행은 돈만 더 많이 들었고 국경을 넘나드느라 실속도 없었지만 일상의 탈출을 감행한 꿈같은 4박 5일은 모두 그 친구 덕분이었다.


때때로 우울함이 묻어나는 나를 보던 그녀는 동네 금요기도회에 가자 했다.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고 남편도 교회에서 만난 그 친구는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며느리 기도부터 하겠다 말했었다. 밝고 똑부러진 그녀와 침울한 나는 서로의 아픔과 바람을 기도로 올리며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그렇게 우리의 기도회는 이 년씩이나 계속 되었지만 서로의 아픔을 굳이 묻지 않았고 그저 감싸주면서.


이별이 갑자기 찾아왔다. 그녀는 남편이 시작한 일을 돕기 위해 직장을 떠났다. 우리의 만남은 계속 되었지만 배가 아파 병원을 다닌다던 친구는 어느 겨울 췌장암이란 소식을 전했다. 밥순이란 별명을 가진 그녀는 무엇이든 맛나게 먹고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잘 잤기에 너무나 뜻밖이었다. 나이든 부모의 죽음과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그녀의 나이는 겨우 쉰 중반을 넘기고 있을 뿐.


항암으로 머리가 다 빠지고 환자복은 더욱 헐렁해졌지만 면회 때 그녀는 여전히 단정하고 차분한 모습으로 맞아주었다. 그녀의 남편 또한 병실을 지켰다. 갑자기 다가온 죽음에 당황했겠지만 그녀는 믿음으로 화해하고 평안하게 맞아들인 듯 보였다. 결혼시키지 못한 두 아들과 남편을 남긴 채, 몇 달만에 깨끗한 모습으로 하늘로 떠났다. 그녀의 카톡 프로필엔 항상 남편과 활짝 웃는 모습으로 찍은 사진이 있었고 그 남편도 너무 젊었다. 유난히 여행을 좋아하던 그녀는 하늘나라로 빨리도 가버렸다.


작년에 그녀의 남편이 소식을 전해왔다. 둘째 아들이 생각도 못한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고 기뻐하면서. 이제 자리가 좀 잡히고 여자 친구가 생기니 결혼시키는 것이리라. 하늘의 친구도 이 며느리가 흡족할 것만 같다. 아마도 그녀의 바람처럼 교회에서 배우자를 만나지 않았을까 추측하면서. 결혼식장에 그녀의 빈자리가 생각나 마음이 편치 않지만 잘 자라준 신랑과 꿋꿋이 혼자 잘 견디고 있는 그 친구의 남편을 볼 생각에 이번 주말이 기다려진다. 나도 신혼부부에게 인간적인 축하 위에 신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빌어줘야겠다. 눈발이 날리는 오후, 미용실로 향하는 마음이 달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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